주일마다 교회에서 20~30대 청년들을 만납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이야기도 나눕니다. 만나면 대부분 연애 아니면 일터 이야기를 합니다. 팍팍한 일상에서 청년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유사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똑같이 사는 건 아니죠. 심심한 삶 속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아가는 청년도 있습니다. 자비로 시집을 낸 20대 청년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독립 출판물, 1인 출판이 유행이다.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영역일지 모르지만 독립 출판물은 팬층이 꽤나 두텁다. 대중적이지 않은 아이템과 디자인, 아마추어스럽지만 소소한 문체가 인기 요소로 꼽히고 있다.

독립 출판은 작가 지망생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다. 기존에는 등단을 거쳐야만 정식으로 작품을 출판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과정 없이도 책을 낼 수 있다. 홍대, 이태원 등지에 가면 독립 출판물만 판매하는 서점도 많다.

10월 6일, 6년간 자신이 써 온 시를 엮어 시집을 발간, 독립 출판에 발을 들인 유한밀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을 파리

춥고 배고프고 갈 데 없어
기를 쓰고 발버둥 쳐
남의 집에 들어왔지만
그 목숨은 곧 파리채에 
찍혀 끝날 예정이다.

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게 매력

유한밀 씨는 전문 시인이 아니다. 평범한 대학원생이다.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다. 지금은 성공회대학교에서 협동조합을 배우고 있다. 현재 졸업 논문만 남은 상태다.

시를 쓰기 시작한 건 20살 무렵. 우연히 들은 대학 수업에서 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짧은 문장에 함축적으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시가 좋았다. 이후로 꾸준히 습작했다. 한창 쓸 때는 일기나 편지 대신 시를 썼다.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사과 시'를 쓸 정도였다.

그는 사람들이 쉽게 흘려보내는 일상에서 시상을 찾는다. 사과를 깎으면서, 집에 들어온 파리를 보면서, 세월호 사건을 관찰하며, 중국 여행을 하며 든 생각을 시로 옮겼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순간을 종이에 적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출판을 고려하진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게 A4용지에 시를 인쇄해 선물할 생각이었다.

▲ 대학원생인 유한밀 씨. 6년간 쓴 시를 모아 시집을 발간했다. 출판사를 끼지 않고 스스로 만드는 독립 출판을 선택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그간 쓴 시를 프린트해서 몇몇 사람에게만 줄 생각이었어요. 학교 형한테 말하니까 자기가 디자인을 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고마웠죠. 그게 처음 출판하게 된 계기에요. 별 뜻은 없었어요. 돈을 벌 생각도 없었고요. 취미였죠. 1차로 5부 정도 인쇄하고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사람들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의외였어요. 더 낼 생각 없느냐 묻는 사람도 있고. 그때 처음으로 '내가 쓴 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몸은 고단해도 일상은 재밌어졌다"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유한밀 씨가 시를 쓰는 건 알았지만, 직접 출판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시집은 서점에서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자 유 씨는 2차로 60권을 더 인쇄하기로 했다. SNS 반응은 좋았지만 걱정도 됐다. '혹시 팔리지 않으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잡일이 많았다. ISBN 코드가 박힌 정식 책은 아니지만 기존 출판사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해야 했다. 일단 시집에 실을 시 69편을 추려 디자이너에게 넘겼다. 디자이너가 작업물을 주면 빨간 펜을 들고 몇 차례에 걸쳐 오탈자 및 띄어쓰기를 살폈다. 구색을 맞추고자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사도 받고 '시인의 말'도 적었다. 사은품으로 시집 제목인 '열매 예찬'이 적힌 엽서도 만들었다.

판매 금액을 정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제작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5,000원에 판매하기로 정했다. 출판 후에는 시집과 엽서를 캐리어에 싣고 직접 배송했다. '저자와의 만남'을 한 셈이다. 지하철로 이동하지 못하는 곳만 빼고 모두 직접 찾아갔다. 많이 만날 때는 하루에 5명도 만났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시집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시집을 건넸다.

▲ 유 씨는 시집을 산 사람들에게 사은품으로 엽서도 준다. 몸이 고되지만 시집을 내면서 재밌는 일상이 찾아왔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잡일이 많았지만 홀로 벌인 일은 유 씨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생기가 돌았다.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즐거웠다. 인쇄한 시집을 들고 처음 집에 왔을 때, 일면식 없는 사람들도 시집을 주문했을 때, 정말 '시인'이 된 것 같았다.

유 씨는 인터뷰 중 마음만 먹으면 출판할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했다.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판 과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원고 작성 후 편집 디자인을 하면 된다. 유 씨처럼 디자이너를 구하거나 직접 '인 디자인' 등의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다. 인쇄소도 충무로에 가면 소규모 출판을 해 주는 곳이 많다. 유 씨는 60권 인쇄에 총 27만 원이 들었다. 컬러 인쇄가 아니라서 비용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책을 산 사람 중 몇몇이 평을 해 줬어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라는 이야기도 했고,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시가 생겼다'라는 말도 들었어요. 기분이 좋았죠. 제가 쓴 시 중 하나라도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게 어디에요. 가끔 '열매 예찬'을 받자마자 제 앞에서 읽고 있으면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재밌는 경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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