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1년생 모태신앙입니다. '보통의 교회'에서 '보통 청년'으로 있으며 고민한 문제를 나누고 싶어 글을 연재하려 합니다. 함께 신앙생활한 분들, '평범한 성도'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점도 있습니다. 기도 제목 나누기, 간증, 청년의 비전, 선교, 셀 모임, 교회 봉사, 신학의 부재 등이 그 내용입니다. - 필자 주

안 되면 목회의 길로

얼마 전 <뉴스앤조이>에 게재된 '목사가 차고 넘치는 시대'라는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내후년인 2018년을 분기점으로 예측 교인 수보다도 더 많은 수의 목사가 생겨난다는 사실입니다. 교인들 수는 줄고 있는데, 목사 수는 늘어나고 있습니다(모든 교단에서 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례로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자 수는 줄었습니다).

인원이 늘어난 신학교에서도 나름대로 대처하기 위해 비인가 신학교를 없애는 등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 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다들 목사가 되려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임팩트 있는' 목회자의 길을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돌아온 탕자형'입니다. 돌아온 탕자형 목회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방탕하게 살다가 목회의 길로 오셨다는 분들입니다. 인생의 방황을 하셨던 분도 있습니다. 가장 아래로 떨어졌던 인생을 사셨던 분도 계신 듯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했던 분도 있습니다. 그런 스토리를 얘기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결국에 하나님이 목회로 길을 이끌었다는 말이지요.

두 번째 유형은 '속세를 떠난 인간형'입니다. 명문대를 나오거나, 사업을 크게 하거나, 좋은 직장을 다니시던 분들입니다. 그러다가 이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말씀과 함께 목회자의 길로 오신 분들입니다. 온갖 부귀영화가 헛된 것을 깨닫고 목회로 부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은 '바닥에서 하늘로 형'입니다. 고시 등 다른 일에 도전했다가 잘 안 되어서 온 분들입니다. 큰 병에 걸렸다가 치유의 은사를 경험하고 오신 분도 계십니다. 인생이 생각처럼 안 풀렸기에 신학의 길로 왔다는 분들입니다.

이 유형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들 못하는 것 하다 오신 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방탕의 길이든, 성공의 길이든, 나락에서 왔든지 말입니다. 마지막에는 꼭 목회의 사명을 받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목회자의 길을 예비하시기 위해 개인에게 하신 일들이 방탕하게 내버려 두거나 세속적 성공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만 하나님이 목회의 길을 예비하시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을 겪으신 분은 모두 목회자가 되는 사명을 받으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회자 쇼맨십이 강한 한국교회에서 스토리가 있는 목회자를 선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평범한 방법으로 목회자가 되면 이른바 '임팩트(impact)'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엉망으로 사시는 목회자 혹은 성공한 사람들의 삶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입니다. '남들이 못한 것을 하다가 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들의 삶에서 우리가 해 보지 못한 일에 대한 욕망을 발휘하기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매력

물론 특별한 경험으로 목사가 되신 분들 얘기가 잘못됐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이 소명을 주셔서 목회를 하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 목회 외에 다른 일을 하시다가 목사가 되신 분들이 신학대학에서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목사가 된 분보다 융통성이 있고, 성도들 마음을 더 잘 헤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신학대학에서 바로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하신 분들이 더 낫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제 얘기는 목회자 길을 걷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음악하시는 분이 찬양 사역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직장 다니다가 그 끝이 꼭 목회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복지 사업을 하기 위해 꼭 신학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에 신학과 목회로 연결되는 풍토가 이상할 뿐입니다.

서구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처럼 목회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C.S. 루이스, 빌리 그레이엄, 존 스토트, 유진 피터슨, 헨리 나우웬 등 우리가 잘 아는 서구 신학자들을 떠올려 봅시다. 앞서 제기한 '돌아온 탕자형'이나 '속세를 떠난 인간형' 등으로 인생이 바뀌어 목사나 신학을 하는 분 얘기는 거의 못 들어 본 것 같습니다.

목회자가 되기 전에 방탕한 생활을 해 왔거나, 성공한 일을 하다가 속세를 떠나 목사가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에 참여하기도 하고, 사회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신학을 하거나 목사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 다들 목사가 되고자 할까요? 교회 내 '목회자의 지위와 권한' 문제를 당연히 고민하게 됩니다. 목회가 누리는 매력이 있으니 다들 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가 누리는 지위와 권한이 형편없다면 저 많은 사람이 목사의 길을 택할지 돌아보게 됩니다.

지위라는 문제부터 보겠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이유로 특별한 지위를 얻은 것처럼 여기는 교회 분위기가 문제입니다. 신학교를 다녀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그 사람이 특별한 지위를 얻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잘 합니다. 정말 많은 부분에서 목회자라는 지위가 있으면 그 대접을 해 줍니다. 교회 내 왕권에 가까운 것이 목회자 직위입니다. 권한 역시 목회자에게 몰려 있습니다.

평신도로서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청년으로 있는 저도 목회자 '허락'을 맡아야 하는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많은 분이 '내가 한 번 해 보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는 듯합니다.

우리 모두 주의 종

제가 보기에 '주의 종'이 목사님밖에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목사님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씀이 "주의 종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권위 문제를 운운하시는 목사님 정말 많이 겪어 봤습니다. 교회를 다니면 제자 훈련 시간, 설교 시간에 많이 듣는 얘기입니다. 머리에 박혀서인지 수긍하시는 성도들, 저와 같은 청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회사원이든, 공장에서 일을 하든, 요리사든, 변호사든 우리는 모두 주의 종입니다. 어떤 직종이든 그 자리에서 각자 하나님 일을 하는 주의 종입니다. 목사만이 하나님이 세운 사람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 내지 리더를 목사로 한정 짓고, 목사에게 대적하면 고라 자손처럼 저주받을 거라고 주장하시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이런 주장 펴시는 목사님들, 감히 말씀드리지만 회개하셔야 합니다.

저는 모든 성도가 '주의 종'이라는 생각이 교회에 퍼졌으면 합니다.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故) 옥한흠 목사님이 쓰신 <길>이라는 책에 보면, 성경에 나오는 '평신도'에는 성직의 개념이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나라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침이 모두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인식되면, 모두 목사를 하려고 안 할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도, 속세를 떠난 인간도, 굳이 목사가 아니어도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위해 할 일을 찾아 갈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종으로서 일하고 있다고 느끼는 교회라면, 모두가 목회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회 성도 수가 줄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수가 더 늘고 있습니다. 목회자 권위주의에 지친 성도가 많이 있습니다. 진실로 목회하려 하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이중으로 일하는'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목회로 이해하는 엉뚱한 교회 분위기도 바꿔 가야 합니다. 꼭 목사가 아니더라도 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권한을 내려 주어야 합니다.

지금 교회에서 많은 권한을 가지고 계신 목사님들, 그 권한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들 목사를 하려 하지 않고, 교회 일원임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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