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충격적으로 발견한 것은 그가 아주 평범한 관료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반유대주의자도, 신념에 찬 정치 운동가도 아니었다. 포학한 성격의 악한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관료였다. 그는 한사람의 충실하고 정직한 관료로서 그 시대를 살아갔다. 굳이 그의 문제를 지적하면 '사유의 빈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놀라고 두려워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거기 있다. 그토록 과격한 악이 그토록 평범한 사람에 의해서 자행될 수 있는지. 우리는 그 사실을 두려워해야 한다. 평범한 서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독재로 인권을 유린하던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사람을 잡아다가 몽둥이질을 하고 물고문을 했던 정보부원들도 자식의 대학 입시를 걱정하고, 아내의 잔소리를 고민하던 평범한 서민이었다. 70세 노인에게 물 폭탄을 쏟아붓고, 쓰러진 후에도 멈추지 않은 이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문득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라는 시가 생각난다.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궁극적 가치가 왜곡된 중간적 가치는 매우 위험하다. 아이히만의 충성처럼. 그는 충성스럽게 일했지만 그의 지도자는 히틀러였다. 우리 사회는 이런 평범한 사람으로 가득 찼다.

이런 사람들도 있다. '병사'라 쓰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 옆에 부원장과 주치의와 의논했다는 '좀 이상한' 메모를 남긴 레지던트가 있었다. 분명히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메모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지도자가 중요하다. 평범한 사람의 의식 없는 선택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도 사유하면서 살아가면 지도자의 부실함을 극복할 수 있다. 희망은 의식 있는 보통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지켜 갈 것이며, 평화통일을 주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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