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이 선교적이고 도전적이고 호전적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는 말하는 이들, 그렇게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주장과 확신 근거로 쿠란을 내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적지 않은 이가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로, 무력과 테러리즘으로 이슬람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슬람은 선교적인가?" 이 질문을 다루고자 한다. 한 종교의 선교적 열망은 아무래도 한 종교의 경전의 번역 사례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슬람 경전인 쿠란의 서구권 언어로의 번역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른바 이슬람 세계의 맞은편에 서구 기독교권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 서구 기독교권에 이슬람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난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쿠란의 서구 기독교권 언어로의 번역과 보급 현황이 그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쿠란의 서구어, 대표적으로는 영어로 번역된 현황은 어떠한지, 번역과 보급 현황을 통해 '이슬람은 선교적이다'라는 명제에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슬람화를 위하여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을 의도적으로 기독교적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등의 혐의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한국교회가 눈여겨보고 오늘 상황에 적용할 것은 무엇이 있는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짧은 연구의 '덤'일 것 같다.

1. (아랍어) 쿠란의 서구어 번역 짧게 살펴보기

쿠란은 아랍어로 기록된 1400년 전의 아랍어 쿠란만을 권위로 받아들인다. 쿠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은 11세기에 페르시아어로의 번역이 대표적이다. 페르시아어 버전은 세기마다 새로운 번역본이 등장하였다.

1) 쿠란을 서구 언어로 번역한 것은 기독교

서구 언어로 번역된 것은 라틴어로 된 꾸란(해설서)로 1143년의 일이다. <Lex Mahumet pseudoprophete> '거짓 예언자 무함마드의 법'(Robert of Ketton)이 그 제목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가진 번역이었다. 무슬림들에게 기독교를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번역본이 마틴 루터 시대인 1543년에 인쇄본 <Lex Mahumet pseudoprophete>으로 보급되었다. 마틴 루터는 이 번역본 인쇄에 서문을 썼다. 1547년에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고, 이 번역본을 바탕으로 1616년에 독일어 번역본 <Alcoranus Mahometicus>이 나왔다.

1647년에 아랍어 쿠란을 직접 번역한 <L'Alcoran de Mahomet>(Andre du Rye) 프랑스어 번역본이 나왔다. 이 프랑스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1649년 영역본 <Alcoran of Mahomet>(Alexander Ross)이, 1657년에는 네덜란드어 번역본 <Mahomets Alkoran>(Jan Hendriksz Glazemaker)이 나왔다. 1698년에 아랍어 쿠란에서 직접 번역한 세 번째 라틴어 번역본(Father Louis Maracci)이 나왔다.

2) 비무슬림이 쿠란 영어로 번역

영역본 역사는 이보다 나중 일이다. 1649년 영역본 <Alcoran of Mahomet>(Alexander Ross)이 프랑스 번역본 <L'Alcoran de Mahomet>(Andre du Rye, 1647)을 번역해 나왔다. 1734년 아랍어 쿠란에서 직접 번역한 영어 번역판 <The Koran>(George Sale)이 나왔다.

▲ 1647년 Andre du Ry가 번역한 프랑스어판 쿠란 (사진 제공 김동문)

1861년, 또 다른 영역본 쿠란 <The Koran>(John Medows Rodwell)이 나왔다. 1880년에 또 다른 영역본 <The Koran>(E.H. Palmer)이 나왔다. 1937년에 <The Qur'an translated with a crucial rearrangement of Surahs>(Richard Bell), 1955년에는 <The Koran Interpreted: A Translation>(Arthur John Arberry) 영역본이, 1956년에는 <The Koran>(N.J. Dawood) 영역본이 나왔다.

3) 무슬림 주도 영어 번역은 근대사 이후의 일

무슬림이 영어로 번역한 쿠란이 나온 것은 이로부터도 한참 지난 1917년의 일로, 인도 무슬림 학자 Maulana Muhammad Ali가 영역한 것이다. 무슬림이 번역한 최초의 서구어로 된 쿠란 번역서였다. 이후, 무슬림이 번역한 영역판 쿠란 번역서(해설서)는 아래와 같다.

<The Meaning of the Glorious Koran>(Marmaduke Pickthall, 1930), <The Holy Qur'an: Text(Abdullah Yusuf Ali, 1934), <The Holy Quran with English(Maulvi Sher Ali, 1936), <The Quran>(Muhammad Zafrulla Khan, 1971), <The Message of the Qur'an : Presented in Perspective>(Dr. Hashim Amir Ali, 1974), <The Message of The Qur'an>(Muhammad Asad, 1980), <Al Qur'aan>(As Sayyid Imam Isa Al Haadi Al Mahdi, 1981), <Noble Qur'an, by Muhammad Muhsin Khan, 1985), <The Qur'an: First American Version>(T. B. Irving. 1985), <The Qur'an>(Muhammad Habib Shakir, 1989)

이런 상황은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다. 무슬림이 독일어로 번역한 최초의 독일어판 쿠란은, 1986년 Muhammad Ahmad Rassoul이 번역한 <Die ungefähre Bedeutung des Qur’an Karim>이다. 그 이전까지 독일어판 완역 쿠란은 모두 14개가 있었다. 독일어판 완역 쿠란은 20개 정도다. 1996년에는 Ahmad von Denffer이 번역한 <Der Koran. Die Heilige Schrift des Islam>이 나왔는데, 독일인 무슬림이 처음 번역한 독일어판 쿠란이다. 쿠란 번역할 때 독일보다 덜 활발했던 12개 정도의 번역판이 있는 프랑스의 경우는 어떨까. 무슬림 Muhammad Hamidullah와 Michel Leturmy가 1959년에 번역한 <Le Coran>이 무슬림이 번역한 최초의 프랑스어판이다.

4) 작은 결론

간략하게 살펴본 것처럼 서구 언어로 된 쿠란 번역본은 이슬람 세계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다. 서구어 쿠란 번역본은 무슬림에 의한 무슬림을 위한 번역본이 아니었다. 기독교인(교회)에 의한 기독교인(교회)을 위한 쿠란 번역이었다. 모두 서구 교회가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고, 무슬림에게 기독교를 전하기 위한 목적을 담은 것이었다. 선교의 목적을 두고 쿠란 번역 작업이 이뤄진 것이었다.

2. 쿠란을 둘러싼 기독교인 괴담 팩트 체크

영역판이나 서구 언어로 번역된, 무슬림이 아닌 기독교인이나 교회에서 번역한 쿠란에는 Allah 호칭이 어떻게 번역되어 있을까? 이 번역 언어는 신학적 입장이 녹아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라틴어 번역본에는 'Allah'를 Deus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라틴어 성경에서 하나님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역량과 시간 부족 등으로 다른 서구 언어 번역본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1) 의도적으로 '알라'를 하나님이라 번역했다는 주장, 근거 부족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는 등, 쿠란 번역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기독교인을 이슬람화하려고 의도적으로 번역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영역본은 어떨까? 비무슬림이 번역한 영역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두 7번(더 있을 수도 있지만, 필자가 확인한 것은 7권)이었다.

1734년 George Sale, 1861년 John Medows Rodwell, 1955년 Arthur John Arberry가 번역한 영역본은 한결같이 Allah를 God로 번역하고 있다. Richard Bell(1937)은 Allah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과 달리 무슬림이 번역한 영역판에는 M. Muhammad Ali(1917), Mohammed M. Pickthall(1930), (Muhammad Akbar(1967)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거의 대부분이 Allah로 표기하고 있다.

2) 이슬람화 위해 의도적으로 번역했다는 주장, 근거 부족

살펴본 것처럼, 쿠란 번역은 대부분 무슬림이 아닌 기독교인과 교회, 비무슬림 주도로 이뤄졌다. Allah 알라 표기상 차이는 이슬람 진영이 영미권과 서구의 비무슬림이나 기독교인 대상으로 쿠란의 Allah를 의도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번역했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자료가 된다. 무슬림 학자들의 쿠란 번역도 비무슬림 대상이라기보다 무슬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3) 기독교인 위한 쿠란 번역/무슬림 위한 쿠란 번역 있었다 봐야

비무슬림 대상으로, 기독교 세계의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쿠란 번역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영어판, 독일어판, 프랑스어판 등 주요 서구 언어로 된 쿠란 번역은 절대다수가 비무슬림에 의한 번역이었다. 이 번역은 기독교인을 위한 번역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나온 무슬림이 번역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쿠란 해설서도 비무슬림 대상이라기보다 관련 언어권 무슬림을 일차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아랍어 쿠란은 아랍 무슬림에게도 쉽지 않다. 이민 2·3세의 아랍어 독해 능력은 결코 높지 않다.

4) 쿠란 번역을 통한 이슬람화 전략의 실체, 근거 부족

앞서서 살펴본 것처럼, 쿠란 번역의 주도권을 잡은 것은 무슬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번역된 서구 언어로 된 꾸란 번역 수와 양도 많지 않다. 기독교 선교를 위해 수많은 종족 언어, 부족 언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과 비교된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쪽복음(성경의 부분)이라도 번역된 경우를 따지면 2,886개 언어였다. 쿠란의 경우 100개 정도 언어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맺는말

이슬람이 유럽과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고 있다는 주장은 이제는 낯설지 않은 주장이 되어 버렸다. 그 주장 안에는 이슬람의 알라를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돌고 있다. 이슬람은 선교적 종교인가? 이슬람권이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쿠란을 순화시켜 번역하고 있다. 기독교인에게 다가서기 위한 어휘를 선택해 번역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런 주장은 그야말로 괴담일 뿐이다.

위와 같은 짧은 검토를 통해, 필자는 이슬람이 최소한 중세 이후 역사에서 전략적 선교를 하는 보여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구 교회가 이슬람 이해와 무슬림 선교를 위해 쿠란 번역에 적극 나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구 사회와 교회는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고, 무슬림과 마주하기 위해 꾸란을 번역하고 읽고 연구했다. 이슬람 세계가 서구 사회를 향해 그들의 경전을 번역하려는 의도와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다. 이슬람이 선교적이라거나 이슬람이 전 세계 이슬람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이슬람화를 위해 이슬람 경전인 쿠란을 의도적으로 기독교적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혐의에도 근거가 없다. Allah 표기를 버린, God, Deus 등의 기독교 하나님 표기는 기독교회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이는 무슬림 번역자가 쿠란에 Allah 표기를 절대적으로 선호한 것과 비교된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한국교회, 기독교인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가?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을 이해하고 마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이슬람과 무슬림을 향한 비난과 비판, 맹목적 거부 목소리는 커져 가지만, 무슬림과 이슬람 세계에 대한 배움도 깨달음도 다가섬도 없어 보인다.

직업, 전문 선교사들 중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는 이들, 그렇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분은 다른 일반 기독교인이나 한국인과는 뭔가 달라야할 것 같다. 배제와 혐오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만 집착 말고, 기독교 공동체 밖에서도 통할 수 있는 객관성과 학문성이 담겨 있는 연구와 토론이 펼쳐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슬람을 경계하자고 목소리만 높이지 말아야 한다. 무슬림 이해와 선교를 위해 쿠란 번역을 하지는 않더라도 쿠란 읽기와 쿠란 연구에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최소한 이슬람 전문가 집단으로 알려진 이들, 이슬람권 선교사라 자부하는 이들, 이슬람 선교에 열심을 내는 교회와 단체에는 최소한의 쿠란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전의 유럽 사회에서 이슬람 선교를 위해 보여 준 것에는 도달할 수 없을 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쿠란을 읽어 보지도 않고, 읽어 보려는 마음도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쿠란을 맹목적으로 비판하고 비아냥거리는 주장만을 되뇌고, 그런 글들을 습관적으로 퍼 나른다. 이런 행동들을 넘어서야 한다. 최소한 스스로 종교개혁 전통에 있다거나 선교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바로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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