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와 달리 교회 안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여성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해마다 제기되고 있지만,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총회에서 여성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권오륜 총회장)는 소위 진보 성향 교단으로 분류된다. 다른 교단과 달리 사회참여에 앞장서고 소신을 담은 성명도 꾸준히 낸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때도 있지만, 기장이 '진보적'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기장이 사회참여에는 진보적일지 몰라도, 적어도 여성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보수 교단과 별반 차이가 없다. 9월 27일부터 나흘간 열린 101회 총회 결과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여성 총대 참여 비율 증대 △상임위원회·특별위원회 여성 2명 이상 공천 할당 △여성 장로 30% 배정 등 굵직한 청원이 올랐지만, 줄줄이 부결됐다.

전체 교인 중 여성 60.3%…여성 총대는 7.9%

기장은 2006년 91회 총회에서 양성평등위원회(양성평등위)를 만들었다. 모든 인간을 하나님 형상대로 평등하게 창조하신 뜻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 교회와 사회 속에서 평등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양성평등위 활동이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는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장 교단 전체 교인 중 여성 비율은 60.3%를 차지한다. 그러나 여성 총대 비율은 7.9%에 지나지 않는다. 타 교단보다는 높다 하지만, 전체 교인 중 여성 비율을 생각하면 만족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교단 내 주요 의사 결정 기구인 총회 실행위원회 안에서 여성 비율은 4.5%에 지나지 않는다. 총회 실행위원회는, 총회 폐회 기간 동안 주요 안건을 논의하고 처리하는 기구를 말한다.   

양성평등위는 "우리 교단이 주요 회원으로 참가하는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 참여 비율은 30%, WCC(세계교회협의회)는 50%나 된다"며 여성 총대 참여 증대를 요청했다. 구체적인 안도 제시했다.

노회별로 총대 수가 30명 이상일 경우 여성 3명, 40명 이상일 경우 4명, 50명 이상일 경우 5명을 파송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총대들은 "비현실적"이라며 반발했다. 양성평등위는 "교회 안에서 여성 차별을 없애려면 여성 참여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도 전체 총대 중 여성 참여율은 10%밖에 안 된다"고 호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 않았다.

기장 총회 관계자는 10월 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여성 총대를 의무적으로 배정해 달라는 안건에 대한 반발이 컸다. (안건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고 말했다.

▲ 진보 성향을 지닌 기장 교단조차 여성과 관련된 안건들을 줄줄이 부결시켰다.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주요 기구인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에 여성을 2명 이상 공천해 달라는 안건도 부결됐다. 두 위원회에는 여성을 1명만 배정하고 있다. 특히 양성평등위는 헌법위원회·총회재판국·국제협력선교위원회·생활보장제위원회·공천위원회·한신학원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6개 기구에 여성이 배정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

기장은 1956년부터 여성 장로제를 시행해 오고 있다. 60년 세월이 흘렀지만, 여성 장로는 얼마 되지 않는다. 2015년 12월 기준으로 남자 장로는 4,950명, 여자 장로는 370명이다. 약 7.4%에 해당하는 수치다.

양성평등위는 "교인 중 60.3%가 여성이지만, 대부분 교회에 여성 장로가 없다. 당회는 구성 요건상 민주적 대의기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교회가 의무적으로 장로 중 30%를 여성으로 선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헌의했다. 여성과 남성이 협력해 민주적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취지였지만, 총대들은 역시 "비현실적"이라며 반대했다.

양성평등위는 위원회 명칭을 '성정의위원회'로 바꿔 달라고 청원했다. 국제사회가 '성 정의(Gender Justice)'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교단도 발맞춰 나가자는 주장이었다. 총대들은 명칭이 낯설다며 반대했다. 몇몇 총대는 "이제 겨우 '양성평등'이 입에 익었다"며 기존 명칭을 고수하자고 주장했다.

양성평등위 청원 사항이 줄줄이 부결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유의미한 결의도 나왔다. '여성 교역자 출산과 양육 보장을 위한 헌의의 건'이 통과된 것. 양성평등위는 "사회에서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의 제도를 마련했다. 출산과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 교역자가 사회 법에 준하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안건은 통과됐다.

타 교단 사정은 더 심각

▲ 총회 현장에서 여성들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총회에 참석해도 발언 한 번 할 수 없는 구조다. 사진은 예장통합 101회 총회가 열린 안산제일교회 로비 모습. 총대들을 맞이하기 위해 여성 교인들이 로비 현관에 서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비슷한 시기에 열린 예장통합·예장합동·예장고신 총회에서도 여권 신장을 위한 결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예장통합 여성위원회도 '여성 총대 할당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장합동 총회에는 여성과 관련된 헌의안이 아예 오르지도 않았다.

총회 기간 동안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여동문회 회원들이 "여성 차별을 중단하라"며 시위를 진행했지만, 총대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예장고신은 신대원을 졸업한 여성들에게 '권도사' 자격을 부여해 달라는 안건을 부결시켰다. 

여권 신장을 위한 안건이 매년 총회에 오르는 실정이지만, 결과는 어둡기만 하다. 이유가 뭘까. 매년 교단 총회를 참관해 오고 있는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애희 사무국장은 "총대들이 여성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보적인 교단이든, 보수적인 교단이든 여성 관련 안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마치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성들이 안건을 낸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매년 같은 청원이 오르다 보니 피로감도 느낀다고 한다. 개선이 안 되니까 안건이 올라오는 건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교단이든 '여성 총대 할당'에 대한 총대들 반응은 비슷하다. 기득권을 굳이 나눌 생각이 없다. 의무 할당제를 시행하면, 본인들 기득권이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여성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 뭉개지거나 까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남성 총대도 있다.

올해는 총신대 여성 강사 해고 사태도 있었고, 여성 혐오 문제가 사회 이슈로 대두됐다. 정작 교단들은 이 지점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문제의식 없이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교회 축을 이뤘던 젊은 세대 여성들이 교회를 이탈하고 있다. 목사와 장로들이 문제가 뭔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전환적인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 남성이 지배하는 총회 현장에서, 여성을 위한 안건이 통과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여권신장을 위해서는 교단 안팎으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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