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 박득훈 목사가 나태주 시인 작품 '풀꽃'을 낭독했다.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2016 작은 교회 박람회(작은교회박람회)' 개회사 시간이었다. 작은 교회 역시 자세히 볼수록, 오래 볼수록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의미로 들렸다.

▲10월 3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작은교회박람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이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10월 3일, 생명평화마당(공동대표 박득훈·방인성·이정배)이 제4회 작은교회박람회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열었다. 주제는 '작은 교회 세상의 희망'이다. 세상의 희망이 되길 바라는 교회·단체 80여 곳이 박람회에 참가했다.

오전 10시, 여는 예배와 함께 박람회가 시작됐다. 생명평화마당 신학위원장 이은선 교수가 작은 교회 운동이 지향하는 가치 '탈성직·탈성별·탈성장'을 설명하며 박람회 취지를 소개했다.

"탈성직은 모든 교회와 기독교인이 특권 의식을 내려놓고 공동체와 세상을 섬기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차별은 창조주를 부인하고 자기를 세상 주인으로 삼는 태도입니다. 탈성별은 여성 차별을 포함한 온갖 차별을 벗겨 내고 하나님을 모든 만물의 척도로 다시 새기는 것입니다. 탈성장은 참된 성장과 성숙을 원한다는 표현입니다. 혼자 성공하고 특별하게 되고자 하는 태도를 버리고 복음 안에서 함께 자라고 서로 보듬으며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브라스밴드(좋은샘교회)가 찬송가 연주를 선보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목회자 권력 분산, 성장 지양, 지역 주민과 소통 추구하는 교회들

기상청은 이날 오전까지 비가 내린다고 예보했지만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교정 곳곳은 참가 교회 교인들과 방문객들로 붐볐다. 야외에 설치된 부스에서 각 교회·단체의 사역과 비전 등을 들을 수 있었다. 다른 교회끼리 서로 사역 내용을 공유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몇몇 부스를 돌며 설명을 들어 보았다.

30-40대 젊은 교인들로 구성된 나드림교회(장석윤 목사)는 사역자와 평신도 간 수직 구조를 지양한다. 만 30세 이상 집사 5인, 교인 대표, 목회자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두어 교회 안 중요 문제를 결정한다. 운영위원은 제비뽑기로 선출한다. 집사 운영위원은 임기가 1년이다. 장 목사는 수평적이고 역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운영위원 제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건축과 성장도 나드림교회가 지양하는 가치다. 교회는 일요일에 비는 학원이나 사무실 등을 빌려 모임을 한다. 단독으로 쓰는 공간을 마련하지 않으니 임대료·관리비 등이 일반 교회보다 적게 든다. 절약한 재정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한다. 장 목사는 교회 재정의 51%는 구제 사역에 사용한다고 말했다. 교인 수가 100명을 넘으면 분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

가온교회(오세욱 목사)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나라를 이루자는 의미로 교회 이름을 '가온'으로 지었다. 가온은 '가운데'의 옛말이다. 가온교회는 하나님나라가 교회에서 지역으로 확산하길 바라며, 지역 주민과 활발히 교류하고 진행하고 있다.

우선 마을 학교를 운영한다. 지역사회에 대안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2014년, 그물코학교를 설립해 방과 후 학교, 도시 농부 학교 등을 열었다. 교인·주민들이 함께 교사로 참여한다.

지금은 교회가 지역 시민단체와 협력해 인문학, 기본 소득, 주민 자치 등을 다루는 '화성 민주 시민 교육' 강의도 개설했다. 오 목사는 "교회가 혼자 하겠다고 나섰다면 못했을 일이다.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 함께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참가 교회들은 야외에 설치된 부스에서 참석자들에게 교회 사역과 비전을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대다수 교인들은 지역 주민이다. 마을 일이 곧 교인들 일이다. 교인들이 마을 일에 나서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독립문교회(김성희 목사)도 지난해부터 마을 안에 부는 도시 농업 바람에 발을 살짝 담갔다가, 지금은 서울시가 이 사업을 교회에 위탁할 정도로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시는 도시 재생 사업 일환으로 독립문교회가 있는 교남동 주민들에게 도시 농업을 장려했다. 교회는 시 지원을 받아 마을 공터와 건물 옥상에 양봉장, 육묘장, 텃밭 등을 설치하고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했다.

도시에서 가능한 일일까 싶지만, 주민들은 양봉장에서 꿀을 채집하고 텃밭에서 상추·깻잎 등을 재배한다. 김성희 목사는 다른 동네에서 텃밭 이용 문의가 들어오고 방문객이 생기는 등 마을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문교회 김성희 목사(왼쪽)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양봉장, 육묘장, 텃밭 등을 가꾸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박람회에는 기독 단체들도 참가했다. 대안주거협동조합은 1평도 안 되는 고시원, 여인숙, 옥탑방 등에 사는 도시 빈민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한다. 올해 초, 영등포에서 대안 주거 공간 1호점을 열었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빈 사무실을 장기 임대해 도시 빈민들이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전시, 공연, 체험 등 다양한 행사도 준비됐다. '세계의 십자가 전'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렸다. 송병구 목사가 전 세계에서 수집한 십자가 100여 점과, 김항렬 집사가 조각한 십자가 수십 점이 전시됐다. 세월호 배지로 십자가를 표현한 '세월호 십자가'는 사람들 이목을 끌었다.

좋은샘교회 브라스밴드와 숭실대학교·백석대학교 학생들은 공연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캔들·꽃 장식 만들기, 캘리그라피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행사도 진행됐다.

▲전시, 공연, 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도 열렸다. 한 참석자가 캘리그라피 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월호 유가족과 예배…"뿌리처럼 함께 예수의 길 가자"

박람회 마지막 순서인 닫는 예배는 '작은 교회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함께 쓰는 희망의 노란 우산'을 주제로 열렸다. 416합창단이 나와 20여 분 동안 '어느 별이 되었을까', '약속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세 곡을 노래했다. 관중들은 노래를 들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날 참가자들이 낸 헌금은 416기억저장소를 위한 성금으로 쓰였다.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 이정배 교수는 "성장이 끝난 시대에 더 이상 번영 신학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없다. 작은 교회가 함께 모여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작은 교회는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습니다. 서로 다양하되 유기적일 수 있고, 가난하지만 함께 부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저항하지만, 저항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립니다. 서로 힘을 합쳐 주님의 길을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종교인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득훈 목사는 닫는 예배에서도 폐회사를 시로 대신했다. 평범한 사람들을 주제로 시를 만드는 정대구 시인의 '뿌리들의 합창'이다.

뿌리는 불평하지 않는다.
햇빛 못 보는 뿌리들이 
햇빛 받겠다고 
잎이나 줄기가 되겠다고 
불평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줄기나 잎에게 대신 빛을 보게 하고 
자신은 완강히 빛을 거부하고 
자유 공간을 거부하고 
더 깊은 어둠 속 파고 들어가서 
높이 높이 삶을 밀어 올리는 
목숨 건 침묵의 노래 
뿌리들의 합창이 
세상을 푸르게 한다

▲타원형교회는 목회자와 교인 간 수직 구조를 지양하고, 지역 교회와 협력 사역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백석교회는 녹색가게를 운영한다. 주민들은 녹색가게에서 친환경 비누와 샴프, EM효소, 재활용 의류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한반도 내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최근에는 4대강, GMO(유전자조작식품) 문제 실태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작은교회박람회에는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사역을 하는 교회들만 있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작은 교회들도 참여한다. 시냇물교회가 그렇다. 조진호 담임전도사는 시냇물처럼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섬기는 교회를 꿈꾼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홍보 브로슈어가 없는 교회는 주보로 교회 소개를 대신했다. 다양한 교회 주보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박람회가 열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한쪽 편에는 '세계의 십자가 전'이 마련됐다. 김항렬 집사는 버려진 나무로 십자가를 표현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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