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가 쓴 <하나님나라>(대장간) 12장 '하나님나라와 정치(2)'에서 인용, 재편집한 것이다. - 필자 주

나는 오늘의 정치, 경제, 종교 현실에 대하여 분노한다.

특히나 이 대명천지에 정치가 꽉 막혀 있고 4·13 총선 이전, 이후 급박하게 일인 치하의 서슬 퍼런 칼날처럼 전체주의를 향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 중에 정치에 아예 무관심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고, 정치란 원래 그러려니 하면서 구경꾼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정치적 존재이다. 여기서 제외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통치자 편에 들러리를 서는가 하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역사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자세한 내용은 강성호, <한국 기독교 흑역사> 참고).

지금 이 땅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독재자에게 충성하고 아부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한국 정치는 지금 성경이 말하는 세계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아니한가? 교회는 그 시대마다 잘못된 것을 고발하고, 저항하는 예언자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나의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보는 시각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안다. 우리가 무엇인가 판단하고 평가할 때에는 바른 정보가 필요하다. 과연 그 정보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정보를 얻느냐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에서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정치, 경제를 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진다. 자신이 보고 있는 신문이나 TV 영향력 아래 있음은 불문가지며 시간이 갈수록 세뇌화될 수 없지 아니한가? 따라서 양쪽 모두에서 정보를 얻고 해석하는 것이 더 좋은 평가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다.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면 좋을 텐데도 무엇이 더 성경적인지 진지한 생각 없이 단순히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편 가르기에만 열중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오직 신음하며 추구하는 자만을 인정한다."(파스칼, 팡세)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세계관과 하나님나라 시각에서 가치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한국 정치 현실과 그리스도인의 저항권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특히 말썽 많은 로마서 13장 1-7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로마서 13장,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 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롬 13:1-7) 

이 본문은 바울서신뿐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를 가장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로마서 13장은 유럽의 역사에서 불의한 절대 권력을 옹호하는 방패막이로, 조건 없는 복종을 강조하는 구실로 해석되어 왔다. 한국교회도 바울이 한 이 말씀이 전체주의적 국가의 모든 범죄를 재가하고 부추기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다. 만일 그것이 진정한 바울의 견해였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견해와는 큰 모순이다. 불행하게도 신약에서 이 말처럼 빈번하게 오용된 말은 거의 없다.(미야타 미쓰오, <유럽 정신사에 나타난 로마서 13장>)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 13:1-2)

이 본문 그 자체로만 얼핏 본다면 로마의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잘못된 성경 해석과 이단의 근원은 단 하나의 구절을 늘 전체적 맥락에서 분리해 절대화시키려 하는 데 있다.

이 본문은 여러 왕이 왕권신수설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삼는 본문이다. 통치자들은 이 본문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옹호했다. 모든 말과 행동은 그 배경 없이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도 어느 특정한 배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은 용서의 말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의 고백이 될 수 있다. 기혼 남자가 기혼 여자에게 하면 불륜의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본문을 어떤 배경에서 말했으며, 듣는 자가 어떤 배경에서 듣느냐다.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권세'는 로마를 가리킨다. 교회와 국가가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국가에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말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는 예수님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이 가이사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뜻인 것으로 당연하게 알고 있다. 이 말씀은 가이사와 하나님께 동시에 복종하라는 말이 아니다.(김세윤, <예수와 바울>)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것은 없다.

그리스도인은 무조건 국가에 복종해야 하나

하나님께서는 권세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질서를 통해 활동하신다. 그러나 이 권세들은 전체주의적 정치 체제를 보일 때 하나님나라를 방해하는 우상 세력이 된다. 국가도, 체제도, 주의도, 제도도 권세 중 하나다. 자본주의도 하나의 권세다. 교회도 권세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권세는 이미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경배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권세가 된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영에 대한 싸움"(엡 6:10-12)이라고 말한다.

로마서 13장은 그런 의미에서 바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통치자가 말하는 것에 복종해야 할 것인가? 국가가 말하는 법이 통치자의 권력을 지키든지 백성의 유익을 위하든지 간에 상관없이 복종해야 하는가? 이 본문이 무조건 복종을 말하고 있는가?

이 본문을 사용해 수많은 통치자가 자신들 주장을 합리화했다. 예컨대 독일 그리스도인은 아돌프 히틀러에게 충성하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 정당화했다. 한때 박정희 정권의 실세였던 김종필 씨도 이 본문을 가지고 박정희 정권이 하나님의 정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두환 씨가 군사 쿠데타에 성공하고 난 다음 한경직, 조향록 목사를 비롯한 중요한 교회 목사들이 자발적으로 전두환 정권을 합리화하려고 꺼낸 구절도 바로 이 본문이다.

그렇다면 이 본문이 그렇게 해석해도 좋은 본문인가? 폭력적인 수단으로 잡은 권력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악한 정권들에 주는 신적 인가를 말하는 구절인가? 성경은 마치 독재정치를 조장하는 책인 것처럼, 그리고 권력가들에게 무조건적 순종을 요구하는 백지 위임장인 것처럼 끊임없이 잘못 이용되어 왔다. 다행히도 오늘에 들어오면서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이 본문은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박영실, '바울의 권세에 대한 이해', <신학지남> 277호)

로마서 13장은 어쨌든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이 통치자를 사소하게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시민사회의 법까지도 무시하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창조 전에 있던 혼돈을 극복해 세워진 하나님 창조의 선한 질서가 인간 사회에 세워졌다. 국가 권력을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로 간주하고 그 유효성을 인정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부패는 질서를 필요로 한다. 바울은 이 질서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말한다. 혼돈과 무질서는 하나님의 적들이기 때문이다.

한때 기독교인 중 재세례파에 속했던 토마스 뮌처는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며 국가를 혼란에 빠트리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정부주의자가 돼서는 안 된다.(자끄 엘륄,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하나님이 주신 국가 질서를 반대하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지원함으로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에 대한 복종 안에서 행해져야

그러나 이 본문이 말하는 중요한 또 하나가 있다. 정부의 권세를 상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통치자들이 사회질서를 위한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에 어떤 권력이든 창조자에게 드려야 할 완전하고 절대적인 충성을 시민들에게 요구할 때 통치자는 그 순간부터 이미 신적인 질서를 거스르거나 또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는 그런 통치자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폴 악트마이어, <로마서>) 모든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어떤 권세도 하나님 밖에도 위에도 없다.

"권력에 대한 복종은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지만 그것은 더 원대한 하나님께 대한 복종 안에서만 행하여져야 한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가를 인정해야 한다. 국가가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금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저항하는 것이다." (존 스토트, <에베소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공회원들에게 말했듯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행 4:19)

칼빈은 <기독교 강요> 20장 '국가와 통치' 1~23에서 길게 통치자에게 복종할 것을 논한 후, 24~32에서 "그러나 통치자들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명령한다면 그 명령은 듣지 말아야 한다.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한 순종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모든 왕들의 욕망도, 왕들의 모든 명령도, 왕들의 권위도 모두 그분께 복종하고 굴복해야 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왕 중의 왕이시니 그가 거룩하신 입을 열면 다른 모든 사람의 말에 앞서서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 다음으로 우리는 우리를 다스리는 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통치자가 폭군 노릇을 하면 국가의 고위 당직자들이 그 폭군을 제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존 칼빈, <기독교 강요>)

칼빈 매우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의 저항권에 대해 언급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말하였다. "악이 승리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가 하나님과 같은 수준에 놓여서는 안 된다. 가이사와 하나님 사이의 동등성에 대한 이야기는 있을 수 없는 말이다."(오스카 쿨만, <국가와 하나님나라>)

교회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통치하는 정치적 실체다. '하나님나라'에서 "나라"(왕국) 자체가 이미 정치적, 사회적 실체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나라의 전진기지인 교회는 불가피하게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정치는 가난한 자를 위한 정치요,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거부하는 악의 세력, 사탄의 통치에 맞서 싸우는 전투다. 이 땅에 구체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잘못된 세상 나라를 저항하는 실제적인 싸움이다.

천국, 하나님나라는 우리에게 세상 국가보다 더 우월한 충성심을 요구하는 정치적 실재다. 따라서 현 정치 권력이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따르지 않을 때, 이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 박철수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박철수 / 분당두레교회 원로목사, <하나님나라>(대장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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