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뉴스앤조이>에 제보가 들어왔다. 자신을 목회자 아내로 소개한 A 씨. 밖에서는 아주 젠틀한 목사 남편이 집 안에만 들어오면 괴물로 변한다고 했다. 기물 파손은 물론 폭언, 폭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고통에서 헤어나고 싶다며 취재를 의뢰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자 A 씨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기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벽 뒤로 숨었다. 억지로 입을 열 수는 없는 노릇. 고통과 두려움에 용기를 잃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 목사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는 사모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매 맞는 사모는 많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목사 남편에게 맞는 아내. 과연 A 씨만의 일일까. 이 사안에 대해 듣기 위해 전문가를 수소문했다. 9월 28일 크리스챤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정푸름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정 교수는 한신대학원에서 신학, 미국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목회상담학을 전공했다. 20대 초반에 전도사로 사역한 경력도 있다. 지금은 목사 아내이자 상담가, 교수로서 또 다른 목사 아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정 교수는 내담자 사례를 외부로 노출하지 않는다는 윤리 강령에 따라, 내담자 개개인의 사례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지 않았다. 구체적인 케이스보다 평소 교회에서 보고 들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

다음은 정푸름 교수와 나눈 대화다.

- 교회에 있으면서 목회자 가정의 폭력 사례를 접한 적이 있는가.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많이 알고 있다. 직접 상담한 사례를 언급하지 않아도 교회에서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할 정도다. 눈에 멍이 들어서 온 사모, 우울 정도가 깊어서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사모, 오랜 기간 참다가 교인들에게 이야기했는데 교인들이 오히려 목사 편을 들어서 나중에 예배 시간에 무릎 꿇고 사죄한 사모도 있었다.

케이스는 다 다르다. 흔히 폭력이라고 하면 단순히 외상을 남기는 물리적 폭행만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대화 도중 욕설을 쓰거나 교인 앞에서 비하하는 일, 성관계를 강요하는 것, 직접 때리진 않아도 부부 싸움 도중 위협을 가하거나 물건을 던지는 일, 경제적으로 강하게 규제하는 것 등, 이 모든 게 가정 폭력이다.

- 목사의 가정 폭력은 다른 사안보다 많이 드러나지 않은 영역이다.

기사화는 물론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쉽지 않다.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사모가 상담실을 찾는 비율은 현저히 낮다. 개인적인 도움을 청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다. 불륜이나 자녀를 때리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참는 편이다. A 씨 경우처럼 자기에게 이런 일이 있다고 폭로하기를 원하지 않는 거다.

사모의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끔 단체 상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모들은 그룹 안에 일반 교인이 있으면 본인 이야기를 가리거나 축소해서 말한다. '예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좋아졌다' 식으로 표현한다. 과거 어려움은 잘 이야기하지만 현재 겪는 문제를 쉽게 말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 직시 자체를 못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 전반에는 상황이 어려워도 현실에 만족하는 신앙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니 사모도 스스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을 불평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다.

- 이혼하는 것까지는 상상도 쉽지 않겠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보다 이혼을 결정하는 게 어렵다. 일반인은 이혼을 고려할 때 아이는 어떻게 하고 부모에게는 뭐라 설명해야 하나 고민한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힘든 결정이다. 그런데 사모는 여기에 교회 문제까지 고려한다. 교인들을 시험 들게 하는 건 아닌지, 이혼으로 남편 목회 인생을 끝내는 건 아닌지, 주의 종이 하는 사역을 막았을 때 그 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이혼을 결심해도 이후 삶이 막막하다. 대부분 목사와 함께 교회 사역을 하기 때문에 당장 경제적인 문제에서 막힌다. 자기 앞으로 돈을 벌어놓은 것도 아니고 커리어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어렵다.

- 교인들이 목사 편을 든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사모가 2차 피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에게는 더 강한 사람 편을 들려는 본성이 있다. 교회 안에서 사모는 약자다. 또 교인 자체가 목사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아 목사 이야기를 너무 쉽게 수긍한다. 의식적으로 약자의 편을 들지 않으면 우리는 당연히 강자의 편을 든다. 그러니까 사모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도 나중에는 '저 사모는 원래 이상했다', '성격이 평탄치 않다'. '목회에 도움이 안 됐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점은 교인 입장에서는 실제 사모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래 가정 폭력을 오랜 기간 당하면 사람이 이상해진다. 배우자가 자신을 폭행하는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살기 어려워지는 거다. 논리정연하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 쉽지 않고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말이 많아지거나 없어진다. 표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글리해진다. 도움을 주고 싶은 전형적인 '피해자상'과 거리감이 있게 된다. 사모도 사건을 두고 자기 책임 추궁과 자책, 자기 불신을 한다. '내가 더 잘할 걸', '더 잘 도울 걸', '성격을 맞춰 줄 걸' 등의 합리화를 한다. 가해자를 이상화하기도 한다.

- 사모가 교회 안에서는 취약 계층처럼 느껴진다.

정말 취약 계층이다. 강자를 옹호하는 교회 문화 속에서, 사건이 생겼을 때 약자를 탓하는 경향이 있다. 성폭행당한 사람에게 '그러니까 왜 그런 옷을 입고 웃으며 다녔냐' 말하는 것과 유사한 패턴이다.

특히 사모들은 매뉴얼이 없다. 목회자에 대한 기대는 있지만 사모들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기준이 없다. 있는 기준들도 애매모호하다. 예를 들어 너무 잘나가도 안 되고 너무 못 나가도 안 된다. 옷을 잘 입어도 못 입어도 안 된다. 말을 너무 많이 해도 안 되고 너무 없어도 안 된다 같은 것들이다.

사모에게 요구되는 기준만 보더라도 사모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각자 다른 기준을 갖고 있는 교인들에게 맞추기 위해 되도록이면 말 나오지 않게 스스로 자기 검열하고 조심한다. 즉 자기 결정권이 없다.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죽여야 하는 자리다. 이런 상황에 길들여진 사모일수록 이혼을 직접 결정하거나 경찰에 신고해야겠다는 주체적인 생각을 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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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을 위한 컨퍼런스나 세미나는 없나.

종종 있다. 큰 교회나 상담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 거기서 실제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사모의 정신 건강이나 깊은 내면의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영적 무장, 신앙심 고취에 집중한다. 목회하느라 수고했으니 마음 편하게 쉬게 해 드리자는 취지로 여는 행사도 있다.

교단마다 가정 폭력을 겪은 사모를 도울 수 있는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 1366 같은 핫라인이나 폭력 대처법을 소개하는 책자가 만들어져야 한다. 미국 교회의 경우, 한국보다 가정 폭력에 관심이 있다. 문제점을 짚는 설교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정 폭력 당했을 때 도움받을 수 있는 단체를 적어 놓은 브로슈어가 비치돼 있다.

안타깝지만 한국에서 당장 실행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한국 교단에서는 윤리 강령도 잘 채택되지 않을 뿐더러, 목사의 정신 건강도 잘 다루지 못하는데 사모까지 오기는 힘들지 않겠나.

- 목사는 도대체 왜 폭행을 하는 것인가.

만나 보면, 이상한 교단, 이상한 목사가 아니다. 이상하게 생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적이고 목회 잘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사들이다. 폭력의 이유는 다양하다. 유년 시절 가정이나 사회에서 '사내가 싸울 줄도 알아야지, 때릴 수도 있지' 등의 교육이 이유가 됐을 수도 있다. 스트레스만을 원인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만약 목사가 목회 스트레스 때문에 때리는 거라고 말한다면, 그건 폭력을 합리화하는 거다. 나는 목사가 사모를 때려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까 때린다고 생각한다. 폭행을 당한 사모가 비밀 유지를 해 주고 교인들이 알아도 큰 말 나오지 않으니까 그러는 것 같다. 목사가 장로나 집사를 때릴 수 있겠나. 절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목사의 폭행을 외부에 알려야 한다. 만천하에 공개하진 않더라도 이 문제가 가정 안에 고여 있으면 해결될 가능성이 적다. 경찰에 신고해서 목사가 문제를 자각할 수 있도록 돕든지, 주변 목회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면 폭행을 중단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 목회자 가정 폭력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사모들에게는 일단 안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전해야 한다. 사람들의 이목, 목회보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게 훨씬 중요하다. 또 비상 상황에 대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7년 간 큰 가방을 늘 들고 다녔다. 비상시 필요한 서류, 가족사진을 챙겼다. 언제든지 바로 도망갈 채비를 한 거다.

이게 지나치다 생각되면, 몇 주쯤 생활할 수 있는 비상금이나 내 연락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 배우자 감정이 고조될 때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어린 자녀일수록 함께 자리를 빠져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보호하며 탈출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목사들은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은 항상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상담받기 어렵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갖고 있는 틀이 있다. 교인들도 목회자 가정에 원하는 상이 있기 때문에 좀처럼 흠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절대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한 모습, 이상적인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신의 약점을 보이기 어렵고 도움조차 받기 힘들다.

두 사람 모두에게 상담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항상 때리는 경우는 드물다. 문제는 폭행을 하고 나서 신혼기가 찾아온다는 거다. 사과도 하고 꽃다발도 사 준다.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고 서약서도 쓴다. 그러면 대부분 우리 목사님이 회개했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다시 감정이 고조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폭력의 패턴을 멈추는 방법은 상담밖에 없다. 두 사람 간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상담을 받을 생각이 있다면, 부부 상담은 추천하지 않는다. 상담이라는 게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일인데, 내용을 듣고 불쾌해진 목사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 목회자 가정 폭력이 점차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아니다. 요새 젊은 목회자들은 생각이 깨어 있어서 연배 있는 목회자와는 다를 거다. 가정 폭력 자체가 많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많이 드러날 것이다. 지금도 과거보다는 많이 드러난 상태기도 하고. 동성애 문제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 아래에 있던 일들이 점차 위로 올라올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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