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났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백남기 농민이 결국 9월 25일 오후 2시경 사망했다. 백남기 농민은 작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때 경찰이 직사 살수한 물포를 맞고 쓰러져 317일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세상을 떠났다.

백남기 농민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알려진 9월 24일부터 경찰은 그가 입원한 서울대병원 일대를 에워쌌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면 경찰이 부검을 위해 시신을 탈취할 것이라는 믿기 힘든 소문이 퍼졌다. 25일 오후부터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밀고들어오는 경찰과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경찰의 병원 출입구 봉쇄로 조문도 원활하지 않았다.

실제로 경찰은 25일 밤 11시경 법원에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 병원을 에워싼 이유가 명백해진 것이다. 다행히도 법원은 26일 아침 이 영장을 기각했다. '부검'은 "사인(死因)를 밝히기 위해 사후(死後) 검진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의문사라면 부검이 필요하겠지만 백남기 농민은 아니다. 그 이유를 정리했다.

1. 그날 현장 영상이 있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포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쓰러졌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당시 현장 영상이 존재하니 빼도 박도 못한다. 경찰은 백남기 농민의 얼굴에 물포를 직사 살수했고, 그가 쓰러진 후에도 그 위에 계속 물포를 발사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백남기 농민을 구하러 왔을 때도 집중 사격은 계속됐다. 이 모든 현장에 대한 영상, 사진, 증인이 존재하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경찰은 2,800RPM 압력으로 물포를 쐈다. 백남기 농민 두부에 가해진 충격을 추산하면 241kgf, 쿵푸 유단자의 펀치(220kgf)보다 더 세다. 얼굴에 물포를 맞고 뒤로 쓰러져 후두부가 땅에 부딪힐 때의 충격을 계산하면 363kgf·m가 나왔다. 이는 1만 2,000CC짜리 엔진이 돌릴 수 있는 힘(265kgf·m)보다 훨씬 크다.

2. 의료 기록이 모두 존재한다.

백남기 농민은 작년 11월 14일 저녁 물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후 바로 구급차에 실려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검사 결과 외상성 경막하출혈과 지주막하출혈로 인한 뇌탈출증 및 두개골, 안와, 광대 부위 다발성 골절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의식은 계속 혼수상태였고, 폐렴, 욕창, 패혈증, 신부전증 등 합병증이 반복돼 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9월 25일 발표한 의견서는 다음과 같다.

"본 환자(백남기 농민)의 발병 원인은 경찰 살수차의 수압, 수력으로 가해진 외상으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과 외상성 두개골절 때문이다. 당시 상태는 당일 촬영한 CT 영상과 수술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현재 본 환자는 외상 발생 후 317일간 중환자실 입원 과정에서 원내감염과 와상 상태 및 약물 투여로 인한 합병증으로 다발성 장기부전 상태이며 외상 부위는 수술적 치료 및 전신 상태 악화로 인해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사망 선언 후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이날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지한 의사는 "(부검을 하겠다는 것은) 발병 원인을 환자의 기저질환으로 몰아가는 저의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 가족이 반대한다.

백남기 농민의 아내 박순례 씨와 자녀 백두산·백도라지·백민주화 씨 누구도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 유가족들은 남편·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가 '경찰의 불법 물포 사용'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런데도 경찰은 검찰과 협의 후 부검 영장을 재신청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서울대병원과 혜화, 종로 일대를 봉쇄했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한편,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정당들도 논평을 냈다. 국민의당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경찰의 살인적 진압"이라고 명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검찰은 명백한 죽음의 원인을 두고 '부검' 운운하며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여당 새누리당은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빌면서 "시위가 과격하게 불법적으로 변하면서 파생된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검찰과 같이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게 된 원인을 '불법·과격 시위'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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