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하얀 교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을 에워쌌다. 500여 명이 눈을 감고 정좌한 모습은 경건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날씨가 흐려지고 굵은 소나기가 지나갔지만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현수막이 나부꼈다. "원불교는 평화입니다." 9월 12일 원불교 평화 명상 기도회 장면이다.

지금 한반도 사드 배치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곳은 원불교다. 성주 군민의 반대에 부딪힌 정부는 당초 발표한 부지가 아닌 제3부지를 찾기 시작했다. 현재 가장 유력한 곳은 김천 근처 성주군 초전면 롯데스카이힐컨트리클럽(골프장)이다. 이곳은 원불교 성지와 직선거리로 5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국방부는 이달 안으로 제3부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누구는 원불교가 사드 반대 투쟁에 나선 것을 님비(NIMBY)라고 비난한다. 자기들 성지가 있으니까 반대한다고 말이다. 누구는 정교분리 원칙을 들며 종교가 정치에 왜 이리 관여하느냐 비판한다. 북핵 문제를 언급하면서 국가 안보를 위해 원불교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원불교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사드철회및성주성지수호대책위 집행위원장 김선명 교무를 9월 22일 서울 삼각지역 근처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드는 물론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대책위 집행위원장 김선명 교무. ⓒ뉴스앤조이 구권효

- 제3부지로 유력한 롯데 골프장 옆이 원불교 성지라고 하던데.

직선거리 500m 떨어진 곳에 원불교에서 '평화의 성자'로 추앙받는 정산종사와 그의 동생 주산종사 탄생지가 있다. 그곳이 원불교 성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정부가 한 종교의 성지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 아닌가 싶다.

정산종사는 열반 전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설파하셨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삼동윤리 중 첫 번째 동원도리(同源道理)는 모든 종교·이념·사상의 근원은 하나라는 뜻이고, 두 번째 동기연계(同氣連繫)는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계돼 있다는 뜻이며, 세 번째 동척사업(同拓事業)은 모든 일이 하나의 세상을 이뤄 간다는 뜻이다.

정산종사의 삼동윤리는 결국 모든 것이 하나이니 대동 화합하라는 평화의 메시지다. 이런 평화의 성자가 탄생하신 곳에 정부는 무기를 가져다 놓겠다고 하는 것이다.

- 원불교에 소속된 한 단체가 아니라 교단 전체가 반대 투쟁에 나선 것 같은데.

국방부나 문체부 등에서 원불교 교정원(중앙본부)에 많이 다녀갔다. 사드 배치에 대해 설명도 하고 양해도 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경산 종법사(원불교 최고 지도자)께서 "사드와 성지는 공존할 수 없다. 사드는 옮길 수 있지만 성지는 옮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한은숙 교정원장도 "나와 사드를 바꾸라"며 강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올해가 원불교 100주년이다. 지난 5월 100주년 기념 대회를 하면서 '원불교는 평화입니다'라는 명제를 확고히 했다. 그동안 정치적인 부분에서 교단은 소위 '전략적 모호성' 자세를 취한 적이 많았다. 100년을 돌아보며, 종교가 관념적 영성에 갇히지 않고 당면한 시대적 과제에 참여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결단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교단 지도부의 결정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 같다.

(원불교는 9월 22일 교단 차원의 '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기존 대책위에서 좀 더 외연을 확장한 것이다. 비대위원장은 한은숙 교정원장이 맡았다.)

▲ 9월 12일 광화문광장 명상 기도회 현장. (페이스북 '사드 말고 평화 교당' 페이지 갈무리)

- 어느 종교에나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 있고 진보적인 사람이 있을 텐데,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

원불교도 마찬가지다. 신도들은 물론 교정원 간부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에 힘들어하는 신도가 있고, 그러니 좀 더 숙고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제기된다. 이건 앞으로 내부에서 잘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고 국가 안보를 등한시하는 건 아니다. 한국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안보를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는 건 사드 배치가 과연 북핵을 억제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데 최선의 방법이냐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사드 배치 강행은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부지 선정 과정의 절차적 민주성 상실이다. 두 번째는 사드 자체의 효용성 문제다. 사드는 남북처럼 거리가 가까운 나라에는 실익이 없고, 실제 날아오는 탄두를 맞춘 전례도 없다. 셋째는 정부의 외교 안보 무능이다. 북한과 대화하는 게 핵을 억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에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에 완전히 실패했다. 이건 국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이게 국민이 사드 배치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 원불교의 반대를 님비 현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원불교는 제3부지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 7월 13일 국방부가 처음 부지를 발표했을 때,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가 바로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다음 날 대구·경북교구에서 성주군청 지지 방문을 했다. 8월 12일에는 성주군청 앞에서 원불교 기도회를 열었다. 제3부지가 거론된 후로 원불교가 반대했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다.

사드 배치는 한반도 어디에도 안 된다. 100주년 기념 대회에서는 "한반도 전체가 성지다"라고 천명했다. 원불교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은 종교적 양심에 따른 것이다. 무기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평화는 가까워진다는 게 우리의 신념이다.

▲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사무실 앞에는 '평화카페'라는 이름으로 테이블이 놓여 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입간판과 현수막 등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전망이 밝지는 않다. 국방부는 이 달 안에 제3부지 발표를 예고했다.

사드는 한국에 배치되기는 하지만 엄연히 주한미군 것이다. 한국은 부지를 내 주는 것뿐이지 않나. 북핵을 억지하기 위해 들여놓는다고 하는데 작동은 우리 맘대로 할 수 없다. 정부도 이 부분에서 고민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이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게 오히려 정부를 도와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철회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속 유보시키면서 제3의 방책을 세우는 게 최선이지 않나 싶다.

- 종교계 반응이 미지근하다. 타 종교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종교에서 '종' 자는 마루 종(宗), 근원·근본을 뜻한다. 종교란 지고지순한 가르침이다. 국가·인종을 넘어 모든 인류의 안녕과 평안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믿는다. 종교는 정의와 진리를 말해야 한다. 세상의 조건에 구애되지 않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예언자 기능을 해야 한다.

사드 배치 반대로 국민 전체가 힘들어하고 있다. 생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로 평화를 얻을 수는 없다. 나라가 잘못 가고 있는 건 종교인 책임이다. 원불교는 한국 4대 종교라고는 하지만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에 비하면 아주 작다. 3대 종교가 종교의 본뜻대로 사드 반대에 힘을 같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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