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에콰도르에서 선교사로 헌신하다 순교한 짐 엘리엇의 신앙을 다룬 <전능자의 그늘>(복있는사람)을 쓴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질문 하나 던지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이 그토록 크게 다른 일이란 말인가? 후자는 전자의 논리적 귀결이 아닌가? 하나님을 위한 삶은 그 자체가 사도 바울의 말대로 '날마다' 죽는 것이다." 그녀는 순교자를 영웅처럼 칭송하는 것에 찬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독인에게 순교는 특별한 표징처럼 다가온다. 예수가, 초대교회 사도가 순교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순교는 종교적 환상으로 작용해 종교에 대한 열정과 광기를 부추기기도 한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김은국의 <The Martyred>[<순교자>(을유문화사)·(문학동네) 역간]는 이 문제를 짚는다. 소설은 한국전쟁 당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신 목사는 순교자가 아닌 자들을 순교자로 위장해 대중이 전쟁 상황에서 희망을 놓지 않도록 독려한다.

순교자는 신앙 영웅으로 추앙되기 쉽고, 다른 한편으로 순교자가 보여 준 신앙의 명맥을 이어 가는 영성가의 생애는 신자 개개인에게 신앙 동력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들 생애에 경도되는 것과 그 신앙을 받아들여 삶에 적용하는 문제는 다른 지점에 놓여 있다.

<영성의 깊은 샘>(IVP)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책이다. 초대교회에서 현대까지 기독교 역사를 '영성'으로 읽어 내고 있다.

영성으로 읽는 기독교 역사

저자 제럴드 싯처는 11가지 키워드로 영성의 역사를 정리한다. 색깔은 다르지만, 신앙의 본을 보인 역사 속 걸출한 영성가들의 삶을 그들이 살아간 시기별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증거: 초기 기독교 순교자들의 영성 △소속: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영성 △고투: 사막 성자들의 영성 △리듬: 수도원 운동의 영성 △거룩한 영웅들: 성상과 성인들의 영성 △창: 성례전의 영성 △연합: 신비주의 영성 △일상성: 중세 평신도의 영성 △말씀: 종교개혁가들의 영성 △회심: 복음주의자의 영성 △모험: 개척 선교사들의 영성.

주목할 점은 이 책에서 다루는 영성사가 싯처가 직접 가르치고 적용한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워싱턴주 휘트워스대학교 신학과 교수인 싯처는 캐스케이드산맥 외딴 지역 캠프장에서 한 달간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목을 주관한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포함한 모든 방해거리를 내려놓고 하루 4번 예배, 4시간 침묵, 토론 및 소모임 활동을 하면서 영성사를 개괄한다. <영성의 깊은 샘>은 이에 기반한, 단순히 인물 '소개'로 그치지 않고 '적용'까지 나아가는 책이다.

싯처는 "영성사가 그들의 역사가 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그들 자신이 속한 영적 가족의 일원이 된다"(31쪽)고 지적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성인들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고 (중략) 이 역사에 고취되어 학생들은 과감히 달라지고자"(31쪽) 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싯처는 기독교 역사가 증언한 '영성'을 더 이상 특별한 '성인'이나 '위인'들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삼아 오늘날 세상 문화 가운데서 주체적인 기독교인으로 설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 책 내용을 보면, 각 키워드로 특정되는 시기별 신앙 인물 및 흐름을 짚고 그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지 실천을 주문하고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관련 성구를 적고, 영성가들 삶을 묵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을 촉구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바울부터 시작해 사막 교부, 종교개혁가를 거쳐 윌리엄 캐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을 다룬다. 색깔이 다른 것 같으면서도 실상 한 흐름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보여 준 영성가들이다.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주로 선포하라고, 사막 성자들은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 맞서 싸우라고 요청한다. 초대교회는 깨지고 쫓겨나고 단절된 사람들이 속할 공동체를 형성하라고 도전한다. 중세 수도사들은 건강한 리듬을 따르라고, 탁발 수도사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으라고, 신비가들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추구하라고 초대한다.

종교개혁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삶을 굴복시키라고,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라고 촉구한다. 이제 우리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사용하여 확장시키고 풍성하게 하고 경계로 삼을 수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더 많이, 훨씬 더 많이 있으니!'라고 말한다." (435쪽)

▲ <영성의 깊은 샘> / 제럴드 싯처 지음 / 신현기 지음 / IVP 펴냄 / 568쪽 / 2만 5,000원 ⓒ뉴스앤조이 강동석

제목 '영성의 깊은 샘'이 보여 주듯이, 영성가들 삶은 예수를 본류로 삼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빛의 원천이시고 우리가 그 빛을 받아들이는 자라면, 일상생활은 빛이 비치는 전경이다."(444쪽)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 가운데서 보통 사람으로 사셨다. 예수님은 세속에서 거룩을, 일상생활에서 종교를 분리하지 않으셨고, 우리 역시 그래서는 안 된다. (중략) 일상생활에 적용할 때 비로소 우리 영적 삶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다."(445쪽) 이것이 이 책이 주목하는 바다.

머리말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가 끌어오는 예수의 기도가 이 책의 특성을 적절하게 정리한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예수를 갈망하는 자, 생수가 솟아나는 우물에서 '하나님의 자원'을 길어 마시고 싶은 자, 이 책을 읽으라.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책 전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삶을 사용해 온 다양한 훈련들을 설명했다. 예를 들면, 영적 독서, 침묵 기도, 금식 등이다. (중략) 실제로 기독교 신앙에는 진지한 훈련이 필요하다. (중략) 그러나 훈련이 아무리 중요하고 필수적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영성은 훈련을 초월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서 나온다." (436~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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