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온교회는 매일 스쿨버스를 운행하며 마을에 하나뿐인 초등학교를 지키고 있다. (사진 제공 시온교회)

화요일 아침 7시. 교회 앞마당에 승합차 두 대가 주차돼 있다. 하나는 교회 차고, 다른 하나는 노란색 승합차다. 이 시간에 손님이 와 있을 리 없다. 김영진 목사는 교회 차 대신 노란색 승합차 운전석에 오른다.

건넛마을에 도착했다. 좁다란 시골 길을 구불구불 돌아 정해 놓은 집들을 한 군데씩 들른다. 그때마다 책가방을 멘 여남은 살 된 꼬마들이 한 명씩 차에 오른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아이들 인사말이 싱겁다.

마을에서 마을로, 총 운행 시간은 1시간을 웃돈다. 잠이 덜 깨서 연신 하품을 하는 아이, 친구랑 말장난 치다가 팽 토라진 아이. 시골 마을 아이들의 하루는 그렇게 김 목사가 운전하는 승합차 안에서 시작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이따 보자." "네." 돌아온 대답이 짧다. 이들은 매일 보는 사이다. 이따 오후 4시쯤 하교 때 다시 본다. 승합차는 학교를 빠져나왔고 아이들은 하나씩 안으로 들어갔다.

1993년 시골 교회에 생긴 마을 극장

23년 전 김영진 목사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시온교회에 부임했다. 교회는 가난했다. 마을 어르신들한테 인사를 드리면, 돌아온 대답은 늘 '걱정'이었다. 젊은 사람이 그 교회에서 어째 살려고 왔을까.

부임한 지 몇 달 안 돼서, 고가의 빔 프로젝터를 하나 장만했다. 교인들이 말렸다. 교회 형편이랑 안 어울리는 장비였다. 작은 시골 마을에 무슨 쓸모가 있다고 그러는지 젊은 목사의 행동을 이해 못 했다.

광목천을 떼다가 예배당 정면 강대상 있는 벽에다 걸었다. 빔 프로젝터는 영화 상영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마을에 극장이 하나 생겼다. 동네 꼬마들에게 만화영화를 틀어 주고,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함께 볼 만한 영화를 선별해서 달마다 꼬박꼬박 상영회를 열었다. 작은 교회로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 마을과 함께하는 추수 감사 한마당. (사진 제공 시온교회)

천북면 신죽리는 축산업의 본고장이다. 집집마다 축사가 있고 곳곳에 목장이 있다. 냄새는 생업만큼이나 치열했다. 동네 어귀마다, 마을에서 마을로, 시온교회 앞마당까지 고스란히 소똥 냄새가 점령했다.

김 목사의 두 번째 아이디어. "들꽃을 키워 보자." 우선 교회 앞마당에 산만하게 피어있는 들꽃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정원을 예쁘게 가꿔 놓고, 교인들에게도 집집마다 그렇게 꽃밭을 가꿔 보라고 권했다.

2~3년을 그렇게 키우니 교회 앞 마당에도 집사님들 뒤안 뜰에도 들꽃이 제법 보암직하게 자라났다. 들꽃 전시회를 열었다. 목사도 교인들도 흐뭇해한다. 이듬해에는 축제로 번졌다. 마을 주민들도 모여들었다.

자그마한 잔치로 시작한 들꽃 축제가 10년을 거듭하면서, '온새미로'(자연 그대로, 또는 생김새 그대로) 축제로 커졌다. 2009년과 2010년에는 보령시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에 연속 선정됐다. 마을 주민과 천북면 이웃들, 도시에서 온 손님들까지 해마다 1,500여 명이 모인다.

들꽃은 미끼였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마을을 자랑했다. 정직하게 기른 소고기 품질을 자랑했고, 양질의 우유와 유제품을 자랑했고, 유기농 배추의 신선도를 자랑했고, 소박한 시골 마을 정취를 자랑했다.

낙동초등학교 살리기

마을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낙동초등학교. 농촌 학교 현실이 대부분 그렇듯 낙동초등학교도 학생 수가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2007년에는 전교생이 49명으로 줄었다. 교육청으로부터 폐교 수순을 밟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 60명 이하 학교들은 통폐합한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김 목사를 중심으로 시온교회 교인들은 낙동초등학교 지키기 결사대를 꾸렸다. 학교에 방과 후 공부방을 차리고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선생님 역할을 맡았다. 동문회와 함께 스쿨버스 운행도 시작했다. 승합차 두 대를 마련했다. 한 대는 동문회장이, 한 대는 김영진 목사가 맡아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운행했다.

방송도 탔다. 2009년 KBS '천상의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 낙동초등학교 소식이 실렸다.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과 낙동 아이들이 합창을 하던 장면이 전파를 탔다. 폐교 위기의 낙동초등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폐교 이야기는 그 뒤로 쑥 들어갔다.

2007년 이후로 학생 수는 더이상 줄지 않고 있다. 지금도 45명을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건물도 지어 올렸다. 영어 방과 후 학습, 어린이 도서관, 악기 연주를 위한 실습 공간 등 다양한 지원이 줄을 이었다.

▲ 낙동초등학교는 전교생 45명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 제공 시온교회)

목사님은 부흥사, 마을 부흥사

김영진 목사는 부흥사다. 교회며 기도원이며 부흥 집회를 다니는 부흥사가 아니고, 천북면 신죽리 부흥사다. 5년 전에는 신죽리수목원을 개장했다. 시온교회 장로님이 신죽리 부흥을 위해 자기 목장을 내놓았다. 여기서 마을 축제도 열고, 도시민들과 함께하는 농촌 체험 캠프도 열고, 카페와 지역 특산물 매장도 운영한다.

김 목사는 농촌이 농촌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농부들만 사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한다. 어린 아이들이 뛰노는 곳, 도시 사는 사람들도 자주 드나드는 곳, 다양한 문화와 산업이 움트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뭘까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구체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목회는 언제 하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자기가 나서서 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온교회 교인들이 지역 주민으로서 마을로 스며들어 지역을 살리는 일을 맡아서 잘 하도록 하는 일이 자기가 하는 일이라고 했다.

아, 한 가지 나서서 하는 일이 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낙동초등학교 아이들 등하교를 도와주는 일. 김 목사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가기 전 아이들과 함께 마을 인근 해수욕장에 들러 낙조를 감상하며 노는 일이다.

4월 24일(월) 부산 호산나교회(유진소 목사)에서 열리는 '제8차 마을을 섬기는 시골 도시 교회 워크숍'에서 시온교회 이야기를 더 자세히 나눈다. 농촌 학교를 살리고, 문화를 육성하고, 도시 사람들의 왕래도 활발하게 하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4.24 부산] 마을을 섬기는 시골·도시 교회 워크숍 참가 신청하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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