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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여성 안수' 인정했다

<기독교강요>와 '로마서 주해'에 나타난 칼뱅의 진보적 여성관

신동수   기사승인 2016.09.20  1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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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장로교회 각 교단 총회가 열리고 폐회하는 중이지만, 예장합동과 예장고신은 수년에 걸쳐 동일하게 여성 안수를 불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성경적인 사례와 교회사적·목회적 의의를 들어 여성 안수 시행을 강하게 요청하고, 반대하는 측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고 일축한다.

특히 반대하는 예장합동과 예장고신 목회자가 여성 안수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고, 여성 안수를 허하면 마치 큰 사단이요, 기어이 사달이 날 것처럼(자유주의로 가는 첩경이라느니 혹은 동성애 허용의 전조라느니) 말하는 것을 적지 않게 들어왔다. 이런 개혁파 목사들이 제시하는 반대 이유를 보면, 개혁주의 신학과 개혁파 교회에 대한 무지와 빈약한 소양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장로교단, '여성 안수' 얼마나 하고 있나

전 세계 개혁파(Reformed) 혹은 장로교(Presbyterian) 교회의 여성 안수 비율은 다른 개신교회에 비해 상당히 높다. 현재 전 세계 개신교회 여성 안수 비율은 45% 정도인데, 전 세계 개혁파와 장로교 여성 안수 비율은 70%에 이른다. 유럽의 개혁파 교회에서는 대부분 여성 안수를 시행하고 있고, 북미에서조차도 가장 큰 장로교단인 미국장로교회(PCUSA)가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 안수를 시행하고 있다.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가 자유주의 신학에 일찍부터 경도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어폐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장로교회는 자유주의 신학 논쟁과 교단 분리(1922~1936년) 이전인 1893~1920년 사이에 이미 안수로 세워진 여성 교역자 6명이 있었다. 1930년에는 여성 장로를 안수로 세웠다.

장로교회 시발점인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1935년에 여성 안수집사를 세웠고, 1949년에 여성에게 강도권을 주었으며 1966년에는 여성 장로를, 1968년에는 여성 목사를 인허했다. 그중 신학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가교 역할을 해 왔던 북미주개혁교회(CRC)는 오랜 기간 신학위원회의 연구 보고와 교단 교회들의 합의를 거쳐 1995년 여성 목사 안수를 가결하였다.

북미주개혁교회 연구 보고서는 성경적·신학적·목회적으로 균형 있고 종합적인 연구 결과물로 신뢰할 만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연구 보고서에서는 여성 안수에 성경적인 근거가 없지 않으며, 교회사적으로 시행된 증거가 충분하며 목회적으로도 현대 교회에 적실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칼뱅은 '여성 안수'에 대해 뭐라 말했나

장로교회와 개혁파 교회가 다른 기독교회보다 여성 안수에 좀 더 열린 자세와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개혁주의 신학 2세대 대표 장 칼뱅(Jean Calvin)에게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칼뱅은 여성 안수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까? 칼뱅이 활약하던 16세기는 여성 안수가 전혀 문제시되지 않던 시대였다.

여성이 남성의 재산 정도로 치부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불허했으며, 여성의 교회 직분 참여 자체가 하나님이 세우신 자연적 질서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칼빈의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성경 해석이나 여성관이 상당히 가부장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칼뱅이 그의 대표적인 책 <기독교강요> 교회 직분론과 로마서 16장 주해 부분에서 여성 직분자와 여성 사역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은 칼뱅 신학의 진보성을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다.

우선 <기독교강요>를 보자. 칼뱅에게 교회의 항시직은 네 가지로 구분된다. △목사, △교사·박사 △장로, △집사다(IV권 3장). 이들은 모두 안수로서 세워지는 교회에 항상 있어야 할 공적 직분자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집사 이상 직분이 모두 성직 계급에 속한다고 봤다. 이들은 교회의 성직록을 받았다.

루터가 '만인제사장설'을 이야기하며 평신도가 사제와 다르지 않은 직분을 수행한다고 주장했을 때, 이를 교회 체제에 적용한 사람은 칼뱅이었다. 평신도인 장로를 목사와 동등한 직분자로 당회의 일원이 되게 했다. 평신도 중에서 집사를 선택해 교회 재정 운영과 구제 사역을 감당케 하기도 했다. 더 혁신적인 조치도 있는데, 안수로 세워지는 집사(안수집사) 직임을 여성에게도 맡겼다는 점이다. 칼뱅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여자들이 맡을 수 있는 공적 직분은 구제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다. (중략) 집사의 직임 중에 빈민과 병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말한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과부들도 여기에 속하였다(딤전 5:9-10). (중략) 이 해석을 인정한다면 (또 인정해야 한다)" (IV권 3.9)

칼뱅이 교회의 공적 직임이자 항시직인 "(안수)집사"를 여성들, 특별히 믿음과 행실이 좋은 늙은 여성, 혹은 과부에게 맡겼다는 것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조치였다. 지금까지도 개혁파 여성 안수의 역사적 실례로 언급되는 부분이다. 물론 그 실제적 시행까지 수세기가 필요했지만, 칼뱅 신학의 개혁 정신에는 시대와 관습에 매이지 않는 진보성이 초기부터 내재돼 있었다.

이번에는 그의 성경 주해에서 나타나는 여성 사역자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자. 여성 사역자에 대한 칼뱅의 두 번째 언급은 로마서 16장 1절 주해에서 나타난다. 잘 아는 대로, 이 부분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로마서를 전달했던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diakonos, 집사) 뵈뵈를 천거하는 장면이다. 칼뱅은 이렇게 주해한다.

"바울은 먼저 그녀의 직임으로 인하여 그녀를 천거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교회에 가장 영예롭고 거룩한 직분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녀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집사)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녀를 주 안에서 영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략)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지체들을 사랑으로 영접해야 하지만, 특별히 교회의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뵈뵈와 같은) 일군들을 더 확실하게 사랑과 존경으로 대접해야 할 것이다." (칼뱅의 '롬 16:1' 주해)

칼뱅의 교회 직임론은 성경의 규정적 원리를 따른다고 알려져 있다. 교회 공식적 직분이었던 "안수집사" 직임에 여성을 허할 수 있다는 칼뱅 신학의 혁신적 조처는 사실 뵈뵈와 같은 성경적 여성 사역자의 선례를 감안한 것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뵈뵈는 교회의 항시직인 집사 직무를 본 것이지만, 칼뱅은 사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여성 사역자(여사사, 여선지자, 예언자)를 있는 그대로 주해해 왔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특별직, 임시직으로 구분하여 교회의 항시직으로 세우지 않았을 뿐이었다.

칼뱅의 진보적 여성관

당시 정치적 측면에서 여왕을 높게 평가하고, 여왕의 필요성이나 지위에 대해 지지를 보낸 칼뱅의 여성관은 진보적이었다. 교회의 공적 직임뿐 아니라 전반적 여성관이 진보적이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얼마든지 사역자로 세워져 여성도 고귀한 직임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칼뱅의 원리인 것이다.

칼뱅이 제시한 한두 마디로 개혁교회, 장로교회 여성 안수에 대한 모든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다. 혹 여성 안수집사를 허용해도 여성 장로와 여성 목사에 이르기에는 어림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교회의 공적 직임이 사제에게만 국한되던 대립의 시대, 여성 지위가 여전히 모든 면에서 바닥이던 시대에 칼뱅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칼뱅이 안수로 세워지는 교회의 공식 항존직인 "(안수)집사" 직임에 여성을 올리고, 성경적 예를 들어 -특별직으로 구분한 여성 선지자, 예언자, 사사, 그리고 여왕의 직임과 사역을 여전히 인정한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여성을 높였다는 점이 개혁신학의 진보적 -위대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더라도- 유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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