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동체 안에만 있다 보면 떠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가 믿음이 없어서, 또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 중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를 여전히 구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점차 늘어나는 가나안 교인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은 이해도는 높이고, 높은 교회 울타리는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여섯 번째 기사입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교회에 출석한 건 20년, 떠난 지는 올해로 6년쯤 됐다. 지금까지 들었던 설교가 가물가물해질 만큼 시간이 지났다. 30대 초반에는 신의 유무, 구원의 방식, 천국의 의미 등 여러 궁금증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관심 밖 일이 되었다.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추석을 이틀 앞둔 9월 12일 저녁, 마포구 동교동에서 A 씨(37)를 만났다. 그는 양손에 짐을 들고 있었다. 신앙에 회의감이 들 때 읽었던 책들이다. 그는 어린 시절 동네 형들을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는 동네 어린이들 아지트였다.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만나 뛰놀았다. 부모님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교회는 A 씨에게 어색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렇게 십수 년을 교회에서 자랐다. 인간관계 범위가 교회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20대도 교회에서 보냈다. 성실히 출석했다. 평일, 주말 구분이 없었다. 학교 다니는 주중보다 주말이 더 바빴다. 기도회, 찬양팀, 성가대, 교회학교 교사까지 해 보지 않은 봉사가 없다. 재적수가 60명 되는 청년부에서 성경 공부도 하고 QT하며 느꼈던 것들을 나누기도 했다.

▲ 교회 떠난 지 6년째. 20년 넘게 신앙생활한 A 씨는 당시 들었던 설교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어떤 하나님을 만났냐고 묻는데…할 말이 없었다

신앙에 대한 회의는 어느 순간 찾아왔다. 분쟁이 있던 것도, 특별히 교회에 실망한 것도 아니었다. 교회와 트러블이라고 하면 세습 반대 운동에 관심 둔 일, 교회 선배들과 사회문제를 공부하고 대선 시즌에 청년들에게 선거 참여를 독려한 일이 전부다.

우연히 교회 세습 반대 운동을 접했다. 신세계였다. 교회에서 듣던 것과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기독교의 민낯을 보았다. 세미나를 반대하러 온 사람들이 소동을 피웠다. 몸싸움이 붙었다. 낯설기도 했고, 무엇보다 크게 놀랐다. 그래도 신앙에 타격은 없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른들과 청년 모임을 놓고 갈등이 있었지만 떠나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다.

문제는 예배 시간이었다. 찬양 시간에 부르는 노래 가사, 설교 시간에 숱하게 나오는 종교 언어들, 부르짖는 기도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구원, 천국, 은혜, 예배 개념이 모두 모호하게만 느껴졌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말들이 아무 의미 없게 들렸다. 특히 천국에 대한 정의가 그랬다. 교회가 말하는 천국은 죽고 난 후 가는 곳이었다. 현실을 사는 A 씨에게 공허한 소리처럼 받아들여졌다.

수련회나 예배에서 기도하자고 해도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몰랐다. 소리 내지 않고 잠잠히 내면을 살피고 싶었다. 교회서는 통성, 방언으로 기도하자고 했다. 초반에는 믿는 척하며 기도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마저 스트레스가 되었다.

청년부 모임도 부담이 됐다. 늘 A 씨에게 "이번 주는 어떤 하나님을 만났니? 어떤 응답을 받았니?"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체험이 없었다. 차마 "나는 아무것도 못 느꼈어. 모르겠어"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교회에서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컸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흉내만 냈던 건 아니에요.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믿을 때도 있었겠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랬어요. 찬양 한 곡에도 많은 이야기와 의미가 담겨 있잖아요. 그 모든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모든 종교적 언어가 물음표로 다가왔어요."

▲ A 씨는 회의감이 들 때 읽었던 책을 가져왔다. 홀로 책을 보며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왔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죽어서 가는 천국 말고 이 땅 위 하나님나라에 눈뜨다

암호가 된 단어들의 의미를 붙잡고 씨름했다. 신앙의 끈도 놓고 싶지 않았다. 교회 안에서 고민을 털어놓는 게 쉽진 않았다. 혼자 고민하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들을 옆에 끼고 읽었다. 밑줄을 치고 질문을 적으며 하나씩 답을 찾아갔다.

천국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나님나라에 눈떴다. 교회서 배운 것처럼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닌 이 땅에서 하나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삶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예수의 삶이 좋았다. A 씨 마음이 움직였다. 체험 신앙에서 느끼지 못하던 울림이 있었다.

A 씨 신앙은 변했지만 교회는 여전했다. 새롭게 배운 교리와 교회가 말하는 내용 사이에 간격이 넓어졌다. 괴리감이 생겼다. 교회에서 혼란스러움을 이야기하면 "믿음의 눈으로 보라"는 답이 늘 돌아왔다.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 A 씨에게는 의미 없는 답변에 불과했다.

교역자와 상담도 했다. A 씨에게 어떤 책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추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A 씨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과 맞는 교회로 가 볼까도 했지만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수의 삶과 하나님나라 가치에 관심은 있지만, 신의 존재, 신앙생활에서 이미 마음이 멀어진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는 여전히 저에게 울림을 줘요. 예수님이 살아온 이야기에 대한 가치도 중요하게 여기고요. 그런데 교회에 나가서 하는 신앙생활은 저에게 무의미했어요. '교회 밖에서도 잘 살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다른 교회를 찾을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 궁금증은 사라졌지만 회의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교회를 떠나면서 두려움이 컸다. 하나님나라를 새롭게 알았지만 그에게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벌 주는 분으로 깊게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벌 받는 거 아닌가 싶었다.

늦게 믿음을 가진 어머니는 "마귀 들렸다"고 말했다. 허망한 마음도 들었다. 종종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읊조리거나 하나님의 개입을 바랐다. 그러나 그것 역시 오래가진 않았다.

지금은 어떨까.

"좀 더 자유로워졌어요. 예배를 드리느냐 드리지 않느냐 차이일 뿐, 삶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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