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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쓰러진 지 300일, 누구의 책임인가

발로 액셀 밟아 물포 직사, 실전 경험도 단 한 번…9월 12일 10시 국회서 청문회

구권효 기자   기사승인 2016.09.08  14: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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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여야 합의로 백남기 농민(70)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9월 12일 월요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다.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때 광화문에서 경찰의 물포를 맞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30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영상을 통해 경찰이 20m 앞에 있는 백남기 농민 얼굴 부위에 직사로 물포를 쏜 것이 드러났는데도 경찰은 지금까지 처벌은커녕 사과조차 없다.

청문회를 앞두고 새로운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9월 4일 "경찰이 백남기 농민에게 살수차의 액셀을 밟아 물포를 쐈다"고 지적했다. 물의 압력을 조절하는 디지털 기기를 갖추고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주민 의원실이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를 방문해 살수차 시연을 확인한 결과, 발로 액셀을 밟아 쏘는 방식은 정교한 압력 수치 조작이 불가능했다.

또 경찰의 살수차 지침(예시 규정)에 따르면, 시위대가 10m 거리에 있을 경우 1,000rpm, 20m 거리에 있을 경우 2,000rpm의 압력으로 물포를 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백남기 농민의 경우, 20m 거리에서 2,800rpm 압력으로, 그것도 직사로 물포를 쐈다.

   
▲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지 300일째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박남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9월 6일, 민충총궐기 당시 살수차를 몰았던 한 아무개 경장이 실제 상황에서 물포를 발사한 경험은 단 한 번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 경장은 살수차를 2014년 7월 7일부터 총 65회 운용했는데, 이 중 29회는 훈련이었고, 실전 37회 중 물포를 발사한 것은 2014년 9월 22일과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2015년 11월 14일 두 번이었다.

박 의원은 "문제는 29번의 살수차 훈련 때 실전에 가까운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점이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을 당시 경찰은 물대포와 차벽 때문에 시야가 가려 백남기 농민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상황별로 정밀하게 훈련이 이뤄졌다면 이 같은 인명 사고로 이어졌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청문회 핵심 질문 6가지

인권 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앰네스티)는 9월 8일, '백남기 청문회의 핵심 질문 6가지'를 추렸다. 앰네스티는 백남기 사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진상 조사를 위한 청문회 실시를 요구하는 수천 명의 서명을 전달한 바 있다.

앰네스티가 제시한 6가지 질문과 이유를 요약했다.

1. 경찰은 집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민중총궐기'를 '불법'으로 단정 짓지 않았나.

집회 시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에 명시돼 있는 권리로 "급박하고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은 민중총궐기가 열리기 전부터 강경한 사법 처리와 차벽 설치 등을 예고했다. 서울·경기·인천 경찰에 최고 비상 단계인 갑호 비상을 내렸고, 경찰 2만여 명과 경찰버스 679대를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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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예고된 불상사는 아닌가.

경찰은 이날 2014년 한 해 사용량 24배에 달하는 양을 물포로 쐈다. 상반기 동안 사용한 양과 맞먹는 캡사이신을 사용했다. (살수차 19대와 캡사이신 분사기 580개를 동원해 살수차용 물 20만 2000ℓ(202t), 최루액 파바(PAVA) 441ℓ, 색소 120ℓ, 캡사이신 651ℓ를 사용.)

   
▲ 경찰은 살수차 운용 지침에 맞지 않게 물포를 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 홈페이지 갈무리)

3. 물포는 적법하게 사용되었나.

경찰의 '살수차 운용 지침'에 따르면, 직사 살수는 가슴 이하의 부위를 겨냥해야 한다. 하지만 백남기 농민은 머리에 물포를 맞았다.

4. 경찰은 왜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경찰의 '집회 시위 안전 관리 수칙'에는 "부득이 부상자가 발생 시에는 인근 병원에 긴급히 후송 조치해야 한다"고 나온다. 백남기 농민이 물포를 맞고 쓰러져 움직임이 없었는데도,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도우려고 할 때도 경찰은 계속 물포를 쐈다.

5. 누구의 책임인가.

물포 사용을 허가한 서울지방경찰청장, 직사 살수를 명령한 기동단장, 지침을 초과한 수압으로 물포를 쏜 살수차 운용 경장, TV를 보고서야 백남기 농민의 중태 사실을 알게 된 경찰청장. 누가 이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6. 왜 아직까지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나.

사건이 발생한 지 300일이 지나도록 경찰과 검찰은 어떠한 조사 결과도 발표하지 않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퇴임했고,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신윤균 제4기동단장은 영등포경찰서장으로 영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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