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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 벗으로 30년

교회 간판 강조 않고 꾸준히 활동…성공회 노원나눔의집 지난 세월 평가 포럼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6.09.07  10: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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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회가 교인 수 늘리기에만 관심 갖는 시대는 지났다. 최근 교계에서 '선교적 교회'가 회자된다. 기존 교회들과 다른 접근, 다른 방법으로 현대인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교회들이다. 마을과 함께 일하는 교회도 모범 사례로 소개된다. 그런데 이미 30년 전 교회 간판조차 없이 이 길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

성공회 노원나눔의집은 올해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청년 김홍일과 송경용은 1986년 9월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도깨비시장 안에 전세방을 얻어 가난한 이들 속에 파고들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가난하게 살면서 그들과 함께 뒹굴기 위해 '나눔의집'을 시작했다.

   
▲ 양지우 부제(왼쪽)가 노원나눔의집의 역사를 설명하며 신앙 공동체로서 기능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인 듯 교회 아닌 교회 같은 나눔의집

9월 6일, 서울 노원구청 소강당에서 노원나눔의집 30년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노원구에서 사회운동하는 사람들, 나눔의집을 거쳐 간 이들이 축하 인사를 전하러 왔다. 30년, 소처럼 우직하게 한길을 걸어온 노원나눔의집을 격려하고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다.

현재 노원나눔의집은 오상운 사제가 원장으로 헌신하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이 온다는 의미에서 어마어마한 일이다. 나눔의집은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청소년을 돕고, 가난한 사람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도우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오늘은 그동안 노원나눔의집 사람들이 보여 줬던 '환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라고 했다.

나눔의집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곳이 사회복지 기관인지 교회인지 궁금했다. 양지우 부제가 나눔의집이 어떤 변화 속에서 신앙 공동체가 됐는지 설명했다. 나눔의집은 대한성공회 지원 기금으로 시작됐다. 교회를 먼저 내세우기보다, 가난한 자들 삶 속에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사회운동과 교회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던 나눔의집은 김홍일 신부가 영성 선언을 제안하면서 명확한 교회색을 띠게 된다. 양지우 부제는 그것을 △예수와 복음을 몸으로 사는 부활의 증인 △기도(묵상)하는 사람 △노동하는 사람 △공동체 삶 △투쟁하는 사람 △가난하게 삶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으로' 사신 예수를 본받는 것이 선언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 성공회 노원나눔의집은 다양한 사회복지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의 아동과 청소년을 돌보고, 독거 노인을 방문하며,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노원나눔의집 홈페이지 갈무리)

필요 따라 사역하게 하신 하나님

양지우 부제는 "나눔의집 사역을 돌아보면 처음부터 계획을 잡고 시작한 것은 없다. 함께 지내던 가난한 이웃들 필요를 진심으로 경청하니 차례로 할 일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 시작한 가정 연결 사업도 마찬가지다.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이웃을 한 가정씩 만나다 보니 아프고 소외된 장애인 및 소년·소녀 가장이 눈에 밟혔다. 그들을 만나 공부를 가르치고, 함께 먹을 것을 나눴다.

가정 연결 사업을 담당했던 강신저 선생은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다.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굉장히 존경하는 분들이다. 그분들은 집에 누가 와도, 누구를 모셔 가도 환대하셨던 분들이다. 현대사회에서 아무 대가 없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들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분들과 함께하며 나도 스스로 치유되고 성장했다"고 회상했다.

나눔의집은 가정 연결 사업뿐 아니라 다양한 일을 진행했다. 빈곤 가정을 돌보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눈길이 갔다. 아이들을 위한 돌봄 활동을 했고, 공부방으로 전환해 학습지도, 진로 상담을 했다. 음식 나눔을 하다 혼자여서 혹은 거동이 불편해 올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반찬 배달도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계동 작은 방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노원구 사회복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꾸준함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역 기관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아동 센터만 세 곳이다. 그뿐 아니라 청소년교실 '청소년과 나란히', '구립상상이룸센터'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나눔의집 활동가들은 자화자찬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 활동 중 끝까지 이어 가지 못한 사업이 있는 것도 지적하고, 왜 실패로 끝났는지도 짚어 봤다. 지금 하는 일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동·청소년 사업은 지금 그들 눈높이에 맞게 진행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했다.

   
▲ 노원구 사회복지 시설 관계자, 마을 활동가 등이 노원나눔의집 30주년 포럼에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노원나눔의집에서 시작된 나눔의집은 현재 전국 아홉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용산·봉천동·성북 등 서울 지역을 비롯, 포천·동두천·춘천 등 가난한 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활동한다. 가정 결연, 아동·청소년 사업, 자활·실업 극복, 지역과 연계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피해자를 위로하는 감사 성찬례도 수차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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