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동체 안에만 있다 보면 떠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가 믿음이 없어서, 또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 중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를 여전히 구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점차 늘어나는 가나안 교인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은 이해도는 높이고, 높은 교회 울타리는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다섯 번째 기사입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27년간 한 교회에 출석했다. 청년부 리더는 물론 회장도 했다.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청년이었다. 건물 교회를 떠난 지는 4년쯤 됐다. 지금은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교회는 권동조 씨(31) 놀이터였다. 학교 끝나면 곧장 교회로 향했다. 친한 형이 많았다. 교회 집사, 권사들은 친한 형 부모들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예쁨을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무탈하게 교회에서 생활하던 권 씨. 그가 배운 올바른 신앙이란, 착한 일 하고 거짓말 안 하는 것이었다. 평일에는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일에는 바쁘더라도 교회에서 성실히 예배하는 걸 신앙이라 여겼다. 주일을 지킬 수 있는 회사만 고집했다.

▲ 모태신앙인 권동조 씨. 그는 27년간 한 교회에 출석했다. 하나님 앞에서 진중하게 신앙의 길을 묻는 사람이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새로운 신앙을 만나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다

20대 중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우연히 <복음과상황>에서 사회문제를 다룬 글을 읽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세상을 해석해야 하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자신의 신앙이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되짚는 계기가 되었다. 고민 끝에 청년 6명과 책 모임을 만들었다. 기독교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사회에 큰 이슈가 생길 때마다 발단, 전개, 결과를 나눠 사안을 분석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사안을 어떤 시각에서 보고 행동해야 하는지 서로 의견을 나눴다. 자리가 잡히자 관심 있는 청년들을 초대했다. 공부 모임은 1년 가까이 지속됐다.

공부하면서 집회에도 참석했다. FTA가 시작이었다. FTA가 체결되면 국민에게 불이익이 생길 거라 결론을 내렸다. 행동하기 전, 예수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약자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졌다.

잘못에는 아니라고 말하고, 반대하는 게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거라 여겼다. 권 씨를 포함해 세 명의 청년이 집회에 나갔다. 세 사람은 현장에서 물대포를 맞았고, 그 장면이 뉴스에 실렸다. 교회 안에서 권 씨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교회 어른들은 저희가 시위에 나온 거 자체에 충격을 받은 거 같았어요. 포이동 철거 현장에도 종종 갔었는데 성탄절 때는 교회 집사님, 장로님이 같이 오셨더라고요. 걱정이 된다며 오셨어요. 저희는 특별한 날이니까 동네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찾아간 거였어요. 현장에 주민만 있으니까 바로 가시더라고요. 감시하러 온 건가 싶었죠."

교회를 떠나기까지

권 씨를 둘러싼 염려는 1년간 더 지속됐다. 청년부 리더 중 절반이 권 씨와 함께 책 모임을 하고 있었다. 이들을 이해하던 담임목사와 청년부 담당 목사가 한꺼번에 바뀌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어떤 책을 볼 건지 보고하고 교회 장소를 사용할 때 미리 신청하라고 요구했다. 담임목사는 모임을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 권 씨는 제재라고 느꼈다. 혼돈에 빠졌다. 청년들이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게, 과연 자제할 일인가 싶었다. 결국 모임을 그만뒀다.

해가 바뀌며 권동조 씨는 1청년부 회장이 되었다. 청년들의 투표로 선출됐다. 다들 바쁘다는 이유로 임원을 꺼렸다. 교회에 관심 많던 그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임원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예배 끝나고 청년부 담당 장로가 강단에 섰다. 1청년부와 2청년부를 통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청년부가 합쳐지니 임원도 따로 뽑을 거라고 말했다. 권 씨는 당황스러웠다. 청년들이 직접 투표했는데 당사자들 동의도 없이 청년부를 합치겠다는 게 이상했다.

교회의 일원인 청년들 의견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교회가 자신을 포함한 몇 사람을 임원으로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닌가, 의심됐다. 권 씨 질문에 장로는 "교회가 세운 방침에 따라 줬으면 좋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교회를 떠났다. 목사가 권 씨에게 청년부 리더를 해 달라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교회 안에서 갈등만 더 만들 것 같았다. 떠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27년간 다니던 교회를 가지 않는 게 몹시 어색했다. 예배 시간인데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이상했다.

▲ <복음과상황>을 보다가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FTA, 포이동, 세월호 문제 관련 책을 읽으며 공부하며 집회 현장에 나갔다. 교회는 그런 권 씨를 수용하기 어려웠던 걸까. (사진 제공 권동조)

두세 사람 모인 곳이 '교회'

고민 끝에 교회를 떠난 사람들과 공동체를 시작했다. 교회에서 함께 나온 청년 십여 명과 주일마다 모였다. 신학 서적과 성경을 읽었다. 어떤 때는 같이 놀러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권동조 씨는 초대교회를 갈망하게 됐다. 각박한 사회지만 신앙으로 한 가족이 되고, 가진 걸 나눠 쓰며 대안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공동체를 꾸린 지 4년째. 그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꺼내 놓고 스스로 질문했다. 목사만 설교할 수 있나, 건물이 없으면 교회가 아닌가, 같이 모여 찬양하고 말씀 들으면 예배일까, 교회 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원했던 삶은 무엇일까. 서로에게 물었다. 성경을 읽었다. 책을 들었다.

권 씨가 속한 공동체에는 목사가 없다. 서로 돌아가며 설교한다. 주변에서는 목사가 없는데 괜찮냐고 많이 물었다. '설교=목사의 권한'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권 씨 역시 여러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받으며 목사의 역할을 고민했다.

어렴풋이 답을 찾았다. 적어도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대언자는 아닌 것 같았다. 성경을 보면서, 목사를 말씀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는 '은사'를 지닌 사람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했다.

교회나 예배에 대한 개념도 많이 변했다. 전에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건물이나 의식을 답처럼 여겼다. 지금은 다르다. 예수를 믿는 회중이 모인 곳이 교회고,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고 삶의 자세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예배라고 생각한다.

▲ 현재 동조 씨는 몇몇 청년과 공동체를 하고 있다. 함께 성경을 읽고 나눔을 한다. 설교도 돌아가면서 한다. 기존 교회 안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질문을 던지게 됐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여전히 고민 중, 여전히 길 찾는 중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4명만 남아 있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기존 교회와는 다른 관점에 호기심을 보였다. 피상적인 관계에 신물이 난 사람도 있었다.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친밀해지는 경험이 즐거웠다.

갈등은 사소한 지점에서 시작됐다. 구성원 중 재정 나눔, 책 모임을 불편해하는 이가 생겨났다. 권력이 쏠리는 걸 막기 위해 구성원이 돌아가며 설교했지만, 일부는 자신이 직접 설교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일부는 늘 비슷한 공동체 모습에 지지부진함을 느꼈다. "이전 교회로 돌아갈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명확한 해결책을 찾기 어려웠다. 권 씨 역시 여전히 고민중이다. 일단은 남은 네 명이 꾸준히 식탁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 기반을 다지는 게 먼저라고 여긴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공동체를 떠난 사람이나 필요한 사람과 자연스레 연결점이 생기고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긴 대화를 마치며,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가나안 교인이 늘고 있어요. 교회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해요. 교회를 떠나는 모습만 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해요. 많이 고민하고 스스로 질문하다 보면 한국교회가 건강해질 것 같아요. 또 교회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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