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과에 입학한 A 씨는 졸업 후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부모님 사업이 망해 빚 5,000만 원을 고스란히 떠안았기 때문이다. 빚을 갚으려면 일을 해야 했다. 어릴 때 '부르심'을 따라 목회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A 씨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전도사 B 씨는 카드 빚이 900만 원이다. 특별히 과소비를 한 건 아니다. 생활비, 통신비, 집세만으로 매월 적자가 발생했다. 월 소득이 적었다. 교육전도사로 받는 사례비는 월 70만 원. 여기서 3분의 1은 교회로 돌아간다. 십일조, 선교 헌금, 건축 헌금 명목으로 헌금을 25만 원 가까이 냈다.

사역자라서 받는 압박이 컸다. 한 학기에 300여만 원씩 내는 신학대학원 등록비도 고스란히 빚이 됐다. 가르치는 학생이라도 만나려면 수중에 돈이 필요했다. 빚은 빚을 낳으며 달이 지날수록 더 커져 갔다.

A 씨와 B 씨는 지난해 청춘희년네트워크(청춘희년·본부장 설성호 전도사)를 만났다. 청춘희년 도움으로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매달 늘어나던 빚도 이제는 조금씩 줄고 있다.

2015년 발족한 청춘희년네트워크는 부채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35세 미만)을 돕고 있다. 지금까지 제1·2차 부채 탕감 운동을 진행했다. 차수마다 10명씩 지원 대상자를 선정해 부채 중 일부 금액을 지원하고, 재무 상담과 교육도 했다. 서로 재정 관리를 점검하는 소그룹(더바짝모임)도 운영했다.

올해, 청춘희년은 동작구청과 협력해 청년ZERO캠페인을 펼친다. 동작구에 거주하는 35세 미만 청년들을 대상으로 200만 원까지 무이자로 대출한다. 고금리 채무로 이자 부담을 겪는 채무자를 돕기 위해서다. 상환 기간은 2년. 성실히 상환하는 이에게는 희망 지원금 50만 원을 지급한다. 재무 상담과 교육, 더바짝모임도 병행한다.

"생각보다 주변에 부채 문재를 겪는 청년들이 많아요." 청춘희년 본부장 설성호 전도사는 청년 부채를 개인 문제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늘날 사회에서 대다수 대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려면 빚을 질 수밖에 없다. 설 전도사는 젊은 채무자가 스스로 부채를 조정하고 재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설성호 전도사를 만나 청년 부채 문제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었다. 생명의빛광성교회(이춘태 목사)에서 만났다. 다음은 설 본부장과 나눈 대화다.

▲ 설성호 전도사는 젊은 시절 빚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깨달았다.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재무관리를 배웠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삶을 옭아매고 꿈 박탈하는 '빚'

- 안녕하세요, 전도사님. 재무 상담을 한다고 해서 금융 관련 종사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도사님이네요. 특별히 청년 부채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요.

젊은 시절 빚으로 고생한 적이 있어요. 사업을 운영하던 부친이 투자를 잘못해 재산을 날리셨거든요. 사업마저 실패해 집이 빚더미에 올라앉았어요. 형과 제가 집안 사정을 알았을 때는 심각하더라고요. 부채는 7억 가까이 됐고, 이자는 한 달에 1,000만 원이나 됐어요.

당시 저는 선교 단체 간사였어요. 제 상황도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선교 단체 간사는 사례비가 일반 중소기업 근로자보다 적고 주로 신용카드에 의존했죠. 몇 번 연체한 적도 있어요. 카드사는 신용 정보를 서로 공유하니 카드가 다 막히더라고요. 수중에 현금 1,000원 한 장 없을 때도 있었어요. 심각했죠.

돈이 없으니 밥 먹는 것도 고민되더라고요. 학생들을 만나 상담도 해야 하는데 집 밖엘 나가지 못했어요. 나가면 다 돈이니. 돈 때문에 사역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고, 사역자로서 이런 제 모습이 부끄러웠어요. 돈이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절감했어요.

- 어떤 이들은 부채 문제를 개인 문제로 봐요. 굳이 사회가 나서서 돈을 지원하고 재무 상담해 줄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해요.

청춘희년 캠페인을 알리는 목적으로 여러 교회에 찾아가 세미나를 열었어요.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빚은 개인 문제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에요.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는 이도 있었어요.

이분들이 간과하는 점이 있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가 과거와 달리 고비용 사회라는 점이에요. 지금 대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 중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들은 학교에 다녔을 뿐인데, 수백만 원의 빚을 떠안고 사회로 진출하는 거예요.

졸업 후 바로 취업해 학자금을 갚으면 좋겠죠. 고용마저도 불안해요. 지난 6월 현대경제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청년 체감 실업자가 약 179만 명, 청년 체감 실업률이 34%예요. 평균 취업 준비 기간은 13개월이고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수록 청년들은 학자금을 갚지 못해 신용 불량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요.

대도시는 거주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작은 원룸이나 고시원 월세가 평균 40만 원이에요. 지방에서 올라온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부담되는 비용이에요. 숨만 쉬고 살아도 빚이에요.

▲ 빚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삶을 옭아매고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만든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어떻게 부채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건가요. 이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순 없지 않나요.

청춘희년은 재무 상담과 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빚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에요. 삶, 인생을 옭아매요. 사람은 빚이 있으면 위축되요.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못해요. 일단 빚부터 갚자고 보는 거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게 또 문제죠. 젊은 채무자들이 미래를 설계하도록 돕는 게 저희 목적이에요.

재무 상담을 하면서 채무자들에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려 보라고 해요.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물어요. 여행이나 결혼, 내 집 마련 등 여러 얘기가 나와요. 그런 다음에, 자산 규모를 파악해 그에 맞는 지출·저축·미래 계획을 같이 짜요.

빚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고 했죠?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려요. 빚이 있으면 관계망이 좁아져요. 돈이 드니깐 누구를 못 만나는 거예요. 부채 상황을 남이 알게 될까 봐 꺼리는 이유도 있고요. 외부와 단절되면서 채무자가 느끼는 고립감은 커져요. 자존감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줘요.

청춘희년은 재무 상담, 교육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더바짝모임이라는 소모임을 운영해요. 이는 부채 문제를 극복하는데 아주 중요해요.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살고 있는지 서로 점검하는 기능을 해요. 서로 공감대도 생기고 위로도 받아요. 빚 문제가 나만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보면서 힘이 되는 거죠.

그동안 채무자들과 상담하면서 이들이 교회 안에 부채 문제를 토로할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중에는 교육전도사, 선교 단체 간사도 있었어요. 교회나 단체에 빚 문제를 털어놓기가 어려웠대요. 돈 때문에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마치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조심스러웠던 거예요.

▲청춘희년네트워크는 1·2차 부채 탕감 운동을 하면서 부채로 힘들어 하는 청년들을 도왔다. 단순히 재정을 지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재정 관리법을 교육해 청년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진 제공 청춘희년네트워크)

빚은 모두의 문제, 공감 필요

- 이번 청년ZERO캠페인에 눈길을 끌었던 건 동작구청과 같이하는 점이었어요. 주변에서도 청년 부채 문재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요.

지자체에서도 청년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요. 특히, 동작구는 대학생, 사회 초년생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거든요. 동작신용협동조합에서 1,000만 원을 지원해 줬어요. 저는 이번 캠페인이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례가 되어 다른 지자체도 이 캠페인에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지방이나 교단도 관심을 갖고 있어요. 올해 6월에는, 대전청춘희년운동본부가 만들어졌어요. 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 채무 탕감 운동을 펼칠 계획이에요. 부산, 광주에서도 단체가 조직될 것 같아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채영남 총회장) 교단에서는 사회봉사부, 국내선교부가 이 캠페인을 주목하고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지 논의 중이에요.

- 청년 부채 문제 해결에 교회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청년부채ZERO캠페인을 위해 교회나 기독교인이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청춘희년은 꾸준히 청년 부채 해결을 위해 활동할 계획이에요. 이를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있어요.

꼭 청춘희년에게 후원하지 않아도 좋아요. 공동체가 청년들이 겪는 현실을 공감하고 부채 문제를 진지하게 봐 줬으면 좋겠어요.

가장 이상적인 건 춘천에 있는 한 교회 모습이에요. 저희가 청년 부채 문제를 주제로 강의했던 교회에요. 강의를 들은 한 청년이 자신도 고금리 부채 800만 원이 있다고 공동체에 공개했어요. '빚밍아웃'을 한 거죠. 교회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공감하고 800만 원 빚을 대신 내 줬어요. 대신 500만 원은 무이자로 교회에 상환하게 했어요. 이 청년이 스스로 재정을 관리하는 법을 기르며 자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둔 거죠. 이런 게 희년 정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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