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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해체'가 답이다

[인터뷰] 소설 쓰는 목회자, 동서말씀교회 주원규 목사

강동석 기자   기사승인 2016.09.01  17: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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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가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 팟빵에서 두 개의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이용필 기자가 진행하는 '이용필의 뒷담화'와 <뉴스앤조이>에 '해체의 교회'를 연재하고 있는 주원규 목사가 진행하는 '문학의 신'입니다. 주원규 목사는 제1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소설가입니다. <뉴스앤조이>는 팟캐스트 진행자 주 목사와의 인터뷰를 두 차례 나눠 싣습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주원규 목사는 2009년 제14회 한겨레문학상으로 등단한 소설가다. 같은 해,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해 7년째 목회하고 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 평론집, 자서전, 인터뷰집, 청소년 소설, 동화 등 종횡무진 글을 썼다. 지금까지 펴낸 책만 어림잡아 20권이 넘는다. 공대를 다닌 이력을 살려 가끔 전기공 일도 한다.

굴곡진 인생이었다. 중학교 시절, 일진의 '빵셔틀'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 학교 '짱'에게 '조공'을 바치며 불량 서클에 들어갔고, 질풍노도 청소년기를 보냈다. 학교는 자퇴를 권고했다. 대학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입학 후 도서관에 틀어박혀 전공과 상관없는 책만 읽었다.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 중퇴하기도 했다.

그는 인생 곡절을 독서로, 글쓰기로 풀었다. '비주류' 삶이었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아'로 낙인찍힌 청소년을 위해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주일에는 헬라어, 히브리어 성서 강독을 하며 예배를 인도한다. 여러 종류의 글쓰기로 단단한 세상에 균열을 내는 개척자다.

8월 25일, 한 카페에서 주원규 목사를 만났다. 목회, 글쓰기, 한국교회 현실 및 청소년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는 진지했고 말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뉴스앤조이>는 목회, 글쓰기, 한국교회 현실에 대한 부분과 그의 인생 역정, 청소년 문제에 대한 부분으로 인터뷰를 두 차례 나눠 싣는다.

   
▲ 홍대입구역 근처 카페에서 주원규 목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 목회자면서 소설가다. 발표작을 보면, 여느 작가보다 다작하는 축에 속한다. 출간 작품이 상당히 많다. 현재 <뉴스앤조이>, <한겨레>를 포함해 다양한 곳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활동 범위가 넓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다.

오프라인에서는 목회 활동, 온라인에서는 칼럼을 많이 기고하는 편이다. 작년에는 칼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 올해는 독자와 많이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문화 평론에도 관심이 있어서 무비 콘서트도 진행하고 있고, 부전공이 건축이라 건축 평론에도 관심이 많다.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목회자, 교인과 함께 교회 건축 순례도 하고 있다. 저번 달에는 강정마을에 있는 강정교회를 다녀왔다. 기독교인 청년을 대상으로 부정기적인 글쓰기 모임도 한다. 틈틈이 소설도 쓴다.

- 동서말씀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으로 안다.

2009년, 소설을 발표하면서 같이 시작한 개척 교회다. 그때 목사 안수를 받았고, 교회도 이제 7년 차다. 규모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20명 남짓 모이는 작은 공동체다. 서울 사당동에 있는 무용 연습실을 대관해서 모인다. 라틴 수도사 개념에서 발전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형식으로 예배한다. 성서를 전심으로 읽는 태도에서 착안했다.

보통 성경을 읽더라도 암송을 한다든지 이데올로기적으로 읽는 것 같다. 이미 결정된 틀, 도그마적인 태도가 강하다. 그런 것을 내려놓고자 했다. 출발을 잘한 건지는 모르겠다. 신약은 헬라어로, 구약은 히브리어로, 성경을 원서로 읽어 보자고 하면서 출발했다. 예배 모임은 주로 성서 원서 강독 형태다. 분위기 자체가 독서 모임 같은 느낌도 있다. 예전을 중시하는 분들은 불편해하더라.

- 작년에 <진보의 예수 보수의 예수>라는 책을 냈다. 사복음서 내용을 정리하면서, 사복음서를 바라보는 진보 신학, 보수 신학 관점을 뒷부분에 덧붙이는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방식 자체를 보면 성경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 균형을 추구하는 것 같다. 평소 성경을 어떻게 읽나. 건강한 성경 읽기란 무엇일까.

나의 성경 해석관은 진보적 사관에 많이 치우쳐 있다. 흔히 말하는 보수주의 관점은 그 나름대로 일리와 진정성을 갖고 있다는 게 내가 목회와 신학을 공부하면서 계속 했던 생각이다. 그래서 균형을 한번 추구하고 싶어서 <진보의 예수 보수의 예수>를 집필했다. 집필하면서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새롭고도 항구적인 지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긍정적 의미의 근본성을 다루고자 했다.

근본주의가 많이 왜곡됐다. 나는 근본성을 중시할 수 있는 예수님의 언행을 발견해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하나의 말씀을 해도, 이를테면 오병이어 기적을 볼 때, 기적 자체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보수적 관점도 일리가 있고, 공동체가 모여 십시일반 정신을 추구했다는 협동 정신을 강조하는 진보적 관점도 일리가 있다. 서로 상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종연횡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흐름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성경의 정신, 근본성에 주목하는 게 진보적 관점과 보수적 관점의 마지막 대안이 되지 않는가 생각했다.

민감한 부분도 있다. 우리도 정치에 대해 말할 때 맥 빠지는 단어가 '중도'다. 회색이 돼 버리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정신은 회색이라기보다는 회색을 돌파한 검은색이라 느낀다. 극좌, 극보수라는 틀을 넘어선다. 다 존중하는 게 아니라 다 뒤엎어서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미답의 경지를 계속 걸어갔던 선각자적 정신이 예수님 정신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균형이 아니라, 그런 것을 취합하면서, 흩어 내면서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인간다움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게 성경 읽기의 최종점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신학하거나 목회하는 분들은 신학적 지향성이 바뀌면 "변질된다"고 표현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변하는 과정에서 본질의 의미가 도출되지 않을까.

   
   
▲ 주원규 목사가 목회하는 동서말씀교회는 얼마 전 한옥 펜션을 빌려 수련회를 가졌다. (사진 제공 주원규)

- 목사님은 예수라는 분을 어떻게 인식하나.

신원적 대상으로 많이 보고 있다. 중요하다는 것을 넘어서, 내 개인적인 삶에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있는 분은 아니다. 신앙적 대상인 것은 명확하고, 자유를 주는 분 같다. 획일화되거나 집단화되는 것들을 깨치고 나가는 롤모델이다. 주류적 세계라든지, 안정된 직장, 그런 것들을 벗어나게 됐을 때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을 갖지 못하게끔 독려해 주신다. 자신은 취직도 안 하면서 추리닝 입고 돌아다니는 좀 무책임한 동네 형님 같다는 생각도 들고, 되게 까칠한 느낌이다. 성격도 안 좋아 보인다.(웃음) 마초적이기는 한데, 여성적인 마초? 캐릭터를 종잡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 예수 체험이라고 해야 되나, 신앙적으로 어떤 체험이 있었나.

정서적으로 공황 상태에 있을 때 충동적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한 달 동안 핀란드에서 보냈다. IMF라는 대공황을 맞고 난 다음에 회사도 잘리고, 거창한 뜻을 품고 신학대학원에 갔는데 지도 교수님이 나가라고 했다. 나는 정말 예의 바르게 "채플 안 하면 안되겠습니까"라고 얘기했다. 종교의자유.(웃음) 그랬더니, 나가라고 하시더라.

정서적으로 모든 게 피폐해진 상태에서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쓴 <해체>라는 번역서하고, 성서만 들고 갔다. 데리다는 읽다가 머리가 아파서 포기했고, 성서를 읽었는데 한 달째 되는 날 예수님이 보이더라. 유스호스텔을 벗어나지 않고 한 달 동안 주구장창 책만 읽다 보니까 환각에 빠진 것 같기도 하다.(웃음) 그런데 그때의 경험이 어떤 전환점이었다. 근본적인 변화를 주었다. 그 전에는 정서적으로 되게 불안한 편이고 고통스러웠는데, 베이스가 생겼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신앙인들에게 그런 계기가 있는 것 같다.

- 어떻게 목회자가 되었나.

나는 비장한 소명을 가지고 목회자가 된 분들에 비하면 부끄러운 계기로 안수를 받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에는 성서를 원서로 읽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텍스트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신학을 시작했는데, 원서 분야 탁월한 매니아 목사님이 있었다. 그분에게 사사받았는데, 유명한 감리교 감독이었다. 당시 감리교에 부패가 많아 독립해 교단을 만들었다. 나도 거기서 공부하다가 덩달아 목사 안수까지 받게 됐다. 사실은 목사 할 생각 전혀 없었다.(웃음)

-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나.

어렸을 때 어머님이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일본의 신전처럼 집에 불상을 가져다 놓을 정도였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개종하셨다. 불상도 다 깨뜨리고 하면서 화끈하게 개종하셨다. 중·고등학교 때는 질풍노도 시기라 거의 신앙생활을 못 했다. 대학교 때 시작했다.

- 신학 공부하기 전에 공대를 다녔다고 들었다. 가끔 전기공으로 일하면서 돈을 마련한다고.

지금도 돈이 떨어지면 일을 한다. 그런데 내가 손재주가 없다.(웃음) 전기공학을 전공해 건물을 지을 때 전등 공사 같은 걸 한다. 예전에는 비정규직 전기공으로 일을 많이 했다. 활선작업이라고 전기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고압 전류를 만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전봇대 같은 경우는 사고가 많이 나는데 그런 사건은 이슈가 잘 안 되더라. 거기서도 나는 비주류였다. 하청에 하청을 받아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도 많이 느꼈다.

대학교 때 평점이 2.0이다. 그게 어떤 점수인지 아실 거다.(웃음) 학교는 별로 안 갔다. 돈 안 들이고 있을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더라. 그때 책을 많이 읽었다. 아무 책이나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때 독서 경험이 지금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재료가 됐다.

   
▲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 잔혹사>를 들고 웃고 있는 주원규 목사. ⓒ뉴스앤조이 강동석

- 2009년 <열외인종 잔혹사>(한겨레출판사)로 등단했다. 이후 발표한 작품들도 '열외'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감하는 부분이다. 오래전부터 '열외'라는 키워드에 사로잡혔다. 멀게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특성. 항상 열 밖이었고, 한 번도 주류가 되지 못하는 느낌. 여러 감정이 복합적이다. 그게 소설적 세계와 글쓰기 세계까지 연장됐다. 그래서 길 밖의 청소년이라는, 제도권에 섞이지 못한 아이들과 조금 더 어울리게 된다. 이게 내 정서, 생래적인 부분이다.

사회나 집단, 공동체는 생리처럼 주류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공동체든지 방향에 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못하면, 소수에 대한 존중이라 표현하면서도 결국 열 밖의 부류로 평가하는 것 같다.

- 목회적 관심도 문학적 관심과 일치하는 것 같다.

나는 복음서를 좋아한다. 예수님 언행을 가만히 훑어보면 전혀 주류적이지 않다. 예수님 행적 자체가 반골적이고 반항적이다. 내가 그런 것을 동경했다기보다 자꾸만 관심이 그런 부분에 치우치게 된다. 목회 철학도 열외에 대한 부분에 많이 치우치게 되지 않는가 생각한다.

<뉴스앤조이>에 '해체의 교회'를 연재하고 있다. 연재 칼럼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

'열외'뿐 아니라, '해체'라는 키워드를 중시하는 편이다. 나는 성서가 갖고 있는 특성이 해체에 있다고 생각했다. 교회에 있는 응집력을 해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응집력을 고집할 때 목에 힘주게 된다. 종교적으로 안 좋은 방향으로 열정을 갖게 된다. 힘 빼는 시간을 가지고, 성찰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은 생각에 '해체의 교회'를 연재하게 됐다.

- 2010년에 나온 <망루>에서 대형 교회 기업화 문제와 여기서 발생하는 개인의 신앙적 고뇌를 다뤘다. 대형 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실제 양적인 측면이든, 대형 교회 지향 정신이든 다 반대하고 싶다. 그게 성서 정신과 일치하는지 심각하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축복을 받으니까 많이 모이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많이 모이는 것은 진짜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메시지가 획일화된다.

집단화, 피플 파워에 기대는 입장이라 심하게 말하면 전체주의와 맞닿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항상 있다. 혼란스러워 보여도 구조적으로라도 대형 교회는 인수분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적으로 대형 교회가 아니라고 대형 교회 정신이 탈색되지는 않는다. 개척 교회를 해도 양적인 것을 지향하거나, 메시지를 획일화하는 경우라면 그것도 사실 대형 교회 아류 아닌가.

- 인수분해, 해체를 해결책으로 보는 것 같다. 더 설명해 달라.

아직 과문하고, 배워 나가는 초년 목회자라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잠정적 의지를 해체에 방점을 찍고 가야 하지 않을까. 교회 안이나,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해체할 수 있는 의지와 태도들이 배양되어야 한다. 나는 해체가 됐을 때 각 개인들이 주체화되고, 존엄을 회복하게 돼 더 내실 있는 기독교 공동체로 재주체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성서에 나오는 예언자적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예레미야, 에스겔서, 이사야서에서 주장하는 게 재주체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잠정적 의지와 태도로서의 해체적 정신이 필요하다. 그게 배양되면 교회가 현재 가고 있는 방향을 전면적으로 재고할 수 있지 않을까.

두 가지 트랙이 필요하다. 프랜차이즈화가 아니라 실제적인 분립을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메시지 획일화를 견제할 수 있는, 설교의 비평적 자리가 필요하다. 설교 자체에 대한 형식을 다양한 생태계로 변화시킨다든지. 교회가 그런 부분을 제일 선도적으로 할 수 있다. 사회단체, NGO, 문단 등도 교회가 그렇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받을 수 있지 않을까.

   
▲ 주원규 목사는 때때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말하는 중간중간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왔지만, 빈말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의 말은 진솔했고, 망설임이 없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 어떤 부분에서 교회가 그런 것을 선도할 수 있는 힘이 있나.

다양성, 다원성을 지향해도 교회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구심점으로 모인다. '헤쳐 모여'를 통해 어느 곳보다 재주체화가 가능한 조직이 교회다. 그것들을 외부 정치단체, NGO 단체, 환경 단체 같은 데서 보고 우리도 구심점이나 뿌리가 확실하면 재주체화가 어려운 일이 아니겠구나 하지 않을까.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면, 빛과 소금으로서 조금의 기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선교적 교회, 가나안 교인이 한국교회에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선교적 교회는 긍정적인 움직임이라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되게 시니컬하게 "되겠냐?", "조금 하다 말겠지"라고 반응하더라. 조금 하다가 말더라도 계속해서 흐름을 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가나안 현상을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근본적으로 교회 자체가 모임이라기보다 각 개인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말하자면 새로운 성장을 위한, 새로운 갱신을 위한 필요성들이 아닐까. 해체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본다.

- 어떻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삶일까.

혹시 오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멋대로 사는 게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삶이라 본다.(웃음) 윤리적 기준, 도덕적 가치, 공동체가 원하는 합의는 시대나 역사에 따라 다 달랐다. 취향이나 가치관, 사상에는 변화가 있다. 변화 기준을 절대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 도그마는 한 시대가 갖고 있는, 그 시대만이 요구하는 사상이나 이념을 절대화하는 데 능숙하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천의 삶은 이래야 된다, 저래야 한다, 절대적인 매뉴얼처럼 제시한다. 나는 그런 것 자체가 성경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생각한다.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에만 집중해도 어떻게 살라고 얘기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주체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삶의 양심, 공동체의 질서, 상식, 정의를 시대에 맞게 질문해 나가면서 찾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멋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다윗이 이렇게 살았으니까, 요셉이 이렇게 살았으니까. 그거는 아닌 것 같다. 성경 인물은 인물대로 존중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좀 더 최선을 다하고, 멋대로 살 수 있는 게 크리스천의 삶이 아닌가. 확고부동한 내 생각이다. 교회에서는 어떤 모델들을 자꾸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재주체화 과정에서 좀 불안정하고 미성숙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잘 끌어안아 주시지 않을까.

- 문학은 어떻게 시작했나.

문학 시작 계기는 거창하지 못한 것 같다. 부끄러운 고백인데, 고등학교 때 19금 소설을 즐겨 썼다.(웃음) 영상 매체가 별로 없었던 시기라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팬픽이 유행했다. 그렇게 야하지 않다. 매해마다 써서 아이들끼리 돌려 보면서 기쁨을 느꼈다. 내가 그런 걸 잘 썼는지 반응이 아주 열광적이었다.(웃음)

하루마다 이야기를 돌려 보고 나누면, 그 다음날 코멘트가 달려서 돌아온다. "얘는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이 나쁜 놈은 이렇게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그렇게 이야기 쓰고 나가는 게 되게 재밌던 기억이다. 그런 게 결국에는 계속 와서 쓰게 되더라. 공대에 가서 이야기와 좀 멀어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용수철처럼, 관성처럼 이야기 쓰는 자리에 갔었던 것 같다.

- 소설 읽기 자체가 어떻게 보면 수동적인 활동이다. 오늘날 현실을 볼 때, 문학이 아무 효용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소설이 센스에 대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경마장 가는 길>로 유명한 소설가 하일지 말을 빌리면, 소설로 세상이 변하거나 세상을 변하게 할 수도 없지만 (소설은) 우리가 세상이나 사회, 삶을 바라보는 감각을 가져다준다. 거기에 대해 많이 동의한다. 하지만 소설 쓰기와 소설 읽기가 사회참여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되면 안 된다. '지금 현실이 어떻게 폭압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서적 전체주의나 우상숭배적 관점이 우리를 어떻게 옥죄고 있는가'를 환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본다.

   
▲ 5월 26일, 광화문 세월호 광장 목요 문화제에서 강연하고 있는 주원규 목사. (사진 제공 주원규)

- 쓴 작품들을 보면, 삶이 조각조각 녹아 있는 것 같다. <아지트>에서는 폭주족 아이들이, <망루>에서는 대형 교회에서 일하는 전도사가, <열외인종 잔혹사>에서는 게임 중독에 빠진 청소년이 등장한다. 자서전 <황홀하거나 불량하거나>(텍스트)나 가출 청소년과의 인터뷰집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다른)를 보면, 과거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나에게 소설 쓰기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거다. 나 자신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구성원이 갖고 있었던 생각은 결국 소설적 세계다. 삶의 조각들이 다 묻어 있다. <아지트> 주인공은 회색분자처럼 방황하거나 어느 편에 들지 못하는 인물이다. <망루>에서도 주류 세계를 계속 동경하면서 어머니의 기도를 어길 수 없다는 내 모습이 있다. 다 겹쳐 있다. 나의 편린들이 묻어 있는 것 같다.

- 발표한 작품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애착이 가는 작품 혹은 캐릭터가 있다면.

'맥도날드 유감'이라는 단편이 있다. (작품 바로 가기) 맥도날드를 떠도는 허름한 차림의 청소년이 나온다. 그게 내 모습이기도 했다. 맥도날드가 24시간 하기 때문에, 옛날에 여자 친구와 맨날 거기서 콜라 한 잔 시켜 놓고 하룻밤 시간을 보내고 그랬다. 얼굴 꾀죄죄하고 닦지도 않고 그랬던 느낌으로. 현대 자본주의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를 다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연령층이 모인다. 24시간 영업을 하고, 사람들 모습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여기에 다 함축되어 있다.

- 인생의 책에 대해 듣고 싶다.

아직도 원형처럼 존재하는 작품들이 있다. 커트 보네거트가 쓴 <제5도살장>은 기억에 많이 남는 소설이다. 무라카미 류가 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데뷔작도 그렇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간지가 나서.(웃음)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좋아했던 것 같다. 김경주 시인 시도 좋아한다. 얼굴이 잘생겼다.(웃음) 시어 조탁 능력을 동경하게 된다. 감각적으로, 자신만의 언어의 제국을 만든 느낌이다. 시는 정말 동경이다.

그런 책도 있는 반면, 할리 퀸 로맨스 <유니콘 왕자님>이라는 책도 있다. 옛날 우리 고등학교 때 누님들이 잘 읽던 1,500원짜리 책들… 왕자님이 나오는 것 기다리고.(웃음) 할리 퀸 로맨스도 좋아하는 편이다. 지금은 절판됐지만, <절세 미녀전>이라고 세로로 읽는 무협지가 있다. 어려운 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 만화 같은 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아오이 소설이라든지. 다 다양하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킬링타임용 책을 뒤섞어서 봤는데, 이를 읽었던 힘이 나에게는 문학적 원형이 되는 것 같다. 언어 선택할 때도 달라지더라. 너무 무게를 잡고 쓴다 싶을 때는 털어 내게 된다. 그런 책 읽기도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 소설을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힘이 되어 준 것 같다. 사람들이 "싸구려다", "고급이다" 이러는데, 이런 구별 없이 읽는 것.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독서법이 아닐까 확신한다.

   
▲ 8월 29일 <뉴스앤조이> 팟캐스트 '문학의 신' 첫 방송이 나갔다. 방송을 녹음하는 주원규 목사. ⓒ뉴스앤조이 강도현

<뉴스앤조이> 팟캐스트 '문학의 신' 진행을 맡았다. 뭐하는 프로그램이고, 어떻게 진행할 생각인가.

나는 문학적 소양, 인문학적 소양이 지금 한국교회 독과점 체제에서 개별적으로 재주체화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전제할 부분은, 문학적 소양이라고 했을 때 권력화된 문학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제식 글쓰기에 길들여진, 등단을 위한, 문학 권력화된 독서를 문학적 소양이라 생각지 않는다. 만화도 읽을 수 있고,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총체적인 문화적 접근들을 문학적 소양이라 생각한다.

문학적 소양이 있으면 인내가 생긴다. 성경 66권이 서로 상충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들었을 때, 내 표현을 빌리면 어설픈 냉소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성경도 사람이 만든 책이고, 별로 읽을 만한 게 못 되는구나' 하면서. 문학적 소양을 배양하면 조금 끈질겨진다. '왜 다를까', '왜 모순이 있을까' 질문하면서 삐딱하게 보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목사님이 설교하면 '아멘', '아멘' 하면서 다 흡수하듯 빨아들이지 않는다. 한마디 해도 딴지 걸고, 한마디 해도 딴지를 건다.(웃음) 처음에는 더디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우러져서 독과점 체제를 무너뜨리고 재주체화를 가능케 하리라 본다. 문학적 소양을 계속 배양하는 성경 모임이나 글 읽기, 글쓰기가 좀 필요하다고 본다.

인문학적 소양 배양을 위해 내 작품 세계, 내가 영향을 받은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실례가 안 된다면 오늘날 교회 현실, 기독교 사상과 어떻게 매치할 수 있는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나누면서 자유롭게 잡종적으로 잘 꾸려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장르에 구애 없이 만화책도 소개할 예정이다. 이따금씩 작가도 소개하고, 아주 사적인 인터뷰도 좀 해 보고 싶다. (두 번째 인터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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