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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도 못해도 욕먹던 부목사, 공동체로 날다

[인터뷰] 광주 그루터기공동체 박근호 목사…"가난해도 마음만큼은 풍요로워요"

이용필 기자   기사승인 2016.09.01  1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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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무등산 기슭에는 그루터기공동체 숙소가 있다. 지난해 9월 1일 문을 열었다. 아직 1년밖에 안 됐는데 입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이 공동체를 찾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靑山(청산)이 그 무릎 아래 芝蘭(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미당 서정주 시인은 6·25 전쟁이 끝난 직후 광주에 머물렀는데, 이때 '무등을 보며'라는 시를 지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은 궁핍 그 자체였다.

시인은 궁핍과 가난함을 한탄하지 않았다. 대신 푸른 산 아래 향초가 자라듯, 아무리 가난해도 슬하 자식을 소중하게 기를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사람의 본질은 물질의 궁핍으로 찌들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빛을 발한다고 봤다.

매일매일 무등(산)을 보며 지내는 공동체가 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이들은 가난하다. 가난하지만 마음만큼은 풍족하다. 가난을 몸에 걸친 누더기로 생각하며, 서로를 챙겨 주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빛고을 광주 지산동 무등산 기슭에 있는 '그루터기공동체' 이야기다.

무등 아래 자리 잡은 '기독 공동체'

찌는 듯한 더위가 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던 8월 31일 광주를 찾았다. 1년 전 공동체 돛을 올린 목사와 교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취재를 요청했다.

공동체 숙소는 한적한 주택가에 있다. 담벼락에 '그루터기공동체'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그저 예쁜 집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뻔했다. 2층으로 된 집 정면에는 창 5개가 달려 있다. 2층 왼편으로 테라스가 있다. 밖에서 보니 펜션과 비슷해 보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잔디밭이 펼쳐졌다. 리트리버 한 마리가 냉큼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박근호 목사는 지난해 9월 1일, 공동체가 함께 지낼 숙소를 개장(?)했다. 대지 117평에 복층으로 된 숙소였다. 70평 남짓하는 1층에는 방 3개, 다용도실, 기도실, 화장실이 있다. 이곳에 공동체 청년 4명이 거주하고 있다. 2층은 박 목사 부부와 아이들이 지내는 보금자리로 사용한다.

숙소는 땅콩집 건축가로 유명한 이현욱 소장(이현욱좋은집연구소)이 지어 줬다. 설계도를 만드는 기간만 6개월이나 걸렸다. 건축 주재료는 나무였다. 환경을 고려해 시멘트는 최소화했다. 박 목사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말했다.

입소문은 무서웠다. 문을 연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많은 사람이 공동체를 찾았다. 1주일에 10명꼴로 찾고 있다. 당장 다음 주에는 일본에서 손님이 방문해 닷새간 머물 예정이다. 박 목사는 공동체 숙소를 마련하려고 모아 놓은 재산을 모두 사용했다. 이렇게까지 해 가며 숙소를 지은 이유는 공동체에 대한 비전과 기성 교회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 그루터기공동체는 박근호 목사가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만들었다. 기성 교회에서 청년 사역을 담당했던 박 목사는 새로운 모험을 위해 모은 재산을 털어 공동체 숙소를 만들었다. 사진은 기르는 강아지와 함께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박 목사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IVF 간사로 활동할 때와는 다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제도부터 시작해 교회 안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싫었다. 사역을 못 하면 욕을 먹었다. 반대로 잘하면 견제를 받았다.박 목사는 한국외대를 나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했다. 청년에 초점을 맞추고 사역했다. IVF(한국기독학생회) 간사를 포함, 14년간 청년 사역을 담당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 서울에서 청년부 목사로 사역했다.

청년들을 교회 일꾼 내지 양육 대상으로만 보는 구조에 대한 반감도 컸다. 박 목사는 교회 안에서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직책과 상관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교회 어른들 생각은 달랐다. 기성 교회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섰고, 공동체를 떠올렸다.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청년부 출신 부부를 끌어모아 공동체 집짓기, 공동육아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인생의 쓴맛(?)을 본 박 목사는 고향 광주에 있는 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광주에서 1년 정도 지낸 다음 유학을 갈 참이었는데, 5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 기간에 박 목사는 지역 목회자들과 교류하면서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했다. 비교적 지역성이 강한 이곳에 공동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들과 부대끼며 사는 낙

그렇게 그루터기공동체는 시작됐다. 이제 1년밖에 안 됐지만, 반응은 좋다. 현재 그루터기공동체에 등록한 사람은 총 30명. 3가정을 포함, 청년들이 함께 공동체 숙소에서 예배한다. 예배는 일요일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한다. 형식은 자유롭다. 찬양하다가 조별로 흩어져 삶 이야기를 40~50분간 나눈다. 말씀을 듣고 난 뒤에는 각자 돌아가며 느낀 점을 나눈다. 이렇게 하다 보면 3~4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 그루터기공동체는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30분 숙소 1층 다용도실에서 함께 예배한다. (사진 제공 그루터기공동체)

1층 숙소는 취업 준비 중인 청년 4명이 사용하고 있다. 청년들이 자립하면 방을 비우고, 게스트하우스나 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공동체를 찾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청년들은 불편함이 없을까.

"사실 청년들 입장에서 편하지는 않아요. 매주 낯선 사람들이 숙소로 찾아오니까요. 공동체 숙소에 머무르려면 타인을 환대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어느 정도 개인 성숙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죠. 청년들 모두 공동체 멤버고 이해심이 있어서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어요.(웃음)"

청년들은 공동체에 머무르는 동안 훈련도 받는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꾸준히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는지 1주일 단위로 박 목사가 확인한다. 함께 식사를 하고,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열린 공간이 가져다준 변화

교회는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게 박 목사 지론이다. 개방하면 소통도 수월하다. 그루터기공동체를 개방하고, 많은 사람이 방문했다. 특히 제자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중에는 교회를 떠난 가나안 교인도 있다. 신앙이 희미해진 이들은 과거 함께했던 신앙생활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박 목사 아내가 많이 변했다. 원래 활달했던 아내는 지난 10년간 목사 '사모'로 살면서 스타일이 변했다.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가만히 있는 존재가 됐다. 그런 아내가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사모님 대신 '언니', '누나', '이모'라 불리며 예전 같이 활달한 성격으로 변했다.

   
▲ 올해 여름은 특히나 무더웠다. 그루터기공동체는 지난 여름 계곡으로 야유회를 다녀왔다. (사진 제공 그루터기공동체)

누구보다 큰 변화를 겪은 사람은 박 목사 자신이다. 공동체를 시작하고 삶 자체가 바뀌었다. 박 목사는 외부 일정이 없을 경우 주로 숙소에 머문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정원도 가꾸고, 가끔 무등산에도 오른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누리게 된 것에 큰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박 목사 이야기를 듣다가 생계는 어떻게 꾸려 가는지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 목사는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수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아카데미 숨과쉼 기획자로 있으면서 페이를 받아요. 또 IVF 파트타임 간사도 맡고 있는데 역시 페이를 받고 있어요. 주위 몇몇 분들이 십일조로 후원해 주고 있어요. 교회에서도 받긴 해요. 설교 한 번 할 때마다 2만 원씩.

교회 예산 1/3은 공동체 밖으로 흘려보내요. 주로 단체 선교 후원금으로 사용하죠. 공동체 지체 중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는데, 이를 대비해 조금씩 돈도 모으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 2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버틸 생각이에요. 앞으로 목회자들은 올 페이 받으며 살기 쉽지 않을 거예요. 저도 대비해야죠."

그루터기공동체는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 재적 50명이 되면 분할 논의를 시작하기로 이미 뜻을 모았다. 박 목사는 규모를 키우는 게 공동체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목사 밥 먹여 주기 위해 존재하는 건 더더욱 아니라고 했다. 구성원마다 자기 주체가 드러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수치가 넘으면 분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위' 없는 교회 어디 없나요?

박 목사가 기성 교회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학생 때 받은 상처와도 관련 있다. 주일 오후마다 중·고등학생 약 200명이 참석하는 성경 공부 모임이 있었는데 당회가 일방적으로 폐지했다. 당시 고등부 학생회장이던 박 목사는 장로였던 아버지 도움을 받아 당회에 성경 공부 폐지를 반대하는 기안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목사는 한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목회자·장로 등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 독점 문제를 꼽았다.

"한국교회 문제는 권위의 핵심과 정점에 선 목회자·장로와 맞닿아 있다고 봐요. 이런 구조를 탈피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제임스 휴스턴은 '하이라키(계급 구조)가 있는 곳에 은혜가 없다'고 말했어요. 여전히 목회자들은 잘못된 구조와 타협하고 있고, 당회는 교회 주인인 양 행세해요. 이런 교회는 더 이상 진리를 실천하는 곳이 아닌 거죠."

권위 문제와 함께 교회 안에 자리한 가족주의·물질주의 같은 '우상'도 심각하다고 박 목사는 진단했다. 이를테면 온 가족이 함께 예배해야 복을 받고,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간다는 인식이 팽배한 교회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했다.

"대형 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 심방을 많이 갔어요. 어떤 교인은 자녀가 좋은 대학 갈 수 있게 해 달라, 어떤 분은 사업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요청해요. 아무것도 모른 채 복을 빌어 주는 게 꼭 무당이 된 것 같았어요.

이런 교회 구조 안에서 비슷한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오게 됐죠. 욕망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구조를 인정하고 벗어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보여요.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심판 대상이 될 거라고 봐요. 한국교회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급전환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 공동체를 세우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박 목사는 광주에서 기반을 닦은 후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벌써 1년? 이제 시작!

공동체를 시작한 지 꼬박 1년. 박 목사는 삶의 '본판'으로 들어가도 흩어지지 않는 공동체를 꿈꾼다. 박 목사가 말하는 본판은 출산, 육아와 관련 있다. 출산과 육아까지 책임지는 공동체를 그린다. 박 목사는 공동체 지체들에게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가자고 독려한다.

무슨 일이든 좋아서 해야 재미있고 실력도 늘어난다. 박 목사는 공동체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좋아서 해야지, 당위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마을 공동체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 가난하면 어때요. 적게 벌고 적게 쓰면 되잖아요. 하나님이 보내 주신 공동체 지체들과 어울리며 사는 게 곧 하나님나라를 만드는 사역이 아닐까요."

   
   
▲ 1층 다용도실. 일요일에는 예배 장소로, 평상시에는 문화 공간으로 사용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1층 다용도실에 부착돼 있는 안내판.  ⓒ뉴스앤조이 이용필
   
▲ 1층 현관 앞에 있는 신발장. 공동체 청년 4명이 함께 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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