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 바닥을 한 삽 퍼 오는 김종술 기자.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거 봐요. 바닥이 완전 뻘이잖아. 시커멓게 돼 가지고. 원래 금강 바닥은 다 모래였거든. 여기… 여기도 있네. 이게 '붉은깔따구'예요."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검은 진흙 뭉치를 바닥에 한 삽 '퍽' 내려놓고는 말한다. 그것도 모자라 그 검은 뭉치를 맨손으로 집어 뭉개 보고 냄새까지 맡는다. 찐득한 퇴적토 사이에서 손톱만 한 붉은 애벌레 몇 마리가 나온다. 그걸 또 맨손에 올려놓는다.

"이게 환경부에서 지정한 4급수 오염 지표종이에요. 지들이 정해 놓은 거예요. 4대강이 계속 문제가 되니까 (환경부가) 이제 수질 분류를 1~4급수가 아니라 A~D급수로 해 놨더라고."

▲ 뻘 같은 퇴적토에서 붉은깔따구가 발견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금강에 직접 들어가 흙을 퍼 온 이 남자.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51)다. 8월 30일, 금강 공주보에서 만난 김종술 기자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들어갔다.

4대강 사업 때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갔는데, 그곳은 이미 길이 아니었다. 풀이 사람 키만큼 자라 어디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었다. 김종술 기자는 그런 길을 삽 한 자루 들고 잘도 헤치고 앞서 갔다.

▲ 공주보 인근에는 4대강 사업으로 공원이 많이 조성됐다. 그러나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사진 아래는 수풀이 아니라 '산책로'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이명박 전 대통령과 4대강 사업 추진에 일조한 인사들을 청문회에 세우자는 '4대강 청문회' 캠페인이 8월 22일부터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정부가 야심 차게 밀어붙인 이 국책 사업은 그 준비부터 시작, 과정 모두가 엉망이었다. 혈세 22조가 하늘로 솟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4대강 생태계는 악화 일로다. 5년짜리 정부가 50년, 500년을 망칠 수 있는 사업을 벌인 것이다.

청문회 캠페인은 4대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 온 환경 단체와 기자들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 8월 22일부터 27일까지는 '4대강 독립군'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운동연합·대한하천협회·불교환경연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힘을 모아 특별 취재를 다녀왔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금강 요정'이라 불리는 김종술 기자가 있다. 그는 4대강 사업이 시작되던 2009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4대강 사업을 보도해 왔다. 13년 전 금강에 반해 공주로 이사 온 뒤 지역신문을 운영했다. 그저 평범한 언론사 기자였다. 그러나 '국책 사업'으로 금강 바닥이 준설되면서 그는 지독한 악바리 기자가 됐다. 4대강 관련 기사를 1,000개 이상 썼다.

▲ 김종술 기자는 매일 금강을 걷는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공주보에서 만난 김종술 기자는 얼굴과 팔이 유난히 까맸다. 지난주 특별 취재 때문에 그렇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매일 강을 걷는단다. 걷다가 들어가 보고, 들어가서는 흙을 파 보고 관찰한다. 그의 차 트렁크에는 강에 들어갈 장비가 항시 구비돼 있다. 4대강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5년도 안 된 차는 벌써 19만km를 뛰었다.

김종술 기자와 4대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취재를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술술술 터져 나왔다. 김종술 기자는 그의 말마따나 "인생을 강에 바친" 사람이었다.

금강·낙동강에 '4급수' 오염 지표종이…

녹조라떼. 4대강 사업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단어다. 흐르는 강을 보(사실 '댐'이다)가 막고 있어 유속이 느려진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하자면? '큰빗이끼벌레'가 생각난다. 평생 한 번 들어 볼까 싶은 이 희한한 생물 이름은 2014년 김종술 기자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때는 진짜 엄청 큰 것도 나왔어요. 축구공만 한 것도 널렸고 제일 큰 건 3.5m 정도 됐으니까. 올해 여름에는 싹 없어졌어요. 큰빗이끼벌레는 2~3급수에서 발견돼요. 지금은 그 대신 4급수에서 사는 붉은깔따구, 실지렁이가 발견되죠."

4대강 사업 전 금강은 2급수였다. 불과 5년 만에 4급수로 떨어졌다. 김종술 기자가 퍼 온 강바닥 흙에서 붉은깔따구를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기관은 금강을 아직도 2급수라고 한단다. 그가 말했다. "강 표면 물만 떠서 측정하면 그렇게 나와요. 이렇게 수질을 평가하는 데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거예요."

▲ 금강에는 연못에서 자라는 '마름'도 많이 보였다. 유속이 느려져 물이 정체돼 있다는 증거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금강도 그렇지만 낙동강 수질 악화도 심각하다. 특히 낙동강 물은 영남권 주민 식수로 사용되기에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8월 29일 "낙동강 녹조는 축산 폐수와 생활하수 때문이지, 4대강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4대강 사업으로 해마다 반복되던 홍수와 가뭄이 해소됐다고 주장했다.

"뭘 모르고 하는 말이죠. 생활하수와 축산 폐수가 영향을 주는 건 맞아요. 근데 그 전에는 유속이 빠르니까 오염 물질이 유입돼도 빨리 정화됐거든. 근데 보를 지어서 물을 가둬 놓으니 유속이 느려지고 자정 능력도 없어진 거예요."

누군가 돈 버는 순간, 공동체는 망가졌다

문제는 수질만이 아니다. 4대강 준비 단계부터 취재한 김종술 기자는 사람이 망가지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인근 농지가 4대강 사업 부지로 선정되면서 농민들이 보상금을 받고 땅을 넘겼다. 많이 받았든 적게 받았든 평생 그곳에서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농사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당시 전국의 꽃뱀, 노름꾼들이 보상금 받은 마을에 몰렸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실제로 어떤 마을에는 총 135가구가 사는데 티켓 다방이나 노래방 등 유흥업소가 80개 생겼어요. 땅값이 오르니 임대료도 폭등했어요. 약국 하시던 한 약사는 건물 임대료로 5만 원을 냈었대요. 건물주가 우리 마을에도 약국 들어온다니 거의 무료로 해 준 거죠. 근데 4대강 사업 부지로 발표 나고 임대료가 150만 원이 됐어요. 돈을 만지니 인심이 사라진 거예요."

대체 농지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도시로 흡수됐다. 수천 수억 받았다 해도 도시에서 집 하나 살 수 있을까. 무엇보다 70~80 되도록 농사만 지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대부분 일용직 노동을 하거나 폐지를 줍는 도시 빈민이 되었다. 예전에는 농사를 지으면 적지만 얼마라도 벌었다. 손주에게 용돈이라도 줄 수 있었다. 지금은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어떤 분은 고작 몇 천만 원 받았어요.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이 돈으로 술 처먹고 뒤지라는 거'라고…. 실제 그런 마을에 가면 대낮에도 술 마시고 있어요. 미래가 없으니까. 4대강 사업으로 어떤 사람은 막대한 이익을 봤다면, 어떤 사람은 그만큼 피눈물을 흘린 거예요."

▲ 김종술 기자는 직접 보고 직접 만진 것이 아니면 기사를 쓰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사 1,000개 쓰고도 소송 한 번 없었던 이유

소문으로 떠다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김종술 기자는 직접 여러 마을을 찾아가 거기서 지내며 주민들에게 직접 들었다. 실제 꽃뱀에 당한 사람, 노름꾼에게 뜯긴 사람, 자살한 사람 등등,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는 그가 수개월간 추적하고 취재한 결과다. "어르신들이 우는 것도 많이 봤어요." 4대강 사업이 사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는 직접 보고 느꼈다.

큰빗이끼벌레를 발견한 사연도 기가 막히다. 김종술 기자는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원고료가 얼마 되지 않는데 매일 4대강을 누비고 다니니 돈이 모자란다. 2014년, 수중에 5,000원밖에 남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쌀도 떨어지고 차는 압류가 들어오고,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제가 고집불통에다 낙천적이고 그래요. 5,000원이 있으니까 '5,000원어치만 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5,000원어치 빵이랑 물을 사서 금강을 걸었어요. 3일째 되는 날 먹을 것도 다 떨어지고 진짜 죽겠더라고요. 강변 풀숲에 앉아 있는데, 저기 뭐가 보여요. 그게 큰빗이끼벌레였던 거예요."

▲ 4대강 사업 전 금강의 사진을 보여 주는 김종술 기자.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때 다시 4대강 사업은 크게 이슈가 됐다. 하루에 전화가 100통도 넘게 왔다. 다 기자들이었다.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언론사에서도 김종술 기자를 찾아와 큰빗이끼벌레를 보여 달라고 했다.

"제가 그때 착각을 했어요. 이렇게 크게 이슈가 되니까 조금만 더 하면 수문 열릴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정부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큰빗이끼벌레 출현은 수질 악화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한두 달 지나니 언론들은 모두 싹 빠졌다.

"사실 지금은 4대강 취재하기 좋아요. 공사할 때는 진짜 살벌했어요. 용역들이 막고 서 있고 삽자루 날아오고 그랬거든요. 청와대·국정원 이런 데서 공사 현장 근처에 상주했어요. 뭐 '밤길 조심해라', '국정원 직원 입에서 네 이름이 나온다', '그러다 진짜 죽는다' 이런 협박은 거의 매일 들었어요. 지역신문 할 때는 '어디 광고 따 주겠다', '어디 사업권 주겠다'는 회유도 많았고요."

갖은 협박과 회유 속에서도 1,000개 넘게 4대강 관련 기사를 썼다. 그런데도 소송 한 번 당하지 않았다.

"저는 제가 직접 보고 만진 거 아니면 안 써요. 그러니까 뭘 걸고 싶어도 못 거는 거예요. 2013년 금강에서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을 때도 저는 물고기 하나하나 다 셌어요. 공무원들은 9시에 출근하지만 나는 새벽 5시부터 가서 셌어요. 누구는 '뭐 물고기 죽은 거 가지고 그러냐'고 하지만 물고기도 생명이에요. 죽고, 썩고, 나중에는 강변이 막 젓갈같이 변했어요. 그걸 몇 날 며칠 보고 있으니까 정신이 이상해지더라고요. 정신과에서 상담도 받았어요.

제가 4대강 관련해서는 자기 검열이 좀 심한 편이에요. 어느 환경 단체에서 이런 것 좀 써 달라 해도 제가 직접 확인한 거 아니면 안 써요. 어디서 강의해 달라고 해도 안 가요. 후원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좋은 대우로 스카우트 제의도 몇 번 들어왔는데 다 거절했어요. 나는 4대강만 쓰고 싶은데 어디에 소속되면 그렇게 못하잖아요. 나는 4대강만 보여."

▲ 공주보. 지금이라도 수문을 여는 것이 금강을 살리는 길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법 좀 지켜라, 제발

김종술 기자는 매일 강을 걷는다. 어제는 공주보에서 세종보까지, 오늘은 공주보에서 백제보까지 갔다 온다. 하도 많이 다니니 모니터링하는 스팟이 있다. 어떤 날은 차를 타고 좀 더 멀리까지 간다. 말 그대로 '금강지킴이'다.

"어렸을 때 강에서 살았어요. 강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 강에 대한 추억이 있어요. 맑은 강과 모래톱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근데 4대강 사업으로 강은 일직선이 되고 물에서는 악취가 나요. 수십 억 들여 공원 조성해 놓으면 뭐해요. 아무도 안 와요, 이제. 이건 강이 아니에요. 어린아이들이 이런 걸 강이라고 알고 큰다는 게 안타까워요."

"저는 4대강 사업 반대한 적 없어요. 다만 법을 지키면서 하라는 거예요. 법을 제대로 지킨 게 하나도 없어요. 준비하면서 착공에 들어갔어요. 이명박 정부가 정권 내 마무리하려고 그렇게 속도전을 했어요. 나 같은 보통 사람도 운전하면서 안전벨트 안 매면 벌금 내잖아요. 대한민국에 4대강같이 큰 사업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이런 공사를 하면서 법을 안 지킨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4대강 청문회' 촉구 서명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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