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 김영봉 지음 / IVP / 236쪽 / 1만 1,000원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목사에게 장례식은 일상이다. 시골에서 오래 산 나는 장례 예배를 하러 나가시는 부모님 모습을 자주 봤다. 매주 교회 한쪽 구석에서 중얼중얼 기도하던 권사님이 더 이상 교회에 나오시지 않아도, 어린 나는 죽음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다.

죽음을 실감한 건 스물한 살 때였다. 신학교를 다니며 교육전도사를 하던 시절, 교회 집사님이 하나님 부르심을 받았다. 집사님 관을 운구하며 그 무게만큼이나 남은 자들의 삶도 무거울 수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어린 아들딸 앞에서 설교하던 목사님 모습이 기억난다. 그는 무슨 설교를 했고, 아이들은 무슨 설교를 들었을까.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죽음을 말하는 건 어떻게 보면 우습다. 그러나 죽음을 말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목사다. 이는 목사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부담이다. 먼저 간 사람 인생을 돌아보고, 남겨진 자를 위로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목사 입을 응시한다. 그럴 때야말로 목사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IVP) 저자 김영봉 목사도 같은 고민을 겪었다. 목회 여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죽음, 일반적이지 않은 죽음 앞에서 목사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그는 할 말 없음의 고뇌를 수차례 드러낸다.

"다 피기도 전에 꺾인 꽃처럼 고인은 그렇게 안타까이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다 유구무언일 뿐입니다. 저도 그냥 입 다물고 유가족과 함께 울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무슨 말이든 찾아 위로를 해야 하는 목사의 책임은 참 무겁습니다." (49쪽) - 만 50세 나이에 부모와 아내, 고등학생 아들딸을 남기고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이의 장례 예배에서

"목사로서 저는 이 준비되지 않은 죽음 앞에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슬픔에 빠져 있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무슨 말을 들어야 마음이 위로를 받고 의문이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80쪽) -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장례 예배에서

"목사는 자주 하나님의 대변자나 변호자가 되도록 요구당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목사에게 하나님을 대변하여 설명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중략)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이해 불가한 사건 앞에 설 때면 목사는 정말 괴롭습니다. 목사 자신에게도 대답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어떻게 대변하거나 변호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럴 때면 솔직히 목사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피하고 싶습니다. 도망가고 싶습니다." (132쪽) - 분만실에 들어갔다가 시신이 되어 나온 이의 장례 예배에서

"이럴 때는 목사가 짊어져야 할 짐이 참 무겁게 느껴집니다. 아무도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경에 목사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언어가 의미를 잃어버리는 이런 순간에도 뭔가 말해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습니다. 그냥 성경 말씀 한두 군데를 읽고 마치고 싶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한 말씀만 주소서!'라고 간구해 왔지만, 하나님도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 아무런 응답이 없으십니다." (175쪽) -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인의 장례 예배에서

저자는 입을 연다. 폭력적이지 않았다. "자살한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다", "영접 기도를 드리지 않았으니 천국에 갈 수 없다" 따위 말이 아니다. 그는 장례식장에서만큼은 전도의 열정을 자제하라고 했다. 대신 성경 말씀에 비추어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되짚었다.

고인의 삶을 반추하고 이를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해석하는 과정은 산 자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그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더 나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고인 삶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았다.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던 고인, 교인들과 원만하지 못한 고인 삶을 덤덤하게 말하되 그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영봉 목사는 한 사람을 위한 '맞춤 설교' 효과는 마지막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열여섯 편 설교로 보여 주었다. 그는 "고별 설교는 한 사람의 일생을 구속(救贖)하는 일"(234쪽)이라고 말했다.

열여섯 편 설교 중 대부분은 일반적이지 않은 죽음을 다뤘다. 입 열기도 난감한 상황에서 어떤 말과 설교를 할 것인지, 독자들에게 깊이 있고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성경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돌아보는 데서 느껴진다. 그럴 때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난다. 타인의 죽음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며, 삶의 무게와 죽음의 실존을 실감하게 한다. 저자가 수차례 암시하듯 죽은 자를 위한 설교는 기실 산 자에게 향한 메시지다.

저자는 11년 간 50여 건의 장례 예배를 집례한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부록 '거룩하고 의미 있는 장례 예배'에는 임종 과정에서의 목회, 임종에서 애도까지 목사가 해야 할 일, 장례 설교를 준비하는 방법이 담겼다. 잘 참고하면 고인과 유족, 신앙 공동체 모두에 유익이 될 것이다.

김영봉 목사가 말하는 '임종 과정에서의 목회'

1. 투병과 임종 과정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라. 할 수 있다면 녹음하거나 메모하라.
2. 임종 예배를 계획하라. 너무 이르거나 늦지 않게, 당사자와 가족이 받아들였을 때 하라.
3. 임종 예배 시 성찬을 나누라. 마지막 성찬은 임종을 앞둔 이에게 의미가 크다.
4. 의식이 없어도 임종 예배를 나누라. 영적으로는 소통할 수 있다.
5. 의식이 없어 보여도, 귀에 대고 성경을 읽어 주고 찬송을 불러 주라. 복음을 전하라.
6.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신앙고백을 받아내려 무리하지 말라. 그 고백이 있어야만 구원받는 거라 오해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드리라.
7.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하라. 하나님 사랑에 고인을 맡김으로 주권을 인정하라.
8. 임종한 후 가족들이 취할 절차에 대해 미리 안내하라. 장례 방법에 대해 본인, 유가족의 뜻을 존중하고 목회자는 가급적 의견을 말하지 말라.

- 임종에서 애도까지 목사가 해야 할 수칙과 장례 설교 준비 방법 등은 부록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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