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기자님. 저 15분 정도 늦어요. 아이들 좀 맡기고 올게요." 약속 시간 즈음, 배미영 집사(39)에게 전화가 왔다. 두 아이 엄마이기도 한 그는 현재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투쟁위·공동위원장 백철현·정영길·김안수·이재복) 기획운영분과 부담당을 맡고 있다.

흔히 말하는 '운동권' 출신은 아니다. 드라마 좋아하던 두 아이 엄마, 평범한 주부다. 별 탈 없이 지내던 일상은 7월 13일부로 깨졌다. 국방부가 성주군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부지로 확정 발표한 날이다.

그 길로 투쟁위 간부가 되었다. 성주군청 앞에서 배미영 집사를 만났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 평범한 주부였던 배미영 집사(사진 가운데). 저녁이 되면 성주군청 앞으로 와 촛불 문화제를 준비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투쟁위에서 홍보부담당을 맡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관심은요. 평범한 주부였어요. 아이들 키우랴 집안일하랴 회사 일하랴 정신없이 살았어요. 남편이 출장이 잦아 사나흘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오거든요. 육아, 가사는 거의 제 소관인 셈이죠. 그러다 보니 주변에 어떤 일이 돌아가는지도 몰랐어요. 사드가 동네 앞 산에 들어온다고 하는데도 그게 어떤 건지 몰랐어요.

국방부는 성주군 성주읍 인근 공군 성산포대를 사드 배치 부지로 발표했다. 성산포대는 성주읍과 1.5km 떨어져 있다. 사드가 배치되면 해발고도 300m 위에서 1만 4,000여 명이 거주하는 성주읍을 내려다보게 된다. 주민들이 사드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기자 주)

지금은 1318이라 부르는 카카오톡 대화방이 있어요. 그 안에는 1,318명이 들어가 있어요. 카카오톡 대화방은 최대 초대할 수 있는 인원이 1,318명으로 제한되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1318 대화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성주 지역 주부들 대화방이었어요. 처음엔 생활 정보, 사는 얘기를 나눴어요. 어디가 물건을 싸게 파는지, 어디 음식이 맛있다든지 하는 얘기들이요. 근데 사드 배치 얘기가 나오면서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죠.

사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있어요. 물론, 반대 주장도 있고요. 그런데 정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결국 유해한지 무해한지 아직 모른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정부는 괜찮다고 하면서 사드를 도입하려고 해요. 아이 키우는 엄마들 중에서 이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엄마는 없어요.

한 엄마가 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어요. 아이들도 등교 거부시켰어요. 그게 계기가 됐어요. 지금은 1318 대화방에 투쟁위 간부들이 들어가 있어요. 여기서 투쟁위 활동이 기획돼요. 7월 26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성주에 방문했을 때 새누리당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였던 거나, 광복절 성밖숲에서 성주군민 908명이 단체 삭발을 했던 것도 모두 이 대화방에서 나온 아이디어에요.

▲배미영 집사는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 기획운영분과에서 활동한다. 40여 일 동안 평균 12시간씩 일했다. 매일 오전 9시에 나와 촛불 문화제가 끝나고 밤 10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배미영)

- 성주 군민이 원하는 건 결국 성주 지역 내 사드 배치 철회인가요?

아니요. 저희가 처음 1인 시위를 준비할 때 만든 구호가 있어요. "사드는 대한민국에서 안 된다고 전해라." 제가 싫은 것을 어느 누가 좋아할까요. 지금 제3부지로 초전면 인근 골프장이 거론되고 있어요. 거기는 사람이 적으니 괜찮지 않냐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적고 많고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봐요. 사람이 산다는 게 중요해요.

사드가 배치되면 여기 있는 엄마들은 이민 간다고 말해요. 이사가 아니라 이민이요. 전쟁 위협 때문에 그래요. 사드는 평범한 무기가 아니에요.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사드 배치를 크게 반대해요. 자신들을 위협하는 무기로 보는 거죠. 주변국 불만을 사고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를 왜 국내에 도입해야 하나요.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한 성주 촛불 문화제가 40여 일째 계속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사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투쟁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평범한 주부, 농사꾼이에요. 이번 일을 계기로 공부했어요. 촛불 문화제 때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도 해요. 괴담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제대로 사드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저는 평소 즐겨 보던 드라마도 안 봐요. 뉴스나 '썰전'·'100분토론' 같은 시사 프로그램만 챙겨 봐요.

- 사회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이번 일을 겪고 하나님께 많이 회개했어요. 그동안 주변에 너무 무관심했어요. 세월호 참사, 밀양 송전탑, 강정 해군기지 등 우리 사회에 여러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 일로 고통 겪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들을 위해 인터넷에 지지하는 댓글 하나 달거나 작은 행동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을 후회했어요. 저뿐 아니라, 저와 함께하는 모든 아주머니들 생각이에요.

▲ 8월 22일 투쟁위가 김항곤 군수 기자회견에 반박하고 있다. 이날 배미영 집사(사진 가운데)는 국가 권력이 국민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몹시 울었다고 한다. (유투브 뉴스민 영상 갈무리)

- 8월 22일 김항곤 성주군수의 기습 기자회견이 있었어요. 이어서 투쟁위가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뒤에서 군민들이 많이 우시더라고요.

당시 군수와 군의원들이 어떤 일을 꾸미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투쟁위 위원들과 군청에 갔어요. 그런데 공무원과 경찰들이 기자회견장을 가로막고 있었어요. 이어서 김항곤 군수가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정부에 제3부지 검토를 요청한다는 내용이에요. 김 군수와 일부 지지자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어요. 그래서 투쟁위가 그 자리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던 거예요.

국가 폭력에 화가 났어요. 공무원과 경찰이 군민들 편이 아니라 권력자 수족 같아요. 그 앞에 우리들은 너무 약하고요. 투쟁위로 1달여 활동을 해 왔는데 무기력하게 느껴졌어요. 저희를 믿고 지지하는 군민들에게도 죄송했고요.

- 지역 교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진 않나요?

제가 다니는 성주제일교회(서철봉 목사)를 포함해 몇몇 교회가 나서고 있어요. 단체 삭발식에 참여한 교인들도 있어요. 성주제일교회는 촛불 문화제가 열리는 성주군청 앞에 천막을 설치했어요. 군민들에게 양초를 나눠 주고 서명운동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부 목사님에게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사드는 전쟁을 부추기고 갈등을 일으키는 무기 체계에요.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원하지 않잖아요. 왜 여기에 아무런 말씀도 없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이라도 여러 목사님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파란 리본과 배지는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 집사가 성주제일교회가 만든 배지를 보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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