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새로운 교육이에요? 교육감님,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세요."
"손녀도 그렇게 되고 이제 우리 아들까지 죽게 생겼어요."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단원고에서 기억 교실을 빼던 날, 예은이 할머니 이세자 씨(72)는 이재정 교육감 앞에 주저앉아 울었다. 예은 엄마가 옆에 앉아 그를 보듬으며 같이 울었다. 자리에 있던 이재정 교육감과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들, 단원고 교감 등은 모두 땅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사생결단식'을 하는 광화문광장. 할머니는 며칠 전부터 며느리와 함께 이곳에 나오기 시작했다. 뙤약볕 아래 피켓 시위를 한다. 피켓에는 "손녀를 구하러 간 국가는 구경만 하다 버리고 가고, 국회는 특조위 하나 못 지켜서 내 아들은 죽음을 건 단식, 이 늙은 부모 마음 타들어 갑니다"라고 써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8월 25일, 세월호 피해자와 백남기대책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했다. 이날 오후, 할머니는 더민주당 당사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다음은 피켓 시위 중에 할머니와 대화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예은이 할머니(맨 왼쪽)는 8월 25일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나 혼자 잘 살자는 게 아니니까 말리지도 못하지

내가 나이가 많아도 자식이 저러고(단식하고) 있으니까 여기 나오는 거야. 저게 무슨 기한이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도 이건 정의로운 일이고, 자기 이익을 구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하는 거라. 그러니 "하지 말어" 이러지도 못하잖아.

지금은 밑도 끝도 없어. 안 보이잖아. 오늘도 (아들) 혈압 재 보니까 저혈압인데, 심장은 또 빨리 뛰고. 체질이 저하고 똑같아요. 저도 그런 체질인데. 지금 단식한 지 아흐레쯤 되니까 당연히 그런 현상이 오겠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어제도 그제도 이렇게 광화문에 가서 (피켓 시위)했는데. 이런 게 무슨 힘이 되겠어. 그냥 나를 위해서 하는 거야. 집에 있을 수도 없고,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도 않고, 먹은 것도 아니고 안 먹은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상황이에요. 살아 있으나 죽은 거 같아. 죽은 인생이지 뭐.

(아들이) 오늘도 새벽에 인천에 인터뷰하러 갔다가 왔더라구. 그러니 더 힘을 못 쓰는 거야. 지금이 열흘 다 돼 가니까. 움직이면 안 되고 자꾸 말하면 안 되는데, 거기 있으니까 계속 대담해야 하고 또 승질나는 얘기하면 한바탕해야 하고 이러니까. 지금 어떻게 될지 몰라. 심장마비라는 게 순간적으로 오는 건데, 그 생각만 하면… 그렇게 안 되기를 바라기는 하는데. 너무 길게 가면 안 되는데.

▲ 아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8월 26일 기준 10일째 단식 중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게 도리고, 인간이고, 교육자 아니야?

교실 문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하고 애들(아들·며느리) 따라만 다녔는데. 순간적으로 이재정 교육감을 보니까, 내가 그분 평소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양반이 성공회 신부 아니야? 그리고 사람이 괜찮은 것 같아서. 아무리 학교에서 교실 빼라고 해도, 자기들이 잘못한 게 있으니까 마지막은 이재정 교육감이 잘해 줄 줄 알았어요.

우리가 단원고에 오래 있겠다는 거 아니잖아. 오래 있을 필요도 없고. 진실 규명은 언제 될지 모르지만, 미수습자가 돌아오면 그때는 빼야겠지 하고 있었는데. 또 그렇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 애들이. 그런데 결과적으로 내쫓는 걸 보니까, 아… 이건 아닌 거 같애, 이건.

수학여행은 사실 교육청하고 학교에서 주관해서 간 거잖아. 엄마들이 (참사) 초기부터 "애들 운동장에다 갖다 놔라", "살려 놔라" 해야 했는데. 엄마들도 세상 물정 몰랐지, 그때까지만 해도. 국회 이런 데만 따라다니고. 학교엔 신경을 못 썼네.

이재정 교육감을 보니까 내가 정신이 돌더라구. 내가 저 사람을 안고 뒹굴었어야 했는데, 죽든지 살든지…. 우리 아들까지 그러고 있으니까 끝판을 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따졌는데. 따져도 그 양반 의식도 않더라고. 반응도 않더라고.

휴… 거기서 죽으면 나만 억울하지. 그래서 내가 좀 참았네. 특조위원장도 계시니까, 특조위에 누가 될까 봐 하다가 말았는데, 어휴… 너무 억울하고. 학교에서는 "진실 규명될 때까지는 있다가 기억관 잘 지어서 그때 나가면 좋겠다"고, 학교에서는 그렇게 붙잡아야 하는 게 도리 아니야? 그게 도리고, 인간이고, 교육하는 교육자지. 그런데 이렇게 하는 거 보면… 그날은 진짜 숨이 꽉 막히더라구. 진짜… 생각도 하기 싫어.

▲ 할머니는 백남기 농민 청문회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손을 잡고 격려해 주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내 새끼들하고 편하게 사는 게 최고인 줄 알았어

나도 이제 70이 넘었으니까, 오래 살았잖아.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어. 근데 뒤돌아보니까 내가 정말 잘못 산 거야. 신앙생활도 정말 잘못한 거야. 새벽 기도 하루라도 빠지면 큰 벌 내릴 것처럼 살았는데, (옆에 백남기 농민 시위를 가리키며) 저렇게 할 때도 한 번 가 보지도 않고, 생각도 안 하고. 그런 마음이 요만큼도 안 들었어요.

오늘도 아까 광화문에서 이거 들고 섰는데, 수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하잖아. 그 사람들을 볼 때, 이것 좀 보고 갔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이 별로 없잖아. 그 사람 탓할 것도 없어, 내가 그랬으니까. 내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누구 탓할 필요도 없고….

(유가족들이 시위하는 게) 자기들 평안이나 자기들이 좋아지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기 때문에, 애들 보고도 "그만해"라고 말 못 하고. 그냥 내가 애들 앞에 뭐라고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너무 잘못 산 거야. 신앙생활 잘못한 거야. 그저 교회 가서 나 혼자 기도하고, 누가 칭찬해 주면 좋아하고 그거였지 뭐.

성경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잖아. 나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는커녕, 남의 일은 내 일이 아니야, 그냥 가만히, 내 새끼들하고 나만 편안하게, 그게 최고인 줄 알았어. 완전히 잘못된 거야. 이걸 당하고 나니까 알게 되네. 당하기 전에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후회도 하는데, 그냥 후회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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