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합과 시공사가 옥바라지 골목에 남은 건물 철거를 다시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구본장여관 외벽이 파손되며 대책위와 조합 간 충돌이 다시 빚어졌다. (사진 제공 옥바라지골목보존대책위원회)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옥바라지 골목 구본장여관이 또 한 번 철거 위기에 놓였다. 8월 22일 아침 8시께, 무악2구역재개발조합과 시공사 롯데건설 측은 중장비를 동원해 건물 일부를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여관 인근 한옥 1동이 헐리고 구본장여관 외벽 일부가 파손되면서, 조합 측과 옥바라지골목보존대책위원회(대책위) 간 충돌도 일어났다.

대책위에 따르면, 조합 측은 지난주 서울시에 철거를 재개하겠다고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는 아직 주민이 남아 있는 만큼 합의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조합은 22일 전격 철거를 시도했다.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등 공무원들이 현장을 방문했으나 조합 측의 거센 항의와 반발에 부딪쳤다.

외벽 일부가 파손된 상태에서 철거는 일시 중단됐다. 하지만 조합 측에서 시간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며 공사 강행 의지가 상당한 만큼 다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상태다.

대책위는 22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일방적인 철거 시도를 규탄했다. 대책위는 지난 5월 17일 용역 100여 명이 구본장여관을 철거하려다 주민 및 시민단체 등과 충돌한 것과 관련, 조합이 경비용역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대책위는 박원순 시장이 조합에게 주민 합의 없이는 공사도 없다고 선언했으니 또다시 불법을 자행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서울시에는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성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1930년 항일운동가들이 머문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곳을 보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기습 철거에 대비하는 한편, 사회에 골목의 역사성을 알리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다음은 대책위 성명 전문.

롯데건설과 무악2구역재개발조합의 옥바라지 기습 철거 규탄한다.

1. 사회적 책임 의식 없는 재개발 조합, 재개발사업 이대로는 안 된다.

오늘 아침 8시 무악2구역 재개발 조합(시공사 롯데)이 서울시에서 보존하기로 계획한 구본장여관 일대 1920년대 건축된 건물을 기습 철거하고, 구본장 여관의 일부를 부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서울시와 옥바라지골목대책위, 재개발 조합에서 지속적으로 대화를 통해 보존하기로 협의했던 옥바라지 골목의 오래된 한옥 보존안 협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백 년 가까이 된 한옥이 무너지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늘 사건은 사회적 책임감이 없는 재개발 조합이 수많은 사람의 삶과 문화의 숙명이 달린 도시재개발 사업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 심지어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재행협력과 과장까지 현장을 방문했지만 조합은 막무가내로 철거를 진행했다.

2. 무악제2구역재개발조합은 용역 깡패 100명을 임의 고용하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5월 17일의 구본장 강제집행은 정말 잔인했다. 집행이란 물건에 대한 집행이지 사람에 대한 집행은 아니지만 재개발 조합에서 임의로 고용한 용역 깡패들은 연대 온 시민들에게 얼굴에 소화기를 분사하고, 사람이 건물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벽돌, 쇠몽둥이로 건물을 부수며 폭력적으로 사람들 끌어내리는 폭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강제집행 소식을 듣고 현장을 방문한 박원순 시장이 "이 공사는 없습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현재 재개발 조합은 불법적으로 용역 깡패를 고용하여, 경비용역법을 위반한 이유로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재개발 조합은 폭력 행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커녕, 이미 한번 강제집행 된 건물에 대해 다시 철거를 시도하고, 역사 보존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3. 옥바라지 골목의 수난

롯데 캐슬 네 동이 건설될 이곳은 1930년 허정숙과 여학생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여성 운동가 최복순의 하숙집, 조선공산당 재건위사건, 조선간도공산당 사건에 연루된 항일 운동가들이 묵었던 영천여관, 유성장이 있었다. 또한 그 외 신간회 간부 등 열 명 이상의 항일 운동가들의 하숙집 혹은 집이 있던 곳이다. 또한 인혁당 사건의 유족들이 이곳의 동양여관에서 묵으며 옥바라지했다고 증언했다.

1920년 조선총독부 검사 조사서에 의하면 "남편 서상호(徐相灝)에 대한 차입을 하기 위해 그가 대구(大邱)로부터 경성(京城)으로 호송되자마자 나는 곧 경성(京城)에 와서 차입물을 주선"하고 있다. 1920년 1월 7일 통영 출신의 류명원(柳明湲)이 현저동 64번지 이민유(李敏游)의 집에서 남편 서상호 옥바라지를 하고 차입물을 넣어주기 위해 몇 달간 머물고 있다는 경찰 조서가 있다. 비록 64번지는 세란병원과 더 가까운 위치이지만 감옥 뒷편이 아니라 맞은편인 현 무악동 지역이 옥바라지 골목이 맞다는 증거이다.

옥바라지 골목의 수난은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시와 종로구의 직무 유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옥바라지 골목의 "1930년 여학생 만세운동 주모자" 최복순의 옥바라지 골목 하숙집 터는 재개발사업으로 올해 4월 1일 롯데건설에 의해 헐렸으나, 비교적 단순 공모자인 송계월의 가회동 48번지 하숙집은 아직 남아있고, 서울 항일운동 사적지 기록에도 포함되어있다. 이는 서울시나 국가가 항일운동 보존에 대한 아무런 일관성이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대책위에서는 여러 차례 이 장소를 면밀히 조사할 것을 서울시와 종로구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롯데건설과 무악2구역재개발조합은 명백한 증거를 더이상 왜곡하지 말고 지역 역사를 최대한 반영하고 수용하도록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또한 재개발사업의 인허가권이 있는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주무관청으로서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사업에 대해 제동을 걸고 강력하게 관리 해야 한다.

앞으로 옥바라지골목대책위는 그간 조사해 온 역사 문화적 자산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옥바라지 골목의 보존 방향을 연구하고 제안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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