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가 상당한 동영상 하나를 보았다. 지체장애인의 운동회 영상이었다. 달리기를 하는 도중 한 아이가 넘어졌다. 앞다투어 달리던 아이 중 한 명이 뒤돌아와 넘어진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넘어진 아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자, 이 광경을 본 다른 아이들도 다가와 서로 어깨동무하고 함께 달렸다. 결승점에 모두가 같이 들어왔다. 이를 지켜보던 관중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한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했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게임을 제안했다. 싱싱하고 달콤한 과일로 가득한 바구니를 보여 주며 달리기를 해 먼저 달려간 아이가 과일 바구니를 먹을 수 있게 하는 게임이었다.

인류학자의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 키득거리며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인류학자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누구든 일등으로 간 사람에게 과일 모두를 먹을 수 있게 한다고 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니?"

아이들은 모두 합창을 했다.

"우분투!"

이 말의 뜻은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웃으며 과일을 한입 가득 넣은 한 아이가 덧붙였다.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가 있어요."

인터넷에 유행하고 있는 감동적인 영상을 보면서 아프리카어 '우분투'가 생각났다. '함께'라는 단어의 의미는 참 오묘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함께'는 이 사회에서 적잖이 무시당하는 가치 중 하나다.

어떻게 하든 경쟁하여 이기는 자가 너무 많이 얻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가려 한다. 얻으려고 한다. 권세를 가지려고 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의 의미도 모르면서 그렇게 지껄이며 자기 위치와 소유를 절대로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10%가 99%의 부를 누리는 세상, 그래서 사람들은 '더러운 세상'이라며 '헬조선'이니 '흙수저, 금수저' 타령한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가진 자가 베풀고, 있는 자가 나누고, 위에 있는 자가 허리를 굽히는 게 맞다. 없는 자는 내놓을 게 없다. 아래 있는 자는 위가 닿지 않는다.

당신이 손을 내미는 자이면 어떨까. 꼭 1등 하고 있지 않아도 할 수 있다. '함께' 간다고 생각하면 가능하다. 꼭 높은 데 있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만 허리 굽히면 가능하다. 함께하지 못하는 당연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성경의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처럼. 하지만 손을 내미는 사마리아 사람이 필요하다. 이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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