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서 유명 목회자들의 성적 타락은 날로 늘어 간다. 전병욱, 이동현에 이어 어느 시골 교회의 막장 드라마가 새롭게 드러났다. 이런 류의 성범죄는 주로 남자들 문제고 권력과 관련되어 있다. 남자들 문제라 한 것은 여성 목회자나 선교사가 성범죄를 일으킨 경우는 비교적 드물기 때문이다. 성적 욕망를 일으키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남자들에게 많다.

또한 남성 목회자 성범죄가 권력과 관련되어 있음도 자명하다. 권력에서 오는 쾌감을 발생시키는 도파민에 남자들이 훨씬 중독되기 쉽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에 서면, 남자란 존재는 근본적으로 성적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기가 쉽지 않은 동물(?)이 되기 쉽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분명히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권력을 쥔 남자들은 영웅호색이란 말로 자신의 성적 타락을 정당화해 왔지 않은가?

성범죄와 살인까지 저질렀던 다윗을 생각해 보자. 어떻게 다윗 왕과 같이 위대한 신앙의 영웅이 유부녀를 탐한 성범죄자가 되고, 그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인 충성스러운 장군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을까? 인간은 모두 어쩔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것이 권력의 습성일까? 독재자란 원래부터 나쁜 인간일까? 아니면 권력의 집중이 그를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으로 만든 것일까?

최근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의 뇌과학자 이안 로버트슨 교수가 쓴 <승자의 뇌: 뇌는 승리의 쾌감을 기억한다>(RHK)에서, 뇌과학 측면에서 볼 때 꽤나 설득력 있는 해답을 찾았다. 권력을 잡으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뇌과학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의 말에 따르면 "권력은 매우 강력한 약물"이다. 권력은 뇌에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뇌과학자들이 밝혀낸 바로는, 권력에 중독된 이의 뇌는 마약 중독자 것과 똑같이 변한다고 한다. 상식적인 이에게도 제왕적 권력을 주면 그의 뇌는 점점 이상하게 변하여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김정은도 스위스 유학 시절 당시 동문과 선생들 말에 따르면 아주 평범한 젊은이였다고 한다. 무한 권력자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감당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은 그를 살인자 폭군으로 만들었다.

도파민은 기본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때 성취감, 만족감, 행복감을 주는 호르몬이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 취업, 승진, 주식이 몇 배로 뛰거나, 원하는 사람과 연인이 되었을 때 느끼는 전율, 환희가 바로 뇌에서 분출되는 도파민 작용이다. 도파민이 적당하게 분비될 때 그 긍정적인 역할은 말할 수 없이 많다. 도파민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성취 욕구를 높여 목표에 집중하게 한다.

문제는, 권력 중독이 되면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고 복종시키는 권력을 누리면 누릴수록 뇌에서 분출되는 도파민은 '코카인'과 같이 뇌에 쾌감을 준다. 과한 도파민의 분비는 터널같이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모든 상황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교만에 빠지게 하여 무모한 행동을 하게 한다.

권력에 중독된 뇌는 교만하여 다른 이에게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 권력 중독자들은 기본적으로 오만 방자하며 사치를 일삼고 다른 이를 무시한다. 권력 중독자들이 겸손할 수 없는 이유다.

권력 중독자가 교만한 이유는 그들의 뇌에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캐나다 윌프리드로리어대학교와 토론토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했다. 한쪽은 명령을 내리는 기억을 하고 그에 관한 내용을 쓰게 했고, 다른 쪽은 명령을 받던 일을 연상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게 한 것이다.

힘없이 느꼈던 집단의 공감 능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으나 명령을 내리는 내용을 묵상한 쪽 뇌에서는 거울 뉴런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거울 뉴런은 공감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뉴런이다.

UC버클리 대처 켈트너 교수는 "권력에 빠진 사람의 행동은 뇌의 안와 전두피질(orvbito frontal cortex)이 손상된 환자와 비슷하다"라고 발표했다. 안와 전두피질이 손상되면 남을 배려하는 능력이 상실되고 충동적 행동을 일삼게 된다. 권력 중독자가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재하는 이유다.

공감 능력이 떨어진 목회자는 부교역자와 교인들의 어려움에 둔감하여 높은 사례비를 받고 사치를 즐기는 데 죄책감이 없다. 그는 청렴결백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면서 이를 당연시한다. 그에게 교회는 자신의 왕국이다. 자신이 현실적인 왕이라 착각하며 산다.

권력 중독자는 기본적으로 독재자다. 그는 법과 규범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자신의 권력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권력자들의 성범죄는 이성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 자신의 독재와 비리가 잘못된 것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왜 권력에 중독된 목회자가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탐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당연시하며 범죄를 많이 일으키는지 의문이 풀린다.

권력 중독에 빠진 목회자는 맹목적이고 아부하는 이들을 좋아한다. 자기 목표를 위해 부교역자를 종처럼 다루는 성향이 있다. 자기 수하에 있는 이들을 자신을 섬겨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권력 중독자의 뇌는 온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는 왕이다.

권력 중독은 술, 담배보다 중독성이 훨씬 강하다. 쾌락을 주는 행동은 반복하면 만족도가 떨어진다. 빈도가 높을수록 더 강한 자극을 통해서만 비슷한 만족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같은 행동을 하는 빈도에는 한계가 있다. 종일 술만 마시고 담배를 피울 수는 없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 중독은 다르다. 권력을 휘둘려 더 많은 이를 제어할수록 터 큰 보상과 이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뇌는 '보강 학습' 메커니즘을 통해 무한 권력을 추구하게 된다. 즉, 권력 중독은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중독성을 지닌다. 권력을 많이 가질수록 보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무한 권력이 무한 보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고리를 끊기란 정말 어렵다.

권력을 잡으면 다윗 같이 위대한 신앙의 영웅도 변질한다. 필자는 전병욱이나 이동현, 또 최근의 막장 드라마를 쓴 가명의 시골 목사가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인들로부터 추앙받으며 절대 권력을 쥐게 되면서부터 그의 뇌가 권력 중독 현상을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권력 중독으로 자연스럽게 교만하고 무모해지며 약자와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성범죄를 행하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게 되면서 반복적인 성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그들 중 일부가 보이는 뻔뻔함은 그의 뇌가 이미 권력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권력 중독은 정말 위험하다. 권력 중독을 막을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다. 스스로 권력이 남용되고 있지 않나 늘 살펴야 한다. 둘째, 권력 분산이다. 한 개인이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없는 구조를 교회가 만들어야 한다. 교회에서 당회와 제직회가 담임목사 들러리가 아닌 실제적인 권력기관 역할을 해야 하며 모든 것은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가부장적이고 군대에 익숙한 우리 문화에서 지도자는 권력 중독자가 되기 쉽다. 일부 성공한(?) 목회자들의 성적 타락을 단순히 그들 개인 성품 문제만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교회는 철저하게 그들이 권력에 취하지 않도록 견제해야만 한다. 우리는 복음의 문화로 이런 잘못된 타락한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 담임목회자를 권력 중독에서 지키는 것은 목회자도 교회도 교인도 모두가 사는 길이다.

*위 내용은 이안 로버트슨이 쓴 <승자의 뇌: 뇌는 승리의 쾌감을 기억한다>(RHK)를 인용, 적용한 것입니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신앙, 그 오해와 진실>(새물결플러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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