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주일 아침마다 건장한 체격의 용역 업체 직원들이 교인들을 막아서는 교회가 있다. 출입을 제지당한 교인들은 교회 정문 앞 길거리에 나앉아 찬송가를 부른다. 교회를 들어가려 하면 무전기를 든 용역 업체 직원들이 "다른 교회에 가라"며 막아선다.

교회답지 않은 광경이 매주 펼쳐지는 곳은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A교회. 사람 나이로 치자면 환갑이니 잔치라도 해야겠지만, 교회 역사상 유례없는 내홍에 그야말로 풍비박산 직전이다.

침례교판 사사오입(四捨五入) 논쟁

문제는 담임목사를 청빙하면서 불거졌다. 2015년 4월, 이 교회 청빙위원회는 후임 목사로 ㅎ지방회에서 목회하던 고 아무개 목사를 데려왔다. 청빙위원회는 8명 후보 중 3명을 선정했고, 고 목사를 최종 낙점했다.

교단의 대형 교회 B교회 담임 윤 아무개 목사가 고 목사를 추천한 점이 작용했던 것일까. 일부 교인들은 청빙 시기, 윤 목사가 A교회에도 방문하고 교인들을 B교회에도 초청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봤다. 결국 고 목사는 1년 후 재신임 투표 조건으로 이 교회에 부임했다.

2016년 5월 재신임 여부를 투표했다. 재신임은 교회 정관상 유권자 ⅔가 동의해야 가능하다. 고 목사는 이 벽을 넘지 못했다. 유권자 228명 중 152명 이상이 동의해야 하지만, 139명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표 68, 무효표 21표였다.

고 목사와 그를 지지한 교인들은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무효표 21표는 계산에서 아예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228-21=207이고 이의 ⅔는 138이므로, 139명에게 찬성표를 받은 고 목사는 재신임됐다고 주장했다.

이 지점에서 고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과 반대하는 교인이 극명하게 갈라졌다. 고 목사는 정식으로 교회 대표자가 되었다며 사무처리회(장로교단의 당회에 해당)를 주재하는 등 담임목사 권리를 행사하려 했다. 반대하는 교인들은 교회가 소속된 ㄷ지방회 도움을 받아 임시목사를 세우고 새로운 담임목사를 찾기로 했다.

고 목사 쪽에서는 임시목사 파송을 거부했다. 말로 싸우던 사람들은 힘을 쓰기 시작했다. 교회에 임시목사와 지방회 목사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 문구가 붙었다.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비대위 교인들은 고 목사가 청빙 당시 필수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총회 인준 침례신학대학을 졸업한 적이 없고, 목회 경력이 7년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비대위 교인들은 고 목사가 청빙 당시 필수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총회 인준 침례신학대학을 졸업한 적이 없고, 목회 경력이 7년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고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했다. 고 목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찾아보던 비대위는 학력에서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청빙 당시 고 목사가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1990년대 말 필리핀 현지 신학교(Presbyterian Teh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고 목사가 침례교 계열 교단에서 안수받은 건 아니다. 그는 필리핀장로교단(GCCPCP)이라는 곳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고 목사가 제출한 이력서에 "필리핀장로교단(GCCPCP)에서 목사 안수받음"이라는 문구가 써 있다. 

비대위 교인들은 교단이 정한 인준 과정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교단 규약에 따라 지방회 시취위원회(교단 목사로 받아들일 것인지 검증하는 곳) 전원이 찬성해야 기독교한국침례회(침례교) 목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시취위원 중 한 명은 고 목사 문제를 다룬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교단 총회는 비대위 교인들의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해 당시 고 목사 인준을 무효화한다고 결의했다. 7월 21일, 침례교 총회 임원회는 "고 목사의 지방회 시취 절차에서 의문과 하자가 밝혀졌기에 당시 인준은 무효로 한다"고 결의했다. 고 목사에 대해서는 관련 지방회에서 다시 시취받은 후 총회에 서류를 접수하면 교단 목사로 인준해 준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교회 예금 20억 원 해지, 돈은 어디로?

▲ 교단 총회는 고 목사가 아닌, 비대위 이 아무개 장로를 교회 대표자로 인정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교단 총회는 고 목사가 아닌, 비대위 이 아무개 장로를 교회 대표자로 인정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교단 총회는 비대위 이 아무개 장로를 A교회 대표자로 확인한다는 증명서를 발급했다. 교회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침례교 유지재단도 이 장로를 대표자로 인정했다.

7월 25일, 고 목사가 은행을 찾았다. A교회 예금 20억 원가량을 해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고 목사는 통장 4개와 보험 1개를 해지 신청했다. 통장에는 각각 2억 1,000만 원, 1억 700만 원, 3억 500만 원, 13억 1,700만 원 등 총 19억 3,000여 만 원이 들어 있었다. 보험 해약금도 5억 원에 이르렀다. 7월 28일 1억 원이 담긴 또 다른 교회 통장도 해지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비대위 교인들은 새로 발급받은 교회 대표자 증명서를 들고 은행마다 찾아다니며 지급 정지를 요청했다. 수표는 모두 지급이 정지됐지만, 현금 3억여 원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고 목사 측은 현금을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취한 조치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인 40명 출교하고 지방회 탈퇴

고 목사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반대 교인들이 "교회를 불법으로 전복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자체 사무처리회를 열어 교인 42명을 무더기로 출교했다. 7월부터는 용역을 고용해 비대위 교인들 교회 출입을 봉쇄하고 있다. 지방회와도 날을 세웠다. 사무처리회를 열어 ㄷ지방회를 탈퇴하기로 결의했다. 대신 고 목사 전임지이자, 자신을 목사로 인준한 ㅎ지방회에 가입했다.

ㄷ지방회 관계자는 고 목사와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 결의는 명백히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교단 규약에 따라 개교회가 일방적으로 지방회를 탈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침례교 규약 7장 22조 3항은 "모든 교회는 개교회가 속한 지역의 지방회에 가입하여 협조해야 하며 기존 지방회 승인 없이 그 지역 범주를 떠나 임의로 이동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 관계자는 "교단이 목사 인준을 무효로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고 목사는 침례교단 목사가 아닌 상태다"라고 주장했다.

ㅎ지방회장 김 아무개 목사는 1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A교회가 낸 서류들이 절차상 문제없고, 모든 것이 잘 갖춰졌기에 우리 지방회 교회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총회 규약에 관해서는, 침례교단이 개교회주의기 때문에 개교회가 그렇게 결정하면 지방회는 이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문제 제기 자체가 불편하다고 했다. 고 목사를 시취한 것은 문제없고, 총회도 이를 받아들여 인준했는데 이제 와서 일부 사람들이 다른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총회 또한 일방적으로 고 목사 인준을 무효화한 것이 아니라, ㅎ지방회 입장도 수용해 서류를 다시 제출하면 인준해 주기로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 목사를 지지하는 김 아무개 장로는 19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용역은 자구책으로 고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대위 교인들이 교회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김 장로는 고 목사 부임 절차 논란에 대해 "5년 전 총회에서 목사로 인준했으니 끝난 것인데 이제 와 문제 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목사 인준을 무효화한 총회 결정은 "정치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총회가 서류를 보완해서 올리면 다시 인준해 주기로 한 만큼,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투표 또한 재적 ⅔가 아니라 유효표 ⅔ 찬성으로 하기로 했던 것이며, 이는 장로 회의에서 이미 다 결정된 사항이라고 했다.

출교한 40여 명의 교인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돌아온다면 받아 줄 것"이라면서, 오랜 기간 함께 신앙생활한 사람들이니만큼 고 목사에 대한 불만을 거두고 교회로 돌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목사를 지지하는 신 아무개 집사에게 "용역을 동원해 교인 출입 막는 건 사회로부터 지탄받을 만한 일 아니냐"고 물었다. 신 집사는 교인들끼리 부딪히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정식 경호 업체를 고용했고, 이후 양측 간 충돌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고 목사는 <뉴스앤조이> 취재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고 목사 입장을 듣기 위해 위 내용을 A4 용지 두 장 분량으로 정리해 질의서를 보냈다. 답변 내용을 기사에 성실히 반영하겠다는 말과 함께 문자메시지, SNS, 팩스로 질의하고 수차례 전화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향후라도 고 목사가 입장을 밝히면 <뉴스앤조이>는 이를 적극 보도할 예정이다.

용역 너머 교인들과 용역 안쪽 교인들

비대위 교인들은 기가 막힌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이 볼 때는 목사 안수 서류도 이상하고, 절차에도 문제가 있고, 교단도 이를 인정했는데 고 목사가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아 있는 교인들을 앞세워 사무처리회를 열어 각종 안건을 의결하고, 자신들은 출교됐다며 용역으로 출입을 막고 있는 데다가, 교회 예금까지 모두 빼내려고 하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침례교는 교단 재판이 없기에 당장 사회 법정으로 이 문제를 가져갔다. ㅇ지방법원에 고 목사 학력 의혹과 목사 안수 절차 등을 문제 삼아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비대위 교인들은 수십 년 신앙생활한 교회가 새로운 목사 부임과 함께 완전히 갈라졌다고 했다. 전임 목사가 아껴서 수십 년 모은 26억 원 예금이 수천만 원 손해 보고 모두 해지됐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함께 신앙생활해 온 교인들이 갈라졌다고 했다.

300명까지도 모이던 교인 중 상당수가 교회를 떠났다. 고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은 교회 안에서 예배하고 있다. 용역 너머에서는 40여 명 교인들이 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30도가 넘는 폭염 때문에 오후가 되면 모처로 이동해 별도로 예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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