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이택환 목사(그소망교회) 페이스북에 실린 두 개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어떤 분이 그리스도인의 '술' 문제에 대해 질문을 주셨다. 대략 내용은 그리스도인이 남들과 똑같이 술을 마신다면 "그리스도인은 그래도 뭔가 다르다"는 일반인의 기대를 저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내용이다.

나는 1982년 대학 입학 후 사발식을 시작으로 1986~1988년 군 초급장교(ROTC 소대장, 대대참모) 시절, 전역 후 대기업 회사원 생활 7년 등, 총 14년가량 술 권하는 사회에서 살았다. 1996년 신대원 입학 후에는 아무도 내게 술을 권하지 않는다. 권해도 목사라고 하면 무슨 뜻인지 알고, 대신 사이다를 권한다. 나도 대한민국의 술과 술 문화에 대해 나름 모르지 않는다는 것을 이 정도로 밝힌다.

내가 경험한 술 권하는 사회에서는 단지 술 안 마신다고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매주 교회에 나간다고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가끔 새벽 기도에 나가는 사람을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인정해 주기는 한다. 그런데 그가 새벽기도에 나가는 사람답지 않게 불성실하거나 야비한 성격의 소유자임이 드러나면 오히려 새벽기도 다니는 사람이 왜 그 모양이냐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술을 마신다 해도 그리스도인 특유의 신실함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리스도인은 다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건은 술이 아니라 신실함이다. 물론 그의 술 매너가 나빠서 폭주, 고주망태가 되거나, 술 마시면 2차 3차, 외박으로 빠진다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해 줄 사람? 당연히 없다!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술을 어떻게 마시냐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한국의 술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

1. 상급자가 강압적으로 술 권하는 문화
2. 개인의 주량과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문화
3. 술 안 마실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 
4. 술 마시고 폭언 구타하는 문화
5. 술과 관련된 향락, 부패 문화(기생집, 방석집, 요정, 룸살롱, 성매매 등)
6. 술과 관련된 부패 문화(술 접대, 향응 제공 등)

이런 내용들은 개인 인권의 문제, 심지어 성범죄 및 부패와 관련된 범죄 차원에서까지 심도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건전한 음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 실현 가능성을 최근 10년 전후로 한국의 흡연 문화가 확 바뀐 것에서 찾는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회사 사무실에는 임원부터 말단 사원까지 책상에 재떨이가 있었다. 옆에 있는 비흡연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하면서 얼마든지 누구나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업무상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는 게 예의고 받아서 피워 주는 게 예의였다. 지금 이렇게 하면 범죄행위다. 10여 년 사이에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누가 알았을까?

술도 무조건 금하거나 무조건 강요하는 게 아니라, 마시고 싶은 사람이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며 즐기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예수님이 그런 술 문화 속에서 사셨다는 상상을 교회도 이젠 허용해야 한다. 심지어 예수님은 포도주를 만들기까지 하시지 않았는가? 다윗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한 것도 내 잔에 물이 넘치는 게 아니라 포도주가 넘친다는 것이었다.

술 사발 걷어차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목사님이 오래전 신대원 강의에서 하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당신이 모 대학 철학과에 들어갔을 때, 그 과에는 신입생에게 소주 한 사발씩 먹이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 신입생들은 선배가 주는 소주를 한 사발씩 마시고 차례로 나가떨어졌다. 본인 차례가 오자 목사님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자신도 모르게 이단 옆차기로 선배의 술 사발을 걷어찼다고 한다.

이런 일을 처음 당한 선배가 하도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물었다. "그놈 참 기개 있네, 일단 술을 걷어찬 이유나 들어 보자." 목사님 왈 "저는 기독교인이라 술을 먹지 않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지만, 선배는 더 이상 묻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다른 친구들은 4년 내내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지만, 목사님은 이후 아무도 술을 권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생활이 아주 편했다고 한다.

글쎄다. 이런 방식으로 술을 거부하는 것이 윤리적인가? 여기에 그리스도인다운 예의라도 있는가?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될 무례는 아닐까? 나중에 교수님이 술을 따라 주셔도 걷어찰 것인가? 군대에서 혹시 연대장님이 주신다면? 회사에서 사장님이 주시면?

유명 목회자가 이런 식으로 자신이 어떻게 술 안 마실 '권세'를 얻었는지, 전설적인 무용담을 자랑할지라도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그로 인해 생길지 모르는 막대한 피해와 후유증까지 그가 책임져 주지 않는다.

일찍이 다니엘은 바벨론 왕의 음식과 술을 권했던 환관장에게 결코 이런 무례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예의를 다해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절충안을 논의했다. 술을 거절할 때에도 예의와 함께 지혜가 필요하다. 그 전에 우리 사회가 지위를 이용해서 억지로 술을 강권하지 않는 사회, 누구든지 술을 안 마실 권리를 인정하는 사회,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각자가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셔도 되는 그런 사회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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