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동체 안에만 있다 보면 떠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가 믿음이 없어서, 또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 중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를 여전히 구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점차 늘어나는 가나안 교인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은 이해도는 높이고, 높은 교회 울타리는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세 번째 기사입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A는 올해 초 교회를 떠났다. 흔한 교회 오빠였다. 부드러운 말솜씨와 배려가 몸에 배어 있었다. 기도 모임도 참여하고 청년부 임원도 몇 차례 했다. 주말도 헌납하며 교회 생활에 매진했다. 목사 비리, 교회 내분을 겪었지만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던 A였다.

그러던 그가 20년 넘는 교회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언젠가부터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떠날 때 강렬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A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뉴스앤조이>는 가나안 교인 세 번째 인터뷰로 A를 만났다. 그의 요구에 따라 이름은 익명 처리했다.

A는 유년기부터 서른 살까지 교회 세 곳을 다녔다. 가장 오래 다녔던 교회는 20년쯤 출석했다. 역사가 깊고 큰 교회였다. 찬양대에 오케스트라가 있고 기품이 있었다. 친구와 다니던 교회가 있었지만 8살부터 엄마 손에 이끌려 이 교회에 출석했다. 반강제적으로 옮긴 교회에서 A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낯을 많이 가려 새 친구 소개 시간에 운 기억도 있다.

▲ A는 20년 넘는 기간 교회를 다녔다. 가나안 교인이 된 건 올해 초부터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했다. 어머니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집이 쉼의 공간이 되지 않았다. 용기 내어 교회 모임에도 갔고, 친구들과 교제하면서 함께 놀고 시간을 보냈다. 즐거웠다. 교회 형에게 사영리를 접했고, 고등학교 때 진지하게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렇게 A 삶에 교회가 큰 축을 담당하게 됐다.

개인 특성이 살아나기 어려운 교회

청년이 되자, 교회 문화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A는 생각이 많았다. 끊임없이 사고하고 말하는 걸 좋아했다. 성경을 읽다가 궁금한 점,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문제 중 알고 싶은 것을 늘 생각하고 질문했다.

종교, 철학, 인문학 서적 읽기를 좋아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A가 신뢰하던 교회 선생님은 그에게 철학은 교양으로 배우라고 권했다. 수긍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왜'라는 질문을 지울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고 교회 안에 허용되는 선과 틀이 있다고 생각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에 보이지 않는 틀이 있었다. 사고나 질문도 특정 선을 넘으면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교회 안에서는 권장되지 않는 일이었다.

A의 특성은 교회 안에 잘 녹아들지 못했다.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청년들은 질문이 없었다. 어쩌면 교회가 이미 모든 질문에 정답을 갖고 있기에 질문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사안에 정답을 내 주는 교회가 버튼 누르면 음료 나오는 자판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공동체성을 강조하다 보면, 각 개인 특성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모습이 학교와 군대에서 가장 많이 두드러지죠. 저는 이런 체계에 대한 거부감이 계속 있어 왔던 거 같아요."

관계도 피상적으로 느껴졌다. 교회 안에서 하는 위로들이 비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널 위해 기도할게"라고 말하는 게 불편했다. 정말 그거면 되는 걸까, 회의감이 생겼다. 고통을 빨리 벗어나는 게 능사는 아닌 데 기독교 용어로 무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피처였던 교회가 답을 주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 교회를 떠날 때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다. 교회 문화와 시스템이 불편해져 자연스럽게 등을 돌리게 됐다.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교회 안에서 책 모임을 시작했다.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준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문득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를 추구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교회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즐겨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후 교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시작됐다. 결국 교회에 마음이 멀어졌고 떠나게 됐다.

떠난 뒤에 알게 된 것들

가나안 교인이 됐지만 교회에서 신앙해야 한다는 생각이 A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던 중 책 모임을 하고 기독교와 연관성 있는 강의를 하는 교회를 알게 됐다. 기존에 다니던 교회와 결이 다르게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세 번째 교회에 출석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회는 진보적인 편에 속했다. 교인들은 기존 교회에 학을 떼고 온 경우가 많았다. 문제 의식과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이 충만했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랐다. 새로운 교회상을 경험해 본 게 없었기 때문에 행동이 의식을 따라가지 못했다.

점차 A는 교회보다 교회 밖에서 만난 인문학 공동체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각자 한계는 있지만 함께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잘못됐다는 시선으로 보거나 개별성이 무시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교회와 신앙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교회를 옮겨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교회 테두리 안에서만 구원이 보장된다는 생각도 바뀌었다. 그러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교회를 떠난 지 8개월. A는 교회를 떠났다는 것 외에는 다른 교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관심사 맞는 사람과 함께 신앙 서적도 읽고 나눔을 한다. 전에 다니던 교회 사람들과 만나서 삶도 나눈다. 대신 신앙하는 방식은 조금 달라졌다.

틀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전에는 설교자에게 듣고 배웠던 방식을 토대로 묵상했다면 지금은 예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행간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무릎 꿇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 몸을 쓰며 기도한다.

▲ A는 교회는 떠났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책 모임도 하고 자신의 삶을 나누기도 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최근에는 한 교회 예배에 갔다가 교회 시스템과 이제는 거리가 멀어진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평소대로 찬양하고 말씀 듣고 기도하는 시간이 버겁게 다가왔다. A는 이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 상태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방식이 다르다고 믿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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