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민. 한국 사회나 교회에서는 아직도 생소한 주제다.

"안산 단원경찰서에 와 있다. 난민 신청했다 4년 전 대법원까지 패소하고 미등록 체류하던 분이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 것이다. 단속되자마자 자살을 예고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한가히 시간을 보내고 있던 주말,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이런 글과 마주쳤다. 경찰서에 있는 저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한국 땅을 밟았으며, 지난 4년을 숨죽이며 살다가 붙잡힌 그 속내는 어떨까. 가슴속이 팍팍해졌다.

글쓴이는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 2009년 난민인권센터를 만들고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경찰에 붙잡힌 사람은 어떤 이유로 4년간 미등록으로 체류할 수밖에 없었을까. 난민법 체계에 구멍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의문을 가지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수화기 건너 김 국장은, 안 그래도 기자에게 할 말이 있었다는 듯 선뜻 만나자고 했다. 8월 10일, 난민인권센터가 있는 서울 응암동 혁신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 ⓒ뉴스앤조이 구권효

1층 카페에 자리를 잡자마자 김성인 국장은 이야기를 쏟아 냈다.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언론이 난민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난민이 처한 상황의 열악함을 드러내 사람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는 이런 방식을 원하지 않았다.

난민 신청자 개개인의 상황이 눈물겹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그가 잘 안다. 그럼에도 김 국장은 "이제는 좀 큰 틀에서 볼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에게서 난민 이슈에 대한 전 세계적인 큰 흐름을 들을 수 있었다.

김성인 국장은 기독교인이다. 그가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난민 문제에 뛰어든 것도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난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한국교회의 구제·환대를 언급하며, 그 한계에 대해 솔직하게 논의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환대의 한계. 우리는 어디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난민 인정 심사의 낡은 잣대

근대 이후 국가는 인권을 보호한다. 국가가 여러 이유로 자국민 인권을 보호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국제사회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도 만들었다. 난민협약은 1951년 제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생긴 난민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난민협약의 한계가 보이고 있는데, 이를 보완할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그때 정한 다섯 가지 박해 사유(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정치적 의견)가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어요. 1950년대에는 그것이 적절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요즘에는 자국을 떠나는 상황이 복잡합니다.

난민이 많이 발생하는 아프리카나 중동은, 오랜 내전, 경기 침체, 기후 변화, 생산 시설 붕괴, 정부 독재, 실업률 증가 등등 삶을 살아갈 만한 기반이 붕괴돼 있는 거예요. 미래가 없는 거죠. 이런 복잡한 상황을 피해 자국을 떠나요. 그런데 이런 건 난민협약의 다섯 가지 박해 사유에 들어가기가 애매해요. 박해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제적인 이유로 이주한다고 보는 거죠. 이러면 난민에 대한 이미지가 또 안 좋아지는 거고요."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난민법을 제정해 시행하는 나라다. 그러나 정부는 엄격한 잣대로 난민을 심사한다. 극심한 내전에 시달리는 시리아에서 온 사람도 난민 인정은커녕 심사도 받을 수 없게 했던 법무부다. 변화하는 난민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협약과 법 대상을 아주 좁게 본다.

"난민 인정받으려고 온 사람들 개개인 사연을 보면 기가 막히죠. 한 사람 한 사람 너무 안타까워요. 지금까지 개인 사연을 소개하며 사람들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법으로 이들을 도와 왔어요. 언제까지 이런 방법으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큰 틀에 문제가 있는데 이걸 안 건드리고 개개인에만 집중하는 건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고 봐요."

넘을 수 없는 그 이름 '안보'

중동과 아프리카 몇몇 국가 내전으로 난민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 터키 해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네 살 꼬마 아일란 쿠르디는 전 세계를 움직였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미국·캐나다 등이 시리아 난민에 대해 전향적인 수용 원칙을 천명했다. 한국에서도 난민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것도 잠깐. 11월 파리 테러로 난민에 대한 태도는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유럽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국가 안보를 최우선하는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조작극으로 밝혀졌지만 인천공항에서 아랍어로 쓰인 쪽지가 발견되고, 국회에서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됐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는 충격이었어요. 이건 단순히 한 국가가 EU를 탈퇴했다는 게 아니라, 근대 철학의 근거지에서 '환대'가 무너졌다는 거예요. 자기의 위험, 국가의 안보 앞에 다른 사람을 대접했던 문화가 사라져 버린 거죠. 유럽과 미국에서 이주민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극우적인 의견이 환영받고 있어요.

▲ 지난 6월, 영국은 국민 투표를 통해 EU를 탈퇴했다. 탈퇴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안보적 상황에 대한 이주민 배격이 꼽힌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겪은 혼란과 비슷한 것 같아요. 낙원일 줄 알았던 사회주의 환상이 깨지고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죠. 지금은, 그래도 인간을 믿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는 문화에서 더 이상 환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는 거예요.

한국은 유럽·미국 등 서방국가와 분명 상황이 다른데도 그들의 불안·공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어요. 게다가 철학이나 사상적 배경도 부족하죠. 정부가 국가 안보를 빌미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분위기를 조장한 면도 있고요. 법무부나 난민을 담당하는 부서도 굉장히 소극적이에요. 난민법의 구멍을 메워야 하는데 총대 메고 돌파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없어요."

예수님은 자기 몸을 내어 줬는데

김성인 국장은 이런 현상이 교회에도 심각한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성경이 강조하는 정신이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지극히 작은 자"를 대접한 일이 곧 예수님을 대접한 일이 된다.

"한국교회는 구제를 많이 해요. 그런데 더 이상 불쌍한 사람 개개인을 도와주는 시혜적 차원에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요. 이주민들도 교회에 가면 뭐라도 주는 걸 알아요. 그러니 더 불쌍한 척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교회는 또 도와주고. 난민 이미지가 그렇게 고착돼요. 선의가 항상 옳은 건 아니죠.

난민은 시혜가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들이 한국 땅에서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교회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요즘 대형 교회는 웬만하면 스스로 봉사 단체를 만들어서 일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구제가 난민들을 주체적인 삶의 자리로 이끄는 것인지, 오히려 자립 기반을 해치는 방식이 아닌지 고민해야 해요."

물고기 주기는 쉽지만 낚시법 가르치는 건 쉽지 않다. 전문성이 필요하다. 난민 분야는 특히 난민 인권에 대한 이해와 당사자의 상황 등 고려할 부분이 많다. 김성인 국장은 교회가 전문 기관을 지원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본다.

안보 앞에 무너진 환대,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좀 더 근본적인 고민도 있다. '국가 안보', '자기 안위' 앞에서 환대는 무너져 내렸다. 그런 시대다. 한국교회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어디까지 본받을 수 있을까.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한국도 난민들을 굉장히 배격하고 있어요.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주자 = 불법체류자 = 무슬림 = 테러'라는 등식이 너무 쉽게 형성되고 있어요. 돈을 조금씩 나누는 건 어려워하지 않지만 이렇게 자기 안위가 걱정되면 배격하는 거예요. 경제적 손해는 감수해도 자기 안전까지는 양보하지 않죠. 예수님은 자기 몸을 내어 주셨는데.

자기 안전이 위험하다고 그들을 배격한다면 지금까지의 환대는 뭐였던 건가요. 유럽이나 미국도 기독교가 배경인 나라잖아요. 그런 곳이 무너졌어요. 한국교회도 이 지점부터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민인권센터는 2009년부터 난민에 대한 △법률 조력 △긴급 구호 △제도 개선 △인식 개선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난민인권센터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문의: 02-712-0620
- 후원 계좌: 국민은행 233001-04-225091(예금주: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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