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자의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김영란법이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부정부패를 막고, 국가 청렴도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기독교계 언론사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음성적으로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가 근절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뉴스앤조이 심규원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2014년 1월, 서울에 있는 한 호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임원회를 취재한 적 있다. 임원회는 예배 포함 2시간도 안 돼 끝났다. 임원들은 그 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취재 나온 기자 20여 명은 자리를 옮겨 따로 밥을 먹었다.

테이블에 앉자, 수프와 빵이 차례로 올랐다. 곧이어 핏기를 머금은 주먹만한 스테이크가 나왔다. 5만 원짜리 코스였다. 식사를 마칠 때쯤, 한기총 직원이 돌아다니며 테이블 위에 흰 봉투를 나눠 줬다. 기자들은 흰 봉투를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었다. 으레 그래 왔다는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봉투 안에는 5만 원짜리 2장이 들어 있었다.

다른 언론사 기자와 함께 돈 봉투를 나눠 준 한기총 직원을 찾아갔다. 흰 봉투를 돌려주려 하자 직원은 "교통비니 넣어 두라"며 받지 않았다. 몇 번의 승강이 끝에 봉투를 건넸다. 난감해하던 직원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2년이 지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김영란법'과 관련 있다. 7월 28일 헌법재판소(헌재)는 김영란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공직자의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를 금지한 이 법은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1회 100만 원, 연간 합계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와 관련 없어도 처벌받는다.

시행령안은 구체적이다.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으로 한정한다. 지금 김영란법이 시끄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법대로라면 2년 전 5만 원 상당 식사를 제공받은 기자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김영란법이 훨씬 나은 사회정의를 구현할 것 같지만, 언론사들은 달갑지 않은 모양새다.

앞서 기자협회는 공직자에 언론인과 사립 교원이 포함된 게 합당하냐는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언론과 사학의 자유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 있지만, 과도기적 우려 수준에 불과하다"며 7:2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그 파급력이 커 피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반면 원상회복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구된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음에도 일부 언론은 헌재 판결에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김영란법으로 언론의자유가 위축되고, 국가기관으로부터 통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 판결 다음 날인 7월 29일,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언론인 적용 부분은 심히 유감스럽다. 언론통제에 악용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보완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도 "국가권력이 법을 남용해 언론 감시, 언론통제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법의 집행이 몰고 올 파장과 부적용이 만만치 않다. 돌아가면서 밥 사는 모임에 공직자·교원·언론인이 포함되면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돈·광고 받고 기사 쓰는 '봉고 부대'

▲ 헌법재판소는 7월 28일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법 시행으로 언론의 자유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 있지만, 과도기적 우려 수준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런 와중에 기독교계 반응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기총과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김영란법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국가 청렴도를 끌어올리는 법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교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영란법에 국회의원이 제외된 것을 비판했다. 이런 평가가 나오게 된 데에는 기독교계 언론 풍토가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계에는 '봉고 부대'가 존재한다. 기자들끼리 뭉쳐 다니며 취재를 빌미로 목사·장로·교인들에게 돈과 광고를 요구하는 무리를 말한다. 금품을 수수한 이들은 호의적이거나 방어적인 기사를 써 준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진실은 은폐된다. 과거에 비해 활동량은 줄었지만, '봉고 부대' 행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잘못된 풍토 탓에 기자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돈 봉투를 내미는 이들도 있다. 자신이나 자기편을 대변해 달라는 것이다.

<뉴스앤조이>도 이런 풍토를 자주 목격했다. 모 기자는 몇 년 전 취재를 하며 한 목사를 만났다. 용건을 마친 목사는 막무가내로 기자에게 돈을 건네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기자는 교회로 연락해 통장 계좌 번호를 알아낸 다음 겨우 돈을 반환할(?) 수 있었다. 돈 건네는 취재원들을 뿌리치는 일은 드물게 일어나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교계 언론사 풍토가 바뀔까. 뚜껑이 열려 봐야 알겠지만, 교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다. 복음을 전한다는 미명 아래 거리낌 없이 교통비를 주고받고, 식사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대가' 없는 취재는 요원한 것일까.

헌재 판결이 나기 며칠 전 일간지에 근무하는 선배를 만나, 김영란법 이야기를 나눴다. 입법 취지가 좋다는 기자 의견과 달리 선배는 "오히려 아쉽다"고 말했다. 요지는 취재원이랑 밥·술을 먹으면 돈은 누가 내냐는 것이다. 각자 내면 되지 않냐고 하자 "그건 좀 그렇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취재 분야가 달라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김영란 전 대법관이 한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영란법은 쉽게 말해 더치페이법이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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