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숙 박사(총신대 실천신학 Ph.D)가 기고한 글입니다. 기독인문학아카데미 '여성의 눈으로 읽는 성경' 강좌에서 '아담과 하와(하나님은 중매자: "돕는 배필"과 "한 몸"의 의미)'를 주제로 강의한 내용입니다. - 편집자 주

창세기는 어마어마한 천지창조에 대해서는 겨우 1-2장을 할애하고, 대부분은 인물 중심의 스토리로 전개된다. 성경은 왜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 라헬, 요셉과 같은 인물들의 삶을 이렇게 길게 다루었을까? 이는 성경은 과학이나 연대기적 역사, 우주의 법칙, 정보, 위인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 주는 구원의 책이기 때문이다. 아담 이후 타락한 인간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구원의 섭리를 보여 주기 위함인 것이다.

강의 초에 남학생들에게 원하는 여성상에 대해 물어보면 후일에 자신들의 목회에 '도움이 되는 여성'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이들은 '돕는 배필'의 의미를 허드렛일과 부차적인 역할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돕는 배필'의 의미를 종속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학자들은 '돕다'라는 뜻이 "하나님이 그의 궁핍한 백성을 구원하는 데 사용하는 단어"(에제르)로 '우월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시편 121편, 히 13:6). 해서 자신을 돕는 사람이 열등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우월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배필'(창2:20)이라는 의미는 '서로에게 아주 잘 맞는 짝'(suitable)이란 뜻을 지닌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갈비뼈 하나를 취해 하와를 만들어 아담에게 이끌어 오신 최초의 중매쟁이셨다(창 2:21-23).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좋으셨지만, 유독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다(창 2:18). 아담으로 하여금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짓는 현장학습을 통해 '홀로 있음'의 결핍을 느끼게 하셨고, 이로써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잘 맞는 짝'을 갈망하도록 유도하셨다(창 2:18-20).

보수 교단은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로 취해졌기 때문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이 하와도 따로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이 없으셨을까? 여자를 남자에게 종속시키려면 굳이 따로 창조하실 이유가 없기에 그렇다.

학자들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했다는 건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해석한다. 하나님은 하와를 창조하실 때 아담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아담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논의조차 없이 단독으로 행하신 창조 사역이었다. 남성들이 갈비뼈에 집착하여 단번에 '종속'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왜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하와를 만드셨는지 그 의도를 더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결혼이란

만일 하나님이 하와를 따로 만드셔서 아담에게 데리고 왔다고 한다면, 아담 입장에서 좀 생경스럽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하와를 만들어 아담에게 데리고 오신 이유와 의미는 하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고 토해 낸 아담의 탄성에 있다. 이 고백 안에는 자신의 것을 취해 창조된 하와를 향한 친밀감이 담겨 있으며, '한 몸'이라는 의미와 함께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겠노라는 헌신의 고백이 간파된다.

이러한 사랑의 헌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그 아내와 한 몸('바사르': 육체, 살)이 될 수 있다(창 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지 않으면 '돕는 배필'이란 그저 '성적 파트너' 내지 '몸종'에 불과해지기에 그렇다. 이 말씀은 부모를 떠나는 게 중점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되기 위해 부모를 떠나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고부 간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교회에서조차 결혼 예식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식의 설교를 종종 듣게 되어 여성 입장에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성경이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말씀한 건 불효를 하라는 게 아니다. 배필로 맞이한 아내와 온전히 연합하여 하나가 되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결혼의 출발이요 목적이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만드신 건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됐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여기에는 아담과 하와가 첫눈에 반할 만큼 서로 친밀하고 한 몸이 되어, 자기 몸처럼 사랑하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깊은 의도가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아내를 존중해야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요, 내 뼈요 살이 된 아내를 사랑해야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한 몸'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남성에게 종속되는 여성보다 남성과 동등하게 하나 되는 여성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더 부합된다고 볼 순 없는 것일까?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도 행복할 턴데 말이다.

여성의 눈으로 아담과 하와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결혼은 남자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 '한 몸'이 되는 사랑의 연합성과 사랑의 책임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부모 입장에서 바꾸어 해석해 보면, 자녀의 결혼을 축복하며 둘이 하나가 되도록 잠시 자리를 비켜 주는 게 더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부모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녀를 결혼시키면서 지금껏 키워 온 대가를 '효도'라는 명분으로 요구할 게 아니라, 이제 자녀들의 연합을 위해 저만치 떨어져 있어 주고, 자녀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게 하나님을 믿는 부모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쯤 되면 부모 노릇은 자녀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끊임없이 포기하고 내려놓는 삶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는 "나를 위한 너, 너를 위한 나"라는 존중과 감사, 그리고 깊은 사랑의 친밀함과 헌신으로 하는 연합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결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이를 따를 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가정이 된다고 생각한다.

강호숙 / 총신대 실천신학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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