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7월 14일 미국 플로리다 주 북부 펜사콜라 시의회에 검은 가운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남성이 등장했다. 얼핏 보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다스 시디어스 같다. 데이비드 써홀(David Suhor)은 군중의 야유와 방해에도 의식을 계속했다.

펜사콜라 시의회에는 의회 모임 시작 전 늘 기도하는 시간을 있었다. 특정 종교를 전면에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라 목사 또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당연했다. 써홀도 이날 오랜 기다림 끝에 기도 인도를 할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서부 플로리다 주 사탄템플(Satanic Temple) 공동 창립자라는 점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 데이비드 써홀(David Suhor)은 7월 14일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가운을 입고 의회에 나타났다. 그동안 의회가 기독교 방법으로만 기도해 온 것을 비판한 그는 이날 자신이 고안한 방법으로 사탄을 숭배하는 노래를 불렀다. (동영상 갈무리)

써홀은 이전부터 기도회를 모든 종교에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7월 7일 모임에서도 미국 수정헌법 1조는 국민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마태복음 6장 5-6절을 읽으며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종교의자유가 있는 미국에서 기독교인들이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을 비판했다.

7월 14일, 써홀은 준비한 옷을 입고 마이크 앞에 섰다. 객석에는 십자가·성경을 손에 든 사람, 목사 예복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써홀이 기도를 시작하려 하자 이들은 동시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단체로 주기도문을 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십자가를 움켜쥔 주먹을 하늘 높이 들고 통성기도를 이어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준비한 기도를 시작하지 못하자 결국 찰스 배어(Charles Bare) 의장은 써홀의 의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잠시 회의 장소를 떠나 달라고 부탁했다. 반은 떠났고 반은 남아 다시 작은 소리로 통성기도를 이어 갔다. 써홀은 자신이 준비한 노래를 불렀다. 성수를 뿌리는 사람도 있었고, "루시퍼를 영접하고"라는 부분에서 탄식하는 사람도 보였다. 노래는 "사탄 만세"(Heil Satan)로 끝났다.

써홀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내 행동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특정 그룹이 자신의 메시지가 유일한 진리라고 믿으며 그것을 정부 안건에 포함하려 할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종교를 믿든 그것을 존중하고, 믿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진정한 종교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 펜사콜라시는 플로리다 주에서도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도시다. 써홀이 노래하는 동안 객석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들고 큰 소리로 주기도문을 외웠다. (WEAR-TV 뉴스 갈무리)

그가 원하는 것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다. 펜사콜라 시의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시의회도 의회 시작 전 기도 순서를 갖는 곳이 많다. 써홀은 이 기도 시간을 일부에게만 개방하느니 차별성을 없애기 위해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애리조나 주 피닉스 시의회는 사탄 숭배자에게 기도 순서를 제공하느니 공공장소에서 기도하는 순서를 없애겠다고 했다. 2016년 2월부터 이 의회에서 기도 순서는 사라졌다.

이 사건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동안 기독교인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로운 종교 활동할 권리를 주장해 왔는데, 공공장소에서 기독교식 기도만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경우 이중 잣대 적용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미국이 '기독교 신앙' 위에 세워졌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미국 곳곳에서 종교 충돌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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