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지역 교회를 담당 목회자들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고발하는 기사가 어느 때보다 물밀듯 쏟아져 나오고 있는 듯 합니다. 참으로 있어서도 안 되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기독교회 내에 발생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잠시 잠깐 멈추어서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되는 근원적인 이유와 원인에 대해 한번쯤 진지한 고민을 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사실 목회자들의 크고 작은 성적인 문제와 다양한 종류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는 과거부터 계속적으로 자행돼 왔습니다. 문제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삭막한 세상 속에서 등불 역할을 감당해야 할 종교계 지도자들이 세상보다도 더 무례하고 지저분한 행각이 그 어떤 과거 행위들보다도 잔인하고 심각하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근래에는 다른 종교 지도자보다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도저히 사회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인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야만 합니다.

종종 종교가 타락하면 더 이상 이 사회와 국가와 우리 지구촌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이제는 국가나 사회가 종교를 챙겨 줘야 할 때라 반박하기도 합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극우주의를 표방하는 테러 단체 이슬람 IS만 보아도 그들은 이미 종교의 본질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의 생명을 죽이거나 인권을 짓밟는 행위는 그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용납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단체는 당장에 지구상에서 사라져야만 할 것입니다.

▲ <빗나간 기독교> / 김백형 지음 / 신의나라 펴냄 / 235쪽 / 1만 500원

이와 같은 극단적인 세력이 단지 이슬람 IS뿐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버젓이 정통이라는 이름하에 존재하는 기성 종교 내에도 이와 같은 성향이 다분합니다. 다만 표출하는 방법만 다를 뿐인 것이죠.

어째서 종교계 지도자들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하거나 혹은 모든 일은 신(하나님)에게 맡겨야 한다고 떠들어댈 수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그들의 이 같은 발언은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부분일까요? 저는 사회적으로 용납이 불가능한 상식 이상 주장들은 참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종교는 초월적인 영역의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종교의 본질은 초월적인 것을 다루기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세의 삶을 아름답고 선하게, 신(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갈 때 미래의 삶은 그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종교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경향이 큽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사건 앞에서의 기독교회 반응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가와 사회를 향해 선지자적 목소리를 높이기는커녕 모든 것을 초월적인 차원의 문제로 넘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좀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결국 이것이 바로 이들의 태도이지 않았나요?

기독교와 기독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외치는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우리 신앙관이 달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를 이해하고 성경을 이해하는 관점에 변화가 찾아올 때 앞서 언급한 여러 크고 작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혹은 성도)의 윤리적, 도덕적 문제는 국가나 사회가 들추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빗나간 신학적 가르침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은 국가나 사회의 몫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기독교인들 몫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합니다.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배우면 교만해지고, 많이 알면 머리만 커져서 안 된다고 세뇌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아주 사악한 발상입니다. 이는 곧 "나는 알아도 되지만 너는 알면 안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발상입니다. 바로 이러한 잘못을 그동안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자행해 왔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지식을 다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 상식 수준만 가지고 있으면 살아가는 데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자기 전공 분야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야 전문인으로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종교라는 분야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종교라는 분야에까지도 어느 정도 지식만 있으면 신앙생활하는 데 그리 큰 불편함이 없는 것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기독교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종교를 잘못 이해한 것이죠. 종교에서는 지식의 공유화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지식의 공유화가 이루어져야만 참된 공동체를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식의 공유화를 떠나서 교회 개혁과 변화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이 책 <빗나간 기독교>는 바로 이와 같은 목적으로 집필되었습니다.

개혁주의를 자처하는 교단에 속한 제도권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현재는 제도권 교회를 떠나 일반적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며 나름의 기독교 개혁 운동을 펼치는 저에게 이 책은 또 다른 제 자신과도 같습니다.

목차

PART 1. 성서학에 대하여
- Q문서의 발견과 발전
- 성서 비평학이란 무엇인가?
- 성서 비평학의 등장과 발전사
- 성서는 어떤 의미에서 진리인가?
- 성서에도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면?
- 진보 신학의 성서 비평학
- 모세오경의 저자 문제
- 성서 해석학과 범주의 문제(구약성서: 욥기)
- 복음서, 기억된 역사와 은유화된 역사의 혼합체
- 마가, 요한복음이 말하는 예수 죽음의 상이성
- 마가복음 16:9-20에 대하여
- 성서를 왜 비평학적으로 봐야 하는가?
- 문학으로서의 성서 이해

PART 2. 오늘날 교회에 대하여
- 교회 탄생 배경과 현시대 교회에 대한 이해
- 세월호 신학과 구조선 신학
- 교회의 지적인 부정직함
- 다양한 관점으로 성서를 보라
- 개혁주의 신학을 내려놓은 이유
- 정통 기독교는 옳은가?
- 나는 왜 진보를 외치는가?
- 다시 역사적 예수에게로

PART 3. 대안을 찾아서
-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
- 일방적 선포에서 공동체적 해석으로
- 교회, 그 순전한 모델을 제시한다면?
- 교회 공동체, 이렇게 세운다면?(1)
- 교회 공동체, 이렇게 세운다면?(2)
-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 원리

PART 4. 묻고 생각하며
- 십일조의 의미를 찾아서(1)
- 십일조의 의미를 찾아서(2)
- 유아세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기독교 신앙의 변질에 대하여
- 기독교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
- 묻지 마 폭행과 묻지 마 신앙
- 목회자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는 어디서 오는가?
- 왜 교회사를 배워야 하는가?
- 종교의 역할에 대하여
- 왜 예수는 예배당을 짓지 않았나?(1)
- 왜 예수는 예배당을 짓지 않았나?(2)
-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는 분이신가?

맺는 말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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