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과 종교학을 가르치는 강남순 교수는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다. 그는 혐오가 감정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혐오의 정치학'이라고 불렀다.

강남순 교수가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한국 YWCA를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강연을 열고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다. 7월 17일 강남순 교수는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를 찾았다. 섬돌향린교회는 알려진 것처럼 성 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환대하는 교회다. 강 교수는 이날 주일예배 설교와 오후 특강을 맡았다.

오후 특강은 '혐오의 정치학과 그 파괴성: 혐오 종교, 혐오 사회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교회 내 사회 선교를 담당하는 길라잡이 활동 일환으로 마련된 자리다. 특별히 외부인도 참석할 수 있도록 열린 모임으로 준비했다. 섬돌향린교회 교인을 포함, 50여 명이 참석했다.

▲ 강남순 교수는 혐오가 작동하는 원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나와 너를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가 증오를 유발한다고 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분법적 사고가 만들어 내는 혐오

강남순 교수는 하얀 칠판 하나를 옆에 놓고 강의를 시작했다. 강연을 듣는 사람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편안하게 말을 풀어 나갔다. 강 교수는 먼저 혐오가 시작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그는 혐오가 꼭 특정 계층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혐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웃고 상냥한 사람들, 부드러운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혐오를 말할 수 있다고 봤다. 여성이 여성을 혐오하고 성 소수자가 성 소수자를 혐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혐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시작한다. 강남순 교수는 '모 아니면 도'라는 사고방식이 증오(hatred)를 만든다고 했다. 혐오에 익숙한 사람들은 세상을 '선과 악', '남성과 여성', '나-타자', '정상-비정상', '정신-육체'로 구분한 후 판단한다. A와 B의 차이로 우열을 가르고 이를 바탕으로 힘이 센 쪽이 약한 쪽을 지배하는 논리가 작동한다. 지배하는 쪽이 곧 진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혐오가 시작된다. 내가 속한 그룹을 진리라 믿기에 그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비진리 취급한다.

강 교수는 영국 여성이 참정권을 받아 내는 과정을 설명했다. 과거 영국 남성들은 여성을 언제나 온전하지 못한 존재, 종합적 판단 능력이 영원히 발달하지 못할 존재로 보고 결정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참정권을 얻는 과정은 투표권을 달라는 것 이상으로 "여성을 인간으로 봐 달라"는 운동이었다고 강 교수는 전했다.

참정권을 얻기 위해 남자는 정상, 여자는 비정상이라는 편견과 싸워야 했다. 강남순 교수는 사회 모든 단위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고 했다. 옳은 교인, 옳은 국민, 옳은 회사원이라는 표준을 정해 놓고 그것을 '정상인'이라고 한다. 이 표준에 벗어나는 사람은 '비정상'인이다.

아이들을 봐도 그렇다. 어른들이 이상적인 표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은 '비정상', '문제아' 취급한다. 얼마 전 한 아이가 쓴 동시가 '잔혹 동시'라는 이름을 달고 언론에 소개됐다. 강 교수는 '잔혹 동시'라는 이름을 붙인 어른을 나무랐다. 그는 이미 현실을 잔혹하게 만들어 놓고 아이들에게는 예쁜 것, 귀여운 것만 표현하라고 강요하는 어른이 문제라고 했다.

▲ 7월 17일 주일 오후, 섬돌향린교회에 50여 명이 모였다. 강남순 교수(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섬돌향린교회에서 사회 선교를 담당하는 길라잡이 활동 일환으로 마련된 특강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내 안에 혐오가 작동할 때 나는 무사할까

강남순 교수는 혐오가 작동하는 실례로 여성과 성 소수자를 들었다. 한국교회에서 여성은 열등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현재 이름 있는 대형 교회 중 여성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곳은 없다. 여성이 담임목사로 있는 곳은 주요 교단 소속이 아니다. 강 교수는 교회 내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조차 여성을 무시한다고 했다. 노골적으로 혐오하지는 않지만 여성 목사가 남성 목사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여성 목사를 열등하다고 보는 근거로 이중 기준을 들었다. 한국 대형 교회에서 만약 남성 목사가 교인과 성관계하거나, 헌금을 횡령했다고 하자. 똑같은 행위를 여성 목사가 했다고 하면 과연 사람들은 똑같이 반응할까, "그것 봐, 그러니까 여자는 안 돼"라고 말할까.

성 소수자를 혐오할 때도 마찬가지다. 성 소수자가 사회를 오염시킨다는 생각이 사람들 판단 기저에 깔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싫어하고, 싫어하는 감정은 은밀하고도 노골적으로 가동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누구든 혐오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내 안에 혐오가 작동할 때 나도 파괴된다. 나의 창의성과 잠재성을 모두 잠식해 버리는 것이 혐오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룹으로 선을 긋지 말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고 했다.

퀴어 문화 축제 때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람도 강남순 교수 눈에는 피해자로 보였다. 강 교수는 그 사람들도 교회에서 이분법적 사유 방식을 배운,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자신의 입으로 혐오를 말하는 사람은 동시에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강 교수는 혐오를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그는 퀴어 문화 축제에서 피켓 들고 서 있는 교인들을 두고 교회에서 주입된 이분법적 사고로 혐오를 말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혐오를 경험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혐오 주체가 되기도 쉽지만 혐오 대상으로 인식되기도 쉽다. 강남순 교수는 누군가의 혐오를 받는 존재로 살아갈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그는 우선 분노해야 한다고 했다. 분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임을 알고 건설적(constructive)이고 창의적으로 분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적 분노는 피해자 의식을 주체 의식으로 변화시키는 분노다.

그는 이 부분을 설명하며 성서를 예로 들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택하셨지만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늘 이방인으로 살았고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살았다. 사회 약자로 살았지만 이것이 디아스포라 의식으로 형성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혐오받은 사람은 이미 사회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한 사람이다. 강 교수는 자신의 유학 생활을 언급하며 한 번 사회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미 자신이 소수자로서 약자로서 삶을 살아 봤기 때문에 다른 소수자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혐오받는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지 말고 삶을 유의미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섬돌향린교회는 흔히 이야기하는 대형 교회도, 주류 교회도 아닌데 왜 이곳이 존재해야 하는지 계속 물으면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시도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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