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에도 힘들어하고 있을 10대 성 소수자에게 부탁한다. 여기저기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고 아픈 줄도 모르고 상처받고 있겠지만, 어떻게든 꿋꿋하게 살아남아 줬으면 한다. 인간의 가치는 동성을 사랑하는지 이성을 사랑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상대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까. 멋진 동성애자로 살아남아서,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줬으면 한다. 그때까지 부당하고 비과학적인 혐오에 맞서 함께 싸우며 기다릴 테니까."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겨레21> 1105호에 실린 '동성애 전환 치료, 위험한 착각' 마지막 단락이다. 이 글을 쓴 김승섭 교수(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는 성 소수자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젊은 학자 중 한 명이다.

2016년 3월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준)가 주최한 '전환 치유(동성애 치유)는 폭력이다' 기자회견에서 김승섭 교수를 처음 만났다. 진주사랑의교회와 대구의 한 교회에서 전환 치유 명목으로 목사와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폭행당한 연희 씨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자리였다.

때는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이 단순한 구호 제창에서 좀 더 그럴싸한 사람들의 입을 빌리는 방식으로 변하는 시점이었다. 이들은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항문 섹스하는 동성애는 위험한 것이니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승섭 교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동성애자의 성적 지향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환 치료'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학문적 논거를 대며 반동성애 진영의 논리를 반박하는 김 교수가 눈에 띄었다. 학계에서 동성애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김승섭 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보건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3년간 공중보건의로 일했다. 그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비정규직과 건강', '차별과 건강'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5년 걸리는 박사과정을 2년 9개월 만에 마쳤다.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고려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대비가 잠시 멈춘 7월 6일 오후, 김승섭 교수가 있는 고려대를 찾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터라 캠퍼스는 조용하고 그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도 적막했다. '김승섭' 이름이 새겨진 방문을 노크하자 김 교수가 밝은 얼굴로 맞아 주었다. 김 교수는 6평 남짓한 연구실에서 조용히 방학을 보내는 게 가장 편하다고 했다.

▲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건강을 연구하는 김승섭 교수(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과)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사회 환경이 성 소수자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승섭 교수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의대를 졸업한 후 의사가 되지 않고 학자의 길을 택한 이유, 성 소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반동성애 운동 진영의 주장, 여전히 동성애가 질병이고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등을 나눴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학교 1학년에 만난 산재 노동자, 그가 인생을 바꿨다

- 처음부터 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의대에 갔나.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웃음) 대학교 1학년 5월, 축제 때 산재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장터를 열었다. 1학년이 뭘 알았겠나. 가서 전 부치는 것 도와주고 그랬다. 그곳에서 산재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분은 일하다 프레스에 손가락 다섯 개가 다 잘렸다. 그래서 나머지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손마저 기계에 말려 들어간 거다. 기계를 멈추게 하는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다른 손가락이 없으니 정지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누가 와서 구해 주기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대 본과 시절에는 방학 때 한 달씩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라는 단체에 상근했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지만 가서 청소하고 노동자들과 같이 병원 상담 다니고 그랬다. 이런 활동하면서 '병원 밖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 혹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다시 혹독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병원 치료는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치료도 물론 의미 있지만 거기서 머물지 말고 조금 더 나아가고 싶었다. 의과대학 다니면서 공부한 시간만큼 현장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카지노 들어선다고 하는 장소에 가서 진폐증 환자들 다큐멘터리를 찍어 오기도 했다. 일부러 현장을 다니며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때는 산재보험이라는 게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르는 노동자가 많았다. 한국에서 산업재해 문제를 다루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살 생각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미국에 가게 됐다. 의과대학 마지막 겨울 방학 때 8주 특성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해외여행 한번 못 해 봤으니까 해외로 나가려고 준비했다. 여행은 아니었고 미국 보스턴 남부에 있는 산업재해를 다루는 시민단체에서 인턴을 하기로 했다. 보스턴에 하버드대학교가 있는지도 모를 때였는데 단체에서 허드렛일 도우면서 하버드대 청강을 할 수 있었다. 노동자 건강 문제에 대한 프로그램이 정말 잘 돼 있구나 싶어 나중에 유학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김 교수를 처음 만난 건 지난 3월 성 소수자 전환 치료 반대 기자회견에서였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며 경험했던 것, 느꼈던 일 등을 쉴 새 없이 쏟아 냈다. 김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전환 치료가 성공했다는 학술 논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성 소수자 교수에게 배우며 생각 바뀌다

- 하버드에 가서 본격적으로 성 소수자에게 관심을 가진 것인가.

그 당시에는 특별히 성 소수자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내 지도 교수는 유전역학을 연구하는 분이었다. 예를 들면 폐암의 유전적 원인이 환경적 요인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분 밑에서 공부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질병의 유전적 원인을 찾는 것도 좋지만 그 병을 얻기까지 사회적 이유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도 교수에게 함께하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바닥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속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 문제가 뭘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은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했다. 하버드대 박사 학위 논문을 '비정규직과 건강', '차별과 건강' 이 두 가지 주제로 썼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하버드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과 게이 교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차별과 건강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이자 하버드대가 정년 보장(Tenured)한 낸시 크리거 교수의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좋았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는데 지내면 지낼수록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동성애자 교수의 수업을 듣고 동성애자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들도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 갈 무렵, '성과 공공보건(Sexuality and public health)'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성 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인구 집단의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성적 건강을 어떻게 증진할 것인가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졸업할 당시 그 수업이 학생들이 뽑은 최고 수업으로 상을 받았다. 그런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차별과 건강'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고 했는데 그 범주에 성 소수자 차별도 들어가나.

물론이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는 학문을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급성질환은 물론이고 당뇨병이나 유방암 같은 만성질환이 사회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노동조건을 예로 들자면 근무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야간 근무 감소는 모두 다양한 만성질환의 발생을 줄이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질병의 유전적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에 비해 사회적 원인에는 관심이 없다. 학술적으로 검증된 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요인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모욕, 적대적인 사회적 관계다.

- 2013년 고려대에 교수로 부임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성 소수자 관련 분야는 불모지나 마찬가지 아니었나.

한국에 돌아와 보니 성 소수자 혐오가 너무 컸다. 학계에서 대응할 연구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후학을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 중 성 소수자 건강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 친구들을 잘 도와서 10년 후에는 이들이 일선에 나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학생은 학부 다닐 때부터 같이 준비해 석사 1학기 마칠 때 벌써 논문이 나왔다. 그 논문을 쓰면서 자세히 보니 정말 관련 연구가 없었다. 누가 연구한다고 할 때 받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 학생을 돕다가 본인이 직접 뛰어들게 된 건가.

연구하면서 실제로 만난 성 소수자들이 너무 힘들게 지내고 있었다. 우선 자살 시도율이 너무 높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는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다른 나라에 비해 성 소수자들에게 너무 잔인한 나라였다. '아 이건 안 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면 해야겠다' 생각해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또 하나, '언제 적 논쟁을 다시 가지고 오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학계에서는 이미 끝난 얘기이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문제인데, 자꾸 과학의 이름으로 수준 낮은 증거를 갖고 와서 말하는 것에 대해 학자로서, 이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6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김 교수는 하루를 보낸다. 방학이라 고요한 캠퍼스에서 그동안 진행해 온 연구를 돌아보고 앞으로 진행할 연구를 준비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할 필요가 없다'

-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동성애가 선천적이 아니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선천적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의 문제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봐야 하나.

이건 학계 전문가 사회에서는 끝난 이야기다. 동성애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하는 논쟁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라진 질문이다. 학계에서는 더 이상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니까. 질병이 아니고 고칠 이유가 없는 상태에 대해 그 원인을 찾을 이유가 있나.

국가기관이 연구비를 줄 때는 어떤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포함한 건강 증진을 염두에 두고 준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그 원인을 밝혀내는 연구에 지원할 이유가 없다. 국제적으로 뛰어난 연구자들은 동성애 원인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하는 연구를 하지 않는다. 명백히 질병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그 연구에 시간과 돈을 쓸 이유가 없다.

- 반동성애 진영 일부 인사는 미국심리학협회에서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고 하기까지 동성애자들의 압박과 로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다. 동성애 진단 과정과 질병에서 제외되는 과정이 과학적인 연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로비 때문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한 거다. 학술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정신과·심리학과에서 인정하는 것과 반대되는 패러다임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정신의학협회, 미국정신의학회, 미국심리학협회, 유럽정신과의사협회는 다 성 소수자들 영향력 아래에서 가짜를 말하고 있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과학에서 지식의 형성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이 특정 집단의 로비로 그 집단에 유리하게 형성됐고, 수십 년간 그 관점이 그 집단의 로비로 인해 강화되었고, 전 세계 학자들이 모두 거기에 속고 있다? 이걸 확신할 수 있고 사례를 모을 수 있으면 꼭 논문을 쓰시면 좋겠다. 만약 이걸 과학적으로 정당하게 서술이 가능하다면 <네이처>에도 실을 수 있다. 그러나 논문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말을 아꼈으면 좋겠다. 전 세계 어느 정신의학회에서도 동성애는 질병인지 아닌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가 현재까지 과학이 밝혀낸 바다.

은퇴한 한 정신과 원로교수가 아직도 동성애는 WHO에서 내놓은 목록에 질병 코드로 분류돼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사실과 조금 다르다. 거기서 질병이라고 말하는 상태는 이렇다. 내가 동성애자인 게 확실하다, 그런데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는 성적 정체성을 밝힐 수가 없고 인정받을 수 없다. 동성애는 질병이라고 말하는 보수 기독교 안에 있으면서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면 이 사람은 그 갈등으로 인해 괴로워하게 된다. 성적 지향이 문제가 아니라 성적 지향을 긍정할 수 없는 사회와의 갈등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진단명이다. 그래서 WHO 질병 분류에는 상위 항목에 '동성애 그 자체로는 질병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쓰여 있다.

만약 내가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라면 동성애자인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하는 과정을 겪을 필요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진단명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가 날 괴롭게 하면 정말 이 병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럴 경우 동성애자 당사자가 당신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내가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한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혐오하는 사회였다는 걸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 지난 6월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가 부스를 설치했다. 이들은 성 소수자 문제를 연구해 온 학자들이다. 점차 커져 가는 혐오에 학술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뭉쳤다. 부스에 찾아온 손님에게 활동을 설명하는 김승섭 교수(가운데) (사진 제공 김승섭 교수)

사실 하나, HIV/AIDS는 만성 질환이다

- 동성애자가 에이즈 취약 계층이라고 한다.

취약 계층, 맞는 말이다. 그 논쟁에서는 무엇보다 HIV/AIDS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사실 HIV/AIDS는 의학적으로 만성질환으로 이미 온전히 정리가 되었다. 예를 들어 20살 젊은 남성 동성애자가 HIV 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하자. 그가 의학적인 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평균적으로 70세 이상 살 수 있다. 병에 걸리고도 관리가 된다면 50년 이상 살 수 있는 만성 질병이다. 그런데도 HIV/AIDS가 마치 치명적인 질병처럼 두려움을 심고 낙인찍는 것은 의학적으로 무지한 거다.

미국의 통계를 살펴보면 1990년대 중·후반부터 에이즈 환자 수가 급증하는 원인은 이전과 달랐다. 신규 감염자가 나타나는 속도보다 감염된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속도가 더뎠다. 약이 개발돼 사람들이 더 이상 에이즈에 걸려도 죽지 않고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환자로 집계됐다. HIV 감염 이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면 평균적으로 수십 년을 더 사는 상황에서 환자 숫자는 당연히 계속 늘어난다. 이쪽 연구하는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에이즈 질환 자체에 대한 의학적 무지를 벗어야 한다.

- 반동성애 진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의사들이 있다. 자신의 임상 환자 중 에이즈 바이러스가 뇌를 갉아 먹어 치매에 걸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사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는 의사 개개인이 경험한 환자의 증례가 아니라 HIV/AIDS라는 질병의 원인과 치료, 그리고 예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것, 에이즈 환자의 치료와 증상에 관한 것, 모두 의학에 관한 이야기다. 만약 학술지에 투고할 만큼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거나 혹 논문을 써도 모든 저널이 게재를 꺼린다면, 말을 조금 삼가셨으면 좋겠다. 수많은 연구와 논문이 출판돼 있는 상황에서 그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시는 건데, 그러려면 먼저 학술적인 논문을 쓰는 게 맞다고 본다.

자기가 돌보는 에이즈 환자에게서 그런 증상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에 말할 때는 에이즈 환자의 일반적인 증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런 경우에는 임상 사례를 조금 더 확보해서 말씀하셨으면 좋겠다. 자기가 봤던 임상 환자 한 사례에 대한 리포트가 아니라 에이즈 환자 전반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거니까.

동성애 혐오가 에이즈 확산 주범이다

- 지금 말씀을 들어 보면 동성애자가 에이즈 감염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동성애가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취약 계층이란 것이 인정됐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나는 동성애 혐오가 에이즈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확산을 촉진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동성애자를 혐오한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동성애자들의 존재와 그들이 갖는 성관계를 사회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더욱 음성적으로 스며들고 안전한 섹스를 하지 못하게 된다. 안전한 성관계에 필요한 정보와 교육을 받지 못하니 당연하다. 동성애 혐오가 증가할수록 에이즈가 확산될 거라고 본다.

남성 동성애자가 안전하지 않은 섹스, 즉 콘돔을 끼지 않고 성관계하면 HIV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 우리가 개입할 지점이 어느 부분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네 단계가 있다. △남성 동성애 △안전하지 않은 섹스 △HIV 바이러스 감염 △에이즈.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고 윤리적인 지점은 안전하지 않은 섹스와 감염 부분에 개입하는 거다. 동성애자들이 안전한 섹스를 하도록 권장하고 교육하는 것과 만약 HIV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에이즈로의 진행을 막는 것이다.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게 하면서 에이즈로 진행을 지연시키거나 건강한 삶을 더 오랫동안 살도록 도울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과학이 밝혀내고 알려 준 윤리적이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고 에이즈 확산을 막는 방법이다. 이건 상식적인 이야기다.

"동성애가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최신 의학 정보와도 맞지 않는다. 전 세계 의학적으로 발달한 그 어느 나라에서도 HIV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동성애를 막아야 한다는 나라는 없다. 그런 것의 효과가 입증되거나 연구하는 나라도 없다. 그런 주장은 비윤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걸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웃기다.

▲ 김승섭 교수는 반동성애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 중에 진짜 전문가가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동성애라는 한 주제에 대해 비전문가가 비과학적인 주장을 펼치는 상황이 오히려 연구 대상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과학 근거에 기반한 학술적인 논문을 써 달라

-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사람들이 동성애와 에이즈 전문가처럼 말한다.

내게는 이 상황 자체가 연구 대상이다. 비과학적 혐오에 기반한 지식이 어떤 권력 구조에서 형성되고 재생산되고 있는지 과학지식사회학을 공부하는 누군가가 연구해 논문으로 발표하면 좋겠다. 지식 생산의 메커니즘과 권력 구조, 자원이 어디서 나오고 어떤 관계에서 움직이는지 밝히면 이건 좋은 학술지에 게재할 수 있다. 어떤 때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어떻게 강화됐고, 어떤 구조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누가 어떻게 퍼뜨리는지 과학지식사회학 논문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

반동성애 세력의 주장은 UFO를 믿는 사람들의 주장과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UFO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있지만 전 세계 천문학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학술적으로 UFO의 존재가 증명된 적은 없다.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논문을 써서 천문학회지에 투고해서 증명하면 된다. 동성애가 질병이라는 주장은 현재 학계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믿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점이라면 UFO는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루머를 퍼뜨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동성애가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존재하는 사람을 부정하고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데 기여하는 발언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동성애 혐오가 동성애자를 비참하게 만든다

-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살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성애자들은 "당신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사는 거다. 동성애자를 아프게 하는 건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 혐오'다. 혐오와 차별이 동성애자를 아프게 한다. 이 부분에서 더 이상 학술적인 논쟁이 진행되지 않는 건, 외국에서는 동성애자면서 이미 사회적으로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 낸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조디 포스터, 팀 쿡, 엘렌 드제너러스 등 동성애자가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치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는 많다. 동성애자가 불행한 것은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자를 불행하게 만드는 혐오와 낙인 때문이다. 그래서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규명하는 사회역학적 관점이 중요하다.

- 반대하는 사람들 공통점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기독교다. 그런 분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나.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복음서를 너무 좋아하고 자주 읽는다. 예수는 구약의 계율을 지키는 것보다 완성하러 왔다는 말을 한다. 자신들은 규율을 지킨 후 그 규율을 지킬 수 없는 일반인들에게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죄의식을 갖게 만드는 바리새인을 예수는 경멸한다. 예수는 문자나 계율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실존하는 사회적 약자, 힘없고 어려운 사람을 몸으로 만나면서 살았던 존재였으니까. 계율의 참된 의미를 사회적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의 삶 속에 비추어서 스스로 해석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만약이라는 가정이지만, 예수가 지금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하면 누구보다 동성애자와 같이 아파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데 자신의 이름이 이용되는 것을 보며 세리의 상을 뒤엎었던 것처럼 분노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이용되는 것에 대해 정말 깊게 슬퍼하고 미안해했을 것 같다.

예수의 기본 가르침에는 모든 규율에 앞서 타인을 향한 사랑이 놓여 있다고 알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 사회적 약자가 지닌 무게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빌면서도 당신의 뜻이라면 받고 가겠다고 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예수의 이름으로 반동성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예수와 다른 존재로 그분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는 결성하면서 소책자 한 권을 펴냈다.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 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은 현재까지 과학이 밝혀 낸 것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무료로 전문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 홈페이지 갈무리)

과학은 성 소수자 편이기에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

- <한겨레21>에 쓴 내용 중 마지막 단락이 많은 사람에게 회자됐다. 글을 읽고 눈물 흘렸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쓰이기를 바랐다. 사실 내가 엄청나게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연재 마지막에 언급하면서, 조심조심 긴장하면서 쓴 글이다. "멋진 동성애자로 커 달라"는 말을 꼭 해 주고 싶었다. 성 소수자 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게이 같다"는 말이 욕이 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남성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조금만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게이 같다고 욕먹을까 두려워하는 문화가 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자연스럽게 긍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화는, 성 소수자 혐오가 동성애자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스스로의 존재를 충실하게 긍정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싸움은 우리 모두의 자존감과 닿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잘못된 것은 동성애 성적 지향 자체가 아니고, 이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누군가가 계속 해 줘야 한다. 물론 동성애자 중에도 이성애자가 그런 것처럼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건 당연한 거다. 그런 인식 때문에 자신을 옭아매지 말고 인생 짧으니까 충실하게 자신을 긍정하면서 살면 좋겠다.

동성애 반대 운동 하는 사람들이 내 사진을 캡처해 돌리는 게 살짝 걱정된다. 하지만 이건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지식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싸움만이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비과학적인 혐오를 퍼트리고 그 혐오 때문에 얻어맞고 모욕당하고 죽는 사람들이 있는 싸움이다. 진흙탕 싸움이면 진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학자로서 아름답고 깔끔하게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김승섭 교수의 꿈은 소박하다. 성 소수자들이 비과학적인 혐오에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는 학자로서 이 싸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승섭 교수는 2016년 퀴어 문화 축제 전, 동료 학자들과 함께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를 꾸렸다. 동성애가 질병인지 아닌지 마치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 그는 현재 학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에 해당하는 내용을 책으로 펴내기로 하고 몇몇 교수와 힘을 합쳤다. 각 글에는 각주를 충실하게 달았다. 단순히 누군가의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근거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 소수자에 대한 질문 12가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링크(바로 가기)를 클릭하면 누구나 무료로 다운받아 읽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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