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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길 따라 걷다 그 길이 돼라"

다석(多夕) 류영모의 삶과 신앙…이정배 교수 참석자들에 "1식 실험하라" 권유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6.07.06  10: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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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그곳에서 예배하네"라는 CCM 찬양이 있다. 찬양 가사처럼 십자가 길을 걷다 스스로 길이 된 사람이 있다.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이다. 선생은 2008년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세계 철학 대회에서 15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 기독교가 배출한 사상가로 인정받았다.

다석은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과 함께 1901년 태생 기독교인 네 명에게 영향을 미쳤다. 함석헌·이용도·김교신·김재준이다.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 평생 1일 1식을 실천하고, 거리가 얼마가 됐든 늘 걸어 다녔다.

   
▲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은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과 함께 1900년 한국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제자들에게 "십자가 길을 걷다 그 길이 돼라"고 주문했다.

7월 4일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 - 한국 공동체 교회 한마당'에서 다석 류영모 선생의 삶과 사상에 대해 재조명하는 자리가 열렸다. 2015년 감신대 교수직을 내려놓은 이정배 교수가 '축의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 - 다석 류영모의 삶과 사상'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빛이 있으라'가 아닌 '어둠 있으라'

이 교수는 우선 다석(多夕)으로 알려진 류영모 선생의 호를 설명했다. 다석이라는 말은 캄캄한 저녁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서양에서는 어둠보다 빛을 더 좋게 평가한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도 "빛이 있으라"였다. 서구 기독교는 빛을 중요시하는데 류영모 선생은 왜 '어두움'을 호로 택했을까.

"다석이라는 말에는 태양 즉 빛을 끄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빛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분별을 가져온다. 빛 때문에 우리는 예쁘고 미운 것, 좋고 나쁜 것, 크고 작은 것을 판단한다. 빛은 우리에게 인간의 의식과 같다. 태양을 끄라는 것은 의식을 끄라는 말이다. 빛 때문에 모든 존재의 근원을 볼 수 없다. 따라서 근원을 만나려면 빛과 의식을 꺼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 이정배 교수는 7월 4일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에서 '류영모의 창조적 사상운동과 영성'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다석(多夕)이라는 호의 유래와 그의 삶을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길을 가다 보면 길이 된다

류영모 선생은 기독교 사상가지만 한학에도 능통했다. 불교와 유교를 섭렵했고 일본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았다. 서양 사상가 중에는 톨스토이 영향을 받았다. 여러 사상가의 영향을 받은 다석 선생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독특한 대속 사상을 발전시켰다.

"동양에서는 자신이 대속의 주체가 되지만 서양에서는 절대자가 대속의 주체다. 류영모 선생은 100퍼센트 자속도 없고 대속도 없다고 했다. 어느 종교나 둘 다 함께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든 길이다. 그 길의 존재는 대속을 의미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다 너희도 그 길이 되라는 것이 다석의 주된 생각이었다. 길을 믿기만 하지 말고 만들어 놓은 그 길을 가다 우리도 어느 순간 그 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정배 교수는 류영모 선생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다 스스로 길이 됐다고 평했다. 불교나 유교는 뜻을 찾는 종교지만 류영모에게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것이다. 다석 선생은 평생 예수가 가신 그 길대로 걷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서 살아갔다.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을 하나로 생각하려 했다.

끊임없는 사유, 몸과 마음 돌보기, 절제로 완성된 다석의 삶

어떻게 살아야 십자가의 길을 걷다 스스로 길이 될 수 있을까. 이정배 교수는 다석 류영모가 지킨 네 가지 삶의 방식을 소개했다. 일좌식 일언인(一座食 一言仁)이다.

류영모 선생은 몸을 줄여 마음을 크게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루 세 끼 대신 한 끼만 식사했다. 일식(一食)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식을 유지했다. 그의 제자들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1일 1식. 이정배 교수는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도 실천을 권했다.

   
▲ 이정배 교수는 류영모가 평생 실천한 네 가지 '일좌식 일언인'을 소개하며 참석자들도 1식을 시도해 보라고 권유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식을 협소한 의미로 이해하지 말고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싶다. 온몸으로 아는 것이 삶이 된다는 이야기다. 다석 선생은 예수가 갔던 길을 너희도 가라고 했다. 1식을 삶에서 실험해 볼 필요가 있다. 공동체는 자본주의 사회를 거슬러 진리를 실험하는 공간이 아닌가. 간디는 'My life is my message'(내 삶이 곧 메시지다)라고 했다. 진리를 실험해 보라."

다석 류영모는 먹는 것만 절제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집을 방문하면 무릎을 꿇고 앉아 토론을 이어 갔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걸어다닐 정도로 어디든 걸어다녔다. '몸성이'해야 '마음놓이'한다는 것을 직접 걸어다님으로 보여 줬다. 이 교수는 다석의 가르침을 문자로만 배우지 말고 실천에 옮겨 우리 생각을 바꾸고 이것이 한국 기독교를 풍요롭게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근원으로 돌아가자

이정배 교수는 초기 한국 기독교 사상가들은 생각의 결이 다르다 해도 교류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했다. 조금만 교리가 달라도 이단 취급하고 분립하는 한국 교단 현주소와 대비된다.

일례로 1901년생 사상가 중 이용도 목사는 감정이 뛰어난 사람이고 김교신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장점을 흠모했다. 김교신은 일기에 "나도 이용도와 같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싶다"고 썼다. 이용도는 김교신의 <성서조선>을 가지고 다니면서 설교하는 교회에 나눠 주기도 했다. 이현필 선생은 다석 류영모 선생과 생각과 신학이 다르지만 언제든 동광원에 와서 강의할 수 있게 했다.

이정배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1901년생 기독교 사상가 네 명을 언급하며 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다석 류영모를 다시 한 번 조명하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의 좋은 전통 속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생각의 단초를 얻으면 좋겠다며 강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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