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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으며 동성애 집착하던 내가 변한 이유

[인터뷰] 탈동성애자 강순화 씨 "동성애는 예수 제대로 믿지 않은 내가 만든 죄"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6.06.29  08: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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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유튜브에 '나는 30년간 동성연애자였다'라는 20분짜리 동영상이 있다. 여성 탈동성애자 강순화 씨(44세) 이야기다. 강순화 씨는 이 영상에서 "복음으로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강 씨는 '부활 신앙 간증' 시리즈로 유명한 춘천 한마음교회(김성로 목사)에 다닌다. 한마음교회에는 외부에 공개된 탈동성애자만 4명이다. 4명 모두 여성으로 그중 한 명이 강순화 씨다.

강순화 씨는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동성애가 선천적이라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지금의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뉴스앤조이>는 6월 27일 춘천 한마음교회에서 강순화 씨를 만났다. 강 씨는 2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말을 이어 갔다. 강순화 씨는 탈동성애자도 분명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나는 늘 여자가 좋았다

강 씨는 30년 넘게 동성애에 빠졌었다고 소개했다. 본격적으로 동성과 사귀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이지만 기억이 남아 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성을 조금 다르게 바라봤다. 어린시절부터 남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늘 중성적인 스타일로 옷을 입고 동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 다른 친구들은 남자를 좋아하는데 나는 왜 여자가 좋을까. 나는 왜 다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는 친했던 여자 친구와 우연히 포옹을 했는데 그때 느낀 따뜻한 감정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강 씨는 그때 경험이 이후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본격적으로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했다.

강 씨는 학교에서 여학생들의 관심받는 것을 즐겼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늘 깔끔하게 하고 다니려고 노력했다. 동시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가수 신승훈이나 이승환을 따라했다. 고1 때 짝사랑하던 짝꿍에게 전화로 '나 네가 좋다'고 고백했다. 동성에게 직접적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 강순화 씨는 동성애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6월 22일 춘천 한마음교회에서 강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그 당시 동성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건 파격적인 일이었다. 동성애가 뭔지도 잘 모르던 시기였으니까. 전화해서 '너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내 전화를 받은 그 시간에 나에게 줄 편지를 쓰고 있었다고 했다. 다음날 그 친구도 내 전화를 받으면서 심장이 떨렸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계가 있고 마귀라는 존재가 동시에 우리에게 생각을 넣어 줬다."

모태 신앙인 강순화 씨는 동성을 좋아하면서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이상하다고는 느꼈지만 크게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성끼리 좋아한다는 감정을 확인하니까 다음 단계로 나가고 싶었다. 포옹하고, 손잡고, 키스하는 것까지 상상했다. '나도 언젠가는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사귀게 될까'라는 생각까지 미쳤다.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강순화 씨는 직장에서 첫 번째 동성 연인을 만났다. 직장 내 예쁘장한 언니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했고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강 씨에게는 꿈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교회 다니던 언니는 죄책감에 힘들어 했다. 결국 관계는 6개월 만에 끝났다.

강 씨는 여성을 사귀면서 느낀 편안함을 버릴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났다. 지금처럼 동성들만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따르는 여자들이 많았다. 만남에 만남을 거듭하면서 어느 순간 육체적 쾌락을 좇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행위가 반복되면서 죄책감은 더 커져만 갔다.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 그럼에도 계속된 동성애

20대 중반, 잠깐 남자를 사귀려고 노력도 해 봤다. 머리도 길게 기르고 옷도 여성스럽게 입었다. 처음 남성을 만났을 때는 말도 통하고 대화를 이어 가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은 스킨십을 원했다. 손이나 허리를 감싸려고 하고 어깨에 손을 올리는 행동이 싫었다. 좋아하는 감정도 안 생겨 노력을 접었다.

'나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후에는 더 본격적으로 동성과의 만남을 즐겼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레스보스'라는 여성 동성애자를 위한 카페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마음 졸이면서 이성애자를 좋아하는 것과 이미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오픈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그때 커뮤니티에서 처음 만난 연하와 5년을 사귀었다. 1년 반 정도 동거도 했다.

   
강순화 씨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올해 44세인 그는 동성애가 선천적이기 때문에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기독교인이었던 그 친구는 어느 날 로마서 1장 27절을 강순화 씨에게 보여 줬다. 그 친구는 강 씨와 헤어지기로 결심했고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다시는 동성애자로 살지 않았다. 강 씨도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동성애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끊어낼 수 없었다.

사람을 만날수록 좋다는 감정과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숨이 멎을 것 같고 온몸이 빳빳하게 굳는 것 같았다. 건강검진을 받아도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정신과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후 모든 생활이 멈췄고 강순화 씨는 1년 정도 약을 먹으면서 지냈다.

공황장애가 어느 정도 치료됐을 무렵 다시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발길은 어느새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사귀면 사귈수록 관계는 더 깊어졌다. 동성애자와 사귀면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처음에는 여성들과 대화가 잘 통한다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여느 남녀 관계와 똑같았다. 한번은 죽을 듯이 싸우다 뺨도 맞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강순화 씨는 동성을 만나면서 한 번도 만족하지 못했다. 오히려 죄책감은 커졌다. 죄책감은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강 씨는 이것 때문에 공황장애가 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지금 걸어가다 갑자기 사고를 당해 죽는다면 동성애 때문에 지옥에 갈 것 같았다. 늘 그런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불안감이 쌓이다 못해 강박증까지 생겼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불안에 시달렸고 교회에 가도 앞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막연하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있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지는 않았다.

공황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약까지 먹었지만 동성을 만나러 갈 때면 예기불안(일상적 행위를 할 때 한 번 실패했던 일이 연상되어 불안을 느끼는 상태 - 기자 주)이 올 것이라 직감했다. 이런 징후가 나타날 때 먹는 항불안제가 있었다. 그 약을 먹으면서까지 나는 동성을 만나러 갔다. 만나서 놀고 시간을 보낸 후에는 허탈감에 시달렸다. 다음날 또 약을 먹고 동성들과 만났다. 그 생활이 반복됐다. 약까지 먹으면서 동성애에 집착했기 때문에 그 생활을 '중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 강순화 씨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전과 다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마음교회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으며 그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아 동성애라는 죄의 열매를 맺은 자신의 과거를 회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강순화 씨는 치유 상담도 받으러 다녔다. 요즘 얘기하는 '동성애 전환 치료'라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그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상담으로 유명하다는 목사도 찾아가고 내적 치유 프로그램도 이수했다. 공황장애·동성애 귀신이 들리지 않았을까 의심해 귀신 쫓는 의식도 받았지만 허사였다.

'부활 신앙'으로 얻은 새 삶

여러 교회를 전전하던 강순화 씨는 동생 소개로 2013년 10월 춘천 한마음교회에 발을 들였다. 이미 강 씨 전에 탈동성애에 성공했다는 자매의 간증을 보고 교회에 가기로 결심했다. 교회에 가기 전에도 사귀는 여성이 있었지만 동성애를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한마음교회를 선택했다.

교회를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숙사 생활도 그렇고 무엇보다 동성애자인 자신을 교회에서 받아 줄까 걱정했다. 강순화 씨는 "교회에서 나 같은 사람을 들이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받아 줬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강순화 씨는 예수님을 다시 알았다. 한마음교회에서 말하는 '부활 신앙'을 체득했다. 그동안 반신반의했던 하나님의 존재도 명확하게 알게 됐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가 있다고 했다. 나한테는 그 말이 충격이었다. 사도행전 17장 31절에 기록된 대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것이다. 구약에 쓰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증거가 있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정말 하나님이구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박혔다.

증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증인도 있었다. 고린도전서 15장 5-6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게바와 오백 명의 사람에게 보이셨다는 기록이 있다. 목격자가 한 명도 아니고 오백 명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의 삶도 180도 바뀌었다. 죽음이 두려워 예수님을 부인하던 베드로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지 않았나. 더 충격을 받은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역사책에 기록돼 있고 백과사전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책은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었다."

강순화 씨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기독교가 모호하고 믿을 수 없는 종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고 주를 영접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힘으로 동성애에서 벗어나려 했기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여태껏 '동성애 해결해 달라. 사람 사이에서 범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만 기도했다. 하지만 그 죄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은 죄가 더 무서운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성애를 놓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았기에 동성애라는 무서운 죄의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까 모든 것이 선명해지면서 하나님을 영접했고 자유함이 내게 임했다.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내 옛사람을 안고 죽으시지 않았나. 이전에 동성애를 즐기던 나는 죽고 자유함을 얻은 내가 남았다. 혹여 유혹이 오더라도 같이 생활하는 공동체가 기도해 주니까 싸움에서 넉넉하게 이길 수 있다. 그 죄에서 자유하기 때문에 이 싸움이 어렵지 않다."

강순화 씨는 한마음교회에 오고 난 후에도 1개월 반 정도는 사귀던 사람과 연락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강순화 씨는 '기가 막혔다'고 그 당시 심경을 표현했다. 예수님이 진짜 사랑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더는 가짜 사랑을 선택할 수 없었다고 했다.

   
▲ 강순화 씨는 공동체의 기도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유혹이 와도 공동체와 함께라면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한국교회는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데 강순화 씨는 이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진짜 사랑이 뭘까 생각해 봤다.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더 이상 고통 속에 살지 않을 수 있다. 죄를 지으면 나처럼 공황장애, 알레르기로 고생한다. 하나님이 죄를 지으라고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마귀 생각을 받아먹으니 죄를 짓는다. 회개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나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인 후 동성애도 공황장애도 폐소공포증도 떠나갔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내가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다만 교회 공동체가 동성애자가 오픈할 수 있도록 받아 주고 교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사랑으로 동성애자를 포용하고 그들이 죄를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지 않을까."

성 소수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은 한국교회의 반동성애 운동이 '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강순화 씨는 이 부분도 사랑하는 표현 방식이 다를 뿐 혐오다 뭐다 이야기할 입장이 안 된다고 했다. 다만 빠져 나오고 싶어하는 동성애자들이 있을 텐데 하나님 사랑으로 그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순화 씨처럼 동성애를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동성애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도 있다. 강순화 씨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동성애를 즐기며 살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 보니 그때 나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들었는지 구분이 된다.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공동체가 함께 가 주는 것이 고맙고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한다."

강순화 씨는 자신의 인터뷰가 동성애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사람에게 소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성애자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동성애를 즐기면서도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다고 했다. 동성애로 고통받고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처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고 했다.

"탈동성애 성공한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것 보면서 안타까웠다. 우리의 존재도 인정해 주고 신경 써 달라. 우리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 주면 좋겠다.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와서 우리 존재를 보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행사를 여는 것도 좋겠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증거, 부활이 있다. 복음이면 다 해결할 수 있다. 동성애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복음 안에 진짜 사랑이 있으니 그 사랑을 맛보러 오셨으면 좋겠다."

   
▲ 강순화 씨는 결혼도 생각하고 있다. 관심있는 남성과 설레는 데이트도 꿈꾼다. 그는 이런 감정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며 쑥쓰러워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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