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사진 제공 김동문)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6~7개월간 생활하던 시리아 난민 신청자 28명이 모두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다. 인천지방법원은 6월 17일 19명, 23일 9명에 대해, 난민 심사에 불회부한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출입국사무소)의 결정을 취소했다.

지난 4월 말, 6개월간 송환대기실에서 삼시 세끼 치킨버거에 콜라를 먹고 있다는 난민 신청자들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이들은 반년 동안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곳에서 기본적인 의식주가 불가능한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시리아인들을 이렇게 방치할 법적 근거도 희박했다.

이들은 난민 심사에서 난민 인정을 못 받은 게 아니다. 난민 심사에 회부 자체가 되지 않았다. 현행 난민법은 출입국항에서도 난민 신청을 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여권이나 비자에 문제가 있어 입국심사대를 넘지 못해도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제도는 난민의 사정을 고려해 이들을 폭넓게 수용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시리아인들 겪은 사태는 인천공항출입국사무소가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제도의 취지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데서 기인했다.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는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인천지방법원의 판결문을 통해 자세하게 알아본다.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고 입국 거부

난민법 제6조 '출입국항에서 하는 신청'을 보면, 법무부장관은 입국 심사 때 난민 신청하는 사람에 대해 7일 안에 난민 인정 심사에 회부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7일 안에 결정하지 못하면 무조건 입국을 허가하게 돼 있다. 난민법 시행령에 따라, 출입국사무소장은 신청자를 지체 없이 면담하고 결과를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인천공항출입국사무소장이 시리아인들을 난민 인정 심사에 불회부하는 결정을 하면서 시작됐다.

시리아인들이 공익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이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시작하자, 출입국사무소는 이들을 불회부한 이유를 들었다. 쉽게 말해 출입국사무소의 논리는 이렇다. △파리 테러, 쾰른·헬싱키·취리히 집단 성범죄 사건 등으로 난민 대책 강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국가 안보 유지를 위해 국익 위해자를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난민 심사로 회부되면 무조건 입국하게 되기 때문에 입국 심사 제도가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있다.

출입국사무소는 또 난민법 시행령에 나와 있는 난민 심사에 회부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들었다. 시리아인들이 자국을 떠나 곧바로 한국에 오지 않고 제3국(터키·중국·러시아 등)을 거쳐 왔다는 사실 때문에, 시행령 제5조 1항 4호 "박해의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국가 출신이거나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라고 했다. 터키나 중국, 러시아는 시리아와는 달리 안전한 국가라는 논리다.

시리아인들은 심사 때 자국으로 돌아가면 병역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입국사무소는 유엔난민기구의 '난민 지위 인정 기준'을 들어, 단순히 병역을 피하려고 난민 신청한 사람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출입국사무소는 시리아인들의 난민 신청은 시행령 제5조 1항 7호 "그 밖에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으려는 등 난민 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라고 했다.

▲ 터키 국경 지대에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 

결론적으로 법원은 출입국사무소의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리아인들을 대리한 변호사들이 문제 삼은 건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행정절차법 위반이다. 출입국사무소는 시리아인들을 불회부 결정하고 나서 이를 당사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불회부 결정되었다는 처분서를 주지도 않았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구두로 결과를 말해 주는 게 다였다. 난민 신청자들은 자신이 왜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없는지, 어떤 법에 근거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법원도 이를 위법이라고 짚었다.

또 한 가지는 출입국사무소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는 점이다. 변호사들은, 출입국항에서는 난민법 시행령에 명시된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가 아니면 일단 입국시켜 난민 심사를 제대로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민법에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제도를 둔 이유는 난민 협약 취지에 따라 난민 신청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강제송환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출입국사무소가 마치 자신들에게 광범위한 재량이 부여된 것처럼 처분했다고 했다.

법원은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제도는 난민들의 인권 보호 향상을 위해 출입국항에서도 난민 심사 기회를 주는 것에 입법 취지가 있다"며 "난민법과 난민 협약의 취지를 고려할 때,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은 간소한 심사를 통해서도 불회부 사유가 명백하게 드러나 신청자가 난민 인정 제도를 남용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 내려져야 한다. 다소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어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난민 인정 심사에 회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 시리아인들은 전쟁과 테러를 피해 타국으로 왔다.

같은 맥락에서 시리아인들이 국가 안보나 국익을 위해할 가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행령이 정한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법원은 "난민법의 취지는 출입국 관리와는 상이한 목표 – 인권 보호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난민 규범 수립을 염두에 두고 제정되었다는 점, 구체적이고 신중한 심사 절차 없이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을 권리를 미리 박탈하는 경우는 되도록 제한하자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난민 신청자들이 제3국, '안전한 국가'를 거쳐 왔다는 출입국사무소의 주장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터키는 시리아 난민 250만 명을 수용하고 있지만 난민 대량 수용, 새로운 난민법 제정 및 운영 미숙, 난민 협약상 난민의 권리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문제를 겪고 있다. 중국은 난민 입국 및 체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나, 난민 협약상 의무 이행에 따른 제도가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다. 러시아는 '박해의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국가'인 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전혀 제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법원은 시리아인들이 징병을 거부한 것도 출입국사무소와 다르게 해석했다. 법원은 "단순히 강제징집을 거부한 것만으로는 박해의 원인이 있었다고 할 수 없으나, 징집 거부가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때에는 박해의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이에 근거해 "시리아 내전 상황에 비춰 보면 원고의 징집 거부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될 여지가 전혀 없다거나 이 때문에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시리아는 현재 정부군과 반군들, IS 사이의 내전으로 뒤엉켜 있다. 정부군은 민간인까지 가리지 않고 학살하고 있다. 난민 신청자들이 시리아로 돌아가면 정부군에 징집되고,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수감되거나 최악의 경우 반군에 동조하는 것으로 간주돼 사형당할 수 있다.

▲ 6월 20일, 난민 인권 단체들이 인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페이스북 '

판결 후에도 아직 송환대기실에

6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었다. 난민 단체들은 법원 판결 후 조속한 행정절차를 기대했으나, 시리아인들은 아직 송환대기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난민지원네트워크, 이주공동운동, 인천이주운동연대 등은 세계 난민의 날에 인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난민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행태를 규탄했다.

시리아인들은 행정절차가 끝나면 공항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난민 단체들은 이르면 27~28일 안으로 입국이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들은 각자 한국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갈 것이다. 한국에 지인이 없는 몇 명은 이주민 인권 단체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출입국사무소가 항소하지 않는다면 정식으로 난민 인정 심사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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