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총신대학교가 시끄럽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박무용 총회장)은 그동안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섰다. 그런 합동 교단 소속 신학교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동아리가 있다 하니, 많은 이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총신대 윤종훈 교목실장은 지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총신대에는 동성애 동아리가 없고 동성애자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페이스북에는 '총신대학교 성 소수자 인권 모임 깡총깡총'(깡총깡총)이라는 페이지가 존재한다. 이곳에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총신대 학생들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많은 사람이 의심하는 것처럼 깡총깡총은 유령 단체일까. <뉴스앤조이>는 퀴어 문화 축제가 끝난 후 깡총깡총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6월 22일 오후 한 카페에서 깡총깡총 회원들을 만났다. 깡총깡총 회원 중 직접 인터뷰에 응한 이들, 질문에 서면으로 답한 사람들 말을 재구성했다.

▲ 6월 22일 오후, 서울의 한 카페에서 총신대 성 소수자 인권 모임 '깡총깡총' 회원들을 만났다. 사전에 작성한 질문지에 답해 준 회원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깡총깡총, 너네 진짜 존재하는 모임이니?

안녕하세요! 우리는 '총신대학교 성 소수자 인권 모임 깡총깡총'입니다. 우리는 동성애 동아리도 아니고 동아리가 되겠다고 한 적도 없고 동성애자만 모이는 곳도 아닙니다. 성 소수자는 물론 그들이 평등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를 누리도록 돕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죠. 학교에서 우리를 '동성애 동아리'라 부르는데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지난 퀴어 문화 축제에서 김영우 총장이 "우리 총신에 동성애 동아리가 두 개나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 또한 사실과 다릅니다. 오래 전부터 있던 '레인보우인총신'이 깡총깡총의 모태입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저희 말고 총신대에 또 다른 '동성애 동아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깡총깡총이라는 이름 하나로 불립니다.

자꾸 "총신대학교 학생 맞냐"고 물어보시는데 우리도 비싼 등록금 내고 총신대 다니는 총신인 맞습니다. 하도 안 믿으셔서 얼마 전 공식 페이지에 재학 증명서까지 올렸습니다. 저희가 몸담고 있는 학과를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우리는 어느 특정 과에 몰려 있지 않습니다. 골고루 분포돼 있죠. 다행히 지난번 색출 작업 때 우리 깡총깡총은 레이더망을 피해 갈 수 있었어요.

▲ 회원들 사진을 찍기는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사소한 단서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는 시기라 손 전체가 드러나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도대체 총신대에 왜 들어왔니?

A / 총신대학교는 교단 소속이긴 하지만 정시 '가'군에 들어 있는 사립대학입니다. 신학과에 가는 학생이 아닌 이상 누가 입학할 때 교단 총회 정관을 읽고 학칙을 다운받아 정독하고 들어오겠어요. 그런 학생은 무척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해요. 아직까지 한 명도 못 봤습니다.

B / 저는 학교에 원서 낼 때까지도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주의자)'였으니 반대하는 교단 학교인 거는 알고 들어왔죠. 입학하고 난 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 소수자를 다르게 바라보게 됐어요. 그동안 모르고 지내던 성 소수자들도 만나게 됐죠. 이들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어떻게 이 사람들이 존재만으로 죄가 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또 "너 동성애자 아냐?" 물어보시겠지만, 죄송합니다. 저 이성애자입니다.

C / 부모님이 합동 출신인 것도 있지만 솔직히 점수 때문에 총신대 들어왔어요. 내 주변에 저 같이 성적 맞춰서 학교 택한 사람이 훨씬 많은데. 제 성적으로 '4년제 인 서울' 할 수 있는 곳이 총신밖에 없었거든요. 저는 성 소수자라 기독교 학교에 가기 꺼렸는데 "그래도 기독교인들이니까 사람들은 좋겠지" 라는 생각으로 들어왔어요. 웬걸, 전혀 아니었지만.

D / 저도 '호모포비아'였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 사람들을 싫어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무렵 아는 사람이 "이것 봐. 우리 학교에도 이런 애들이 있대"라며 어떤 글을 보여 줘서 깡총깡총의 존재를 알았어요. 내색은 못했지만 기뻤죠. 바로 깡총깡총 페이스북 페이지로 메시지를 보냈어요. 아마 제가 제일 적극적이었을 거예요.

E /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어머니는 저를 임신하셨을 때부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으로 쓰임받게 해 달라고 서원하셨고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기독교 대학 위주로 지원하게 됐네요.

F / 저는 총신대에 대한 정보 없이 들어왔어요. 대학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교리 가지고 시비걸 줄은 꿈에도 몰랐죠. 저도 나름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는데, 동성애 얘기는 하지도 않았어요. 총신대에서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떠날 줄 알았는데…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겠죠.

▲ 총신대학교 학생증과 복사 카드 두 개를 겹쳤다. 복사 카드는 재학생이 아니면 쓸 일도 가지고 다닐 일도 없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학교는 깡총이들을 잡고 싶은데!

다행히 아직 깡총깡총 회원(깡총이) 중에는 직접적으로 교목실 레이더망에 걸린 사람이 없어요. 감사한 일입니다. 엉뚱한 사람들을 불러서 조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커요. 그래도 어떡해요. 저렇게 우리를 잡겠다고 학생들 시켜서 SNS 감시하고, 샅샅이 뒤지는데…. 가만있어야지 다른 방법이 있나요.

A / 교목실에서 조직적으로 정보를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성 소수자를 옹호하는 글 올린 사람, 그 글에 좋아요 누른 사람, 댓글 단 사람까지 일일이 찾고 있다고요. 2016년 대한민국에서 내 마음대로 페이스북도 못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퀴어 문화 축제에도 깡총이들을 잡으려는 사명감으로 잠입한 분들이 여럿 있었다고 하더군요.

B / 색출 손길이 직접적으로 저한테까지 미치지는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보고 저도 마음이 불안하긴 했죠. 학교에서 이 문제를 좀 더 차분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 보려고 하지 않아요. 무조건, 해충 때려잡는 것처럼 엄포를 놓고 협박하는 모습이 이 시대 '보수' 기독교인의 모습이려니 생각하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C / 교목실장 윤종훈 교수는 지난 3월 반동성애 콘서트에서 "동성애자를 사랑한다.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학생들도 묻지도 않은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다 돌아갔죠. 퀴어 퍼레이드 당일 저희 대신 깡총깡총 깃발을 든 분에게 묻지도 않고 얼굴을 찍어 초상권을 침해하고 이 자료를 기반으로 경찰에 고발 조치한다는 말이 떠돕니다. 이것이 사랑인가요. 저는 스토킹 범죄자의 회고록을 읽는 게 아닙니다.

D / "총신대학교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학교 이름 도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교 이름 빼고 그냥 너희끼리 숨어서 모이라고도 하죠. 우리나라 대학교 성 소수자 모임 중에 학교 이름 안 들어간 곳이 있나요. 우리가 총신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인데 왜 학교 이름을 빼고 활동하라는 건가요. 이해할 수 없어요.

▲ 깡총깡총 회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2016년 대한민국에서 SNS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현실에 분개했다. SNS에 성 소수자를 옹호하는 글을 올리거나 그 글에 '좋아요'만 눌러도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일상이 된 혐오, 당신 옆 성 소수자가 듣고 있습니다

깡총이들은 늘 혐오 발언에 노출돼 있어요. 솔직히 들으면서 반박하고 싶은 경우도 많은데 그러면 바로 "오케이, 너 당첨" 이렇게 될까 나서지도 못하고 답답하네요.

A / 학교는 혐오 천국이에요. 혐오 발언 안 하는 사람이 드물죠. 얼마 전에는 "너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니 사탄"이라고 하던데 저희가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지 잡으면 징계하고 고소하겠다는데 우리가 무슨 순교자도 아니고 왜 나서야 하나요.

B / 지난 3월 반동성애 콘서트 했을 때 성 소수자와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학교에 찾아왔어요. 그때 학생들 하는 말이 정말 가관이었어요. "징그럽다", "토 나온다" 등 외모 갖고 놀리는 거는 기본이고 그분들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 단톡방에 마구 뿌렸죠.

C / 이게 진짜 하나님 믿는 학교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성 소수자들이 온다고 했을 때 어떤 학생은 학교를 지키자며 죽창 들고 교문에 서 있자고 했죠. 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말을 ‘물리치료 받아야 한다’고 돌려 말한 애들도 있었어요. 총신대학교 대나무숲 가 보세요. 온갖 종류의 혐오 발언이 널려 있어요. 그것도 아주 자랑스럽게 써 놓은.

D / "동성애자 다 죽이고 싶다"는 말도 들었어요. 이런 혐오 발언을 들으면서도 그 말에 동조해야 하는 이 현실이 목메이네요.

E / 하도 많이 들으니까 이제는 '역시…', '뭘 바라겠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 말 들을 때면 그냥 더 숨어 버리고 싶어요.

▲ 2016 퀴어 문화 축제에 '깡총깡총' 깃발이 등장했다. 총신대와 학생들은 학교 이름이 도용됐다며 누가 이 깃발을 드는지 꼭 밝혀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깃발을 든 사람 사진을 찍어 퍼 나르기도 했다. 깃발은 사전에 깡총깡총의 부탁을 받은 사람이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우리 그냥 학교 다니게 해 주세요

깡총이들은 아직 학교에 다녀야 해요. 학교에서 저렇게 강압적으로 나올수록 더 악착같이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학교 다니면서 학교가 우리에게 한 인권침해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요.

이왕 들어온 학교, 졸업은 해야죠. 저희도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생인데 그냥 학교 다니게 해 주세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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