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조정민 목사를 만났다. 조 목사는 2013년 서울 청담동에 베이직교회를 개척했다. (사진 제공 베이직교회)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파란만장(波瀾萬丈). 인생에 곡절과 시련이 많고 변화가 심하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은 별로 없다. 누가 봐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전직 기자 출신 목사를 만났다. 목숨을 잃을 뻔한 고비를 수차례 넘겼고, 나이 쉰을 넘겨 잘나가던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2013년 서울 청담동에 베이직교회를 개척한 조정민 목사 이야기다.

사실 조정민 목사는 일반인에게 더 친근하다. 1978년 MBC에 입사한 그는 25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뉴스 앵커로 활약했다. 입사 동기 중 한 명이 정동영 의원(국민의당)이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조 목사는 '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했다. 언론을 발판 삼아 정계에 진출하고자 했다. 권력을 쥐고 세상을 변혁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iMBC 사장 자리에까지 오른 조 목사는 가족의 반대에도 '사직서'를 제출한다. 정치인의 꿈을 접고, 목사가 되기 위해 미국에 있는 한 신학교에 입학했다.

원래 조 목사는 불자였다. 고등학교 시절 '출가'를 결심한 적도 있다. 그런 그가 교회가 다니게 된 것은 아내 때문이다. 어느 날 새벽, 교회에 나가는 아내의 뒤를 밟았다가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교인들이 통성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이단인 줄 알았다. 며칠간 잠입 취재까지 했다. 아내가 다니던 교회는 고 하용조 목사가 세운 온누리교회였다. 조 목사는 잠입 취재 도중 예수님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예수님을 만나고, 삶은 180도 바뀌었다. 쾌락을 안겨 주던 술·도박·골프는 차원이 낮은 기쁨이 됐고,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됐다.

조 목사는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 특집' 멘토로 출연했을 때 "기자 시절 남을 끌어내리는 일을 했고, 지금은 사람 끌어올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로서 비리 저지른 사람을 사회에 고발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하면 사회정의가 실현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예수'라고 했다. 조 목사는 예수를 만나면 자신처럼 사람의 본질이 변하게 된다고 했다.

얼마 전 KBS '아침마당'에도 출연했다. 조 목사는 신앙과 교회 이야기를 꺼냈다. 교회 열심히 나간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며 크리스천은 본질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종교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신앙인은 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인터뷰는 신앙·교회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초점을 맞췄다. 언론인 출신으로서 지금의 언론 풍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뉴스앤조이>를 포함 기독교계 언론에 대한 평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질문했다. 조 목사와의 인터뷰는 6월 14일 서울 청담동 베이직교회에서 진행했다.

아래는 조 목사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 이야기는 교회와 신앙에만 머물지 않았다. 제 기능을 발휘 못 하는 언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다. 전란 중에 태어났고, 늦은 나이에 신앙을 갖게 됐고, 목사가 됐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를 진정으로 만난 사람들은 자유인의 길을 걷는다"고 말했는데, '자유인의 길'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정치학을 전공했다. 권력이 사회문제를 해결한다고 믿었다. 잠재의식에는 혁명에 대한 갈망과 체제를 단숨에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있었다. 반면 예수님은 권력의 길을 택하지 않고, 사랑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십자가를 졌다. 어떻게 십자가라는 사랑의 클라이맥스를 보여 줬을까 궁금했다.

그분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있었다. 만일 하나님에게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면 무엇인들 부족할까 싶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 됐고, 권력에 굶주린 게 아닌 사랑이 흘러넘치는 삶을 살았다. 권력보다 사랑이 강하다는 걸 보여 주신 유일한 분이다. 권력이라는 것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2~3가지 문제가 파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해결 안 될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 능력을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됐다. 그분은 진짜 사랑이다. 사랑이 참 영성이라는 걸 보여 주신 것이다. 그 당시 유대교에 있던 종교 전문가들은 사랑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율법밖에 몰랐다. 종교라는 거대 권력을 장악했지만, 실제로는 국민들에게 짐을 지우고 억압했다. 예수님은 종교가 주는 부담에서 먼저 해방시켰다.

만일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게 우선 순위였다면 로마와 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립시켰을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강점기 때 일본 순사와 싸우지 않고 종교 지도자와 싸운 셈이다.

예수님이 메시아가 된 까닭은, 정치적 자유, 어떤 상황으로부터의 자유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으로 달려가는 자유를 우리에게 보여 줬다. 목적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자유의 본질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 마음껏 달려가는 자유, 그게 자유의 완성이라는 것을 보여 줬다. 예수님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자유를 하나님나라로 보여 주셨다. 그분을 만나면 종교적인 게 아니고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교회가 안 보여 주면, 또 다른 종교를 만들게 되고 타 종교와 갈등만 빚는 것이다. 예수님은 종교를 만들기 위해 온 게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종교로 경험할 수 없는 분이다.

- 교회는 세상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들에 침묵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주기철 목사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불합리한 일들 중에 한 가지에 초점을 맞췄다. 신사참배 반대에 목숨을 걸었다. 일제 치하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항일 단체를 만들거나, <독립신문>을 만들거나 하지 않았다. 신사참배 반대에 올인하셨다. 크리스천들이 맞서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 주셨다고 본다.

침묵하지 않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든 문제를 다 할 수 없다. 다만, 자기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슈에 대해 답하고,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소진하는 게 크리스천이다. 이런 사람에게 다짜고짜 "너는 왜 이 문제에 침묵하냐"고 해선 안 된다. 각자 처한 삶 속에서 하나님께 반응하고 답하고 있다. 그 사람이 처한 존재 양식이 있고, 삶의 상황이 있다. 쉽게 정죄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도록 돕는 역할에 올인해야 한다. 교회 본질은 커지는 게 아니다. 흩어져서 본인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성전과 제사, 무덤에서 불러낸 까닭이다.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케 하셨다. 기존의 질서나 가치가 생명을 훼손할 때, 우선적으로 생명의 가치를 추구하도록 부른 것이다. 생명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이란, 자기 생명을 버려서 타인이 새 생명을 잉태하게 만드는 삶이다. 이런 크리스천이 있다면 사회가 그렇게 비난하거나 조롱할 이유는 없다.

-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교회와 크리스천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생명을 주는 게 아니라 남의 생명을 갉아먹으니까…성범죄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니까. '이기적 크리스천'이란 말은 없다. 이 말 자체가 틀렸다. 남의 생명을 갉아먹는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니다. 개교회 중심적인 교회도 말이 안 된다. 교회란 본질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추구하는 공동체인데 어떻게 개인주의와 다르지 않은 개교회주의를 추구할 수 있나.

- 복음을 전파하는 방식이 올드한 측면이 있다.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궁금하다.

하나님이 나를 늦게 부르신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인문학, 정치학, 미디어를 경험했고, 성경을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삶의 현장을 두루 섭렵했다. 기존 목회자나 교회가 왜 세상 속의 코드를 잘못 읽고 있을까, 예수님께 인도하는 게 왜 저렇게 서투를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

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한다. 지난 7년간 새벽 5시마다 트위터에 문구를 올렸다. 세상을 향한 복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거기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란 말은 쓰지 않았지만, 목마름이 해갈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신기하게도 트위터를 통해 접속한 타 종교인이 페이스북이나 책을 보고 매주 찾아온다. 매주 2~3명의 불신자가 생전 처음으로 어느 누구의 인도 없이 스스로 교회를 찾아온다. 이 시대에도 복음적 메시지는 충분히 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언론으로 세상 바뀌지 않아"

▲ 1978년 MBC에 입사했다. 기자와 앵커를 거쳐 iMBC 사장을 역임했다. (MBC 뉴스 영상 갈무리)

- MBC에서 25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언론의 역할과 사명이 중요한 시대이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불신도 크다. 지금과 같은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해결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서구 언론과 한국 언론 풍토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서구 언론관의 백그라운드는 사회 기본 체제, 이미 존재하는 기본적인 가치관을 유지·확대·발전시키는 것과 맞닿아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언론관은 반체제적·반정부적이고, 비판적인 환경 속에서 언론 생태계가 형성됐다. 일제강점기 시절 언론이 탄생하면서 당시 정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가 유신 시대와 군사정권을 거치며 이념적으로 당연히 정부와 대척점에 서게 됐다.

언론이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하는지 서로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언론은 기존 가치에 저항하거나 문제점을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가 지향하는 이념적 가치를 유지·확장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기자가 어떤 이념에 서 있는가에 따라 언론의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두 가지 기능을 다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을 정확히 분별해 내는 게 언론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기독 언론이든 일반 언론이든 다를 바 없다.

언론은 이중적인 역할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가치를 지키거나, 가치관을 문제 삼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을 거쳤고, 성장에 따른 병폐가 단시간에 드러났다. 어떤 걸 지키고 바꿀 것인지 합의하에 세워진 나라지만, 성장 일변도로 치달으며 가치에 대한 토론이나 합의 과정이 결여됐다. 이렇다 보니 언론은 과부하가 걸렸고, 언론인들 스스로 내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결국 '기자'가 중요한 것 같은데, 언론사가 지향하는 가치나 이념의 영향도 무시 못 할 것 같다.

언론 내부에서 기자들 간의 위계질서에 따라서 그런 힘의 관계가 결정된다. 힘의 축이 위에 있을 경우 후배 기자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굉장히 크다. 당연히 언론 내부에도 '권언유착'이 있고, 언론인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야망에 따라서 직업 자체를 성공의 발판이나 수단으로 삼기도 해서 내부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기자도 중요하지만, 언론사 고유의 '사시'와 편집 방침이 있다. 만일 이것들과 사회 여론의 방향이 배치될 경우 언제 어디서든지 폭발할 수밖에 없다.

언론사에도 노조가 있고, 노조를 통해서 밸런스를 잡고자 했기에 복잡한 이면들이 생긴 것이다. '과연 언론이 노조 운동을 통해서 기자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역으로 이념적 성향이나 편차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닐까' 등 하나로 규정지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이 생겨났다. 한국 언론은 이런 와중에 디지털 환경에 빠졌고, 또 한차례 대변화와 혼조 속에 휩쓸리고 있는 상황이다.

- 과거와 달리 지금의 MBC는 저평가를 받고 있다. 유능한 인재들을 내쫓거나, 경영진이 독단적이라는 이유도 있다.

사실 MBC는 독특한 회사다. 노조가 주인의식이 강한 회사고, 노조 출신이 경영에 참여하고, 책임지는 등 다른 언론사와 환경이 다르다. 내가 회사에 있을 때 노조가 생겼고, 사직할 즈음에는 노조가 더 큰 힘을 가지기 시작했다. 노조원 출신 사장도 배출했다. 공정 보도를 위한 노조 노력 덕분에 MBC가 공정성을 확보하게 됐지만, 일면에는 그 자체가 정치적 편향성으로 비치거나, 국민이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실제로 MBC는 방송사 중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한 곳이어서, 정당에 맞먹는 영향력을 가진 셈이다.

-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마주하며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1980년 '사북 사태' 때 사북역에 감금된 적 있는데 여차하면 죽을 뻔 했다. (사북 사태는 1980년 4월 24일 강원도 사북 탄광에서 발생한 시위를 말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농성에 돌입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1명이 숨졌다. -기자 주) 5·18 광주 항쟁 현장을 취재했는데, 경상도 억양 때문에 며칠간 말을 하지 못했다. 1983년 대한항공 비행기가 러시아의 오인 사격으로 피격된 적 있다. 그런데 사고를 수습하러 가던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오보가 났던 해프닝도 기억에 남는다.

- 인터넷상에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둥 사실을 왜곡하는 글들도 있다. 직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 어떤가.

불순 세력이 개입했다는 루머와 첩보는 있었다. 당시 현장에서 들은 것은 아니다. 항쟁 이후 일본 내각조사실을 통해 들어온 첩보가 있었다.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초점은 광주 시민들의 피해 자체에 맞춰 있었다. 현장에서 광주 시민들에게 굉장히 감동한 게 많다. 전쟁에 준하는 상황인데도 식당들은 가격을 올리거나 반찬을 줄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다. 도청에 즐비한 시체 앞에서 같이 오열하던 동료 기자들도 생각난다.

성숙한 광주 시민의 모습, 진압 과정의 처참한 모습이 오버랩된다. 민족 전체의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게 우리 역사의 정치적 의식을 한 단계 고양시키는 데 굉장히 큰 분기점이 된 것은 사실이다.

- 군사정권 시절, 비판하는 보도를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도 언론은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한국 언론 자유 지수는 80위다. MBC를 포함 주요 언론은 정부 비판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당연히 군사정권 시절 자유롭지 않았다. 1979년 12.12 사태 이후 계엄이 선포되고, 비상계엄 시절 언론 생활을 했다. 그때는 그야말로 자유롭게 보도한다는 게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적어도 그 당시 기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언론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다 해직되거나나, 어느 정도 순응하면서 견뎌 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표를 내고 가든지,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했다.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며 사실 보도를 한다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분명하다. 사실 보도라고 해도 '의도된' 사실을 사실로 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가치 판단이 전제되지 않은 것은 언론적 사명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열심히 했다고 해도 과연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나 되돌아보게 되고, 자성하게 되는 시간을 개인적으로 가졌다. 치열하게 기자 생활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치 판단이 '유보'된 치열함이라는 게 과연 무엇을 위한 치열함이었는지 돌아보며 깨닫는다.

대가를 치르고 여기까지 왔는데 언론 자유 지수가 낮다는 것은 내외부에 책임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자본이나 권력은 언론을 지배하고자 하는 속성을 버리지 않았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것은 언론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언론인들은 그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지켰던 적도 있다. 그런 것들을 지켜 내는 힘이나,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연대나 유대감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언론 중진국이나,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다. 사회는 보다 전문화되는데, 언론이 사회를 견인해 나갈 만큼 전문성과 순수성이 결여돼 있다. 언론인의 자기 계발이 미흡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 주일예배 시간 설교하는 조정민 목사의 모습. (사진 제공 베이직교회)

- 이념 논쟁도 문제인 것 같다. SNS상에서는 적 아니면 동지로 나뉜 지 오래다.

개인적인 이념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보수나 진보가 나쁜 게 아니다. 보수와 진보는, 이상과 현실처럼 우리에게 둘 다 필요한 것이다. 정직한 보수, 순수한 진보라면 두 개가 어우러지면서 사회는 뱡향성을 갖게 될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는 성숙한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보수 언론도, 진보 언론도 필요하다. 적대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없다. 서로 입장을 존중하면서, 관점에 대한 논증 절차를 밟아 가면, 그 자체가 국민 여론화를 하게 된다. 권력과 시대적 결정을 반영해 나가기 위해 우리 모두 성숙할 필요가 있다. 상대를 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권력이 언론을 적대시해도 안 되고, 언론도 정부를 적대시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 개인적 이념을 교회 안에서 드러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교회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교회 주인은 끝까지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불러낸 사람들이 교회다. 어디서 불러냈는가? 기존의 틀에서 불러냈다. 사도 바울은 '뉴크리에이션', 즉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불렀다. 기존의 틀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다. 기존의 틀은 보수와 진보를 말한다.

진정한 포용성을 가진 게 교회다. 교회 본질은 포용성에 있다. 타협을 통한 포용이 아니라, 절대적 기준 앞에서 설 때 상대적인 포용성을 절감하게 된다. 차원이 다른 포용성이다. 휴머니즘과 다르다. 교회만이 세상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대를 초월해서 희망이 되어야 한다. 좌니 우니 하는 싸움에 끼어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다. 인종적인 편견도 없으셨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과 로마 백부장의 하인도 고쳐 주셨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도 주님 안에서는 차별이 없다. 예수님은 공생애라는 틀 안으로 죄인 모두를 초청하셨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이 가진 본질을 자꾸 훼손하고 잃어버리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 특집' 멘토로 출연했을 때 "기자 시절 남을 끌어내리는 일을 했다"고 고백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나는 비리 대상자를 집중 취재해서,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게 사회정의라고 생각했다. 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뉴스로 부각시키고, 매장당하기를 원하거나, 법적 제재를 받길 원했다. 그래서 기꺼이 고발도 했다. 한계에 부닥친 것은 그 사람이 (비리를) 잠시 멈췄을 뿐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잠깐 숨을 죽이고 비바람을 피했다가 동일한 일을 하는 것을 봤다. 기자들이 비판하고 비리를 폭로한다고 해서 결코 세상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다는 결론을 얻었다.

문제는 언론도 하나의 권력이다. 언론이라는 힘을 가지고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대증적' 변화, 권력으로 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본질적' 변화로, 힘 자체를 품어 안아 무력화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본질적 변화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어떤 문제나 이슈들에 대한 솔루션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예수님은 대증적 솔루션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솔루션, '메가 솔루션'을 제시했다.

십자가가 인간의 문제 하나하나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문제의 본질을 뿌리 채 해결하는 패러다임이며,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은 권력을 통한 투쟁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예루살렘 들어가서 뒤집어엎고 정권을 잡을 수도 있었다. 로마를 상대로 반식민지 투쟁을 벌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왜 동족들 중에서 유독 전문종교인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을까. 왜 굳건한 종교 시스템을 질책했을까. 이런 것들을 주목하게 됐다.

- '대증적'이란 게 어떤 의미인가.

병 증세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피부병이 나면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가. 피부병이 일어난 것은 내 안의 면역 체계가 무너져 있는 것이다. 겉으로 나타난 부패나 타락은 우리 안에 있는 죄에 대한 면역력이 상실된 것이다. 그런 것들이 부패하고 타락하게 하는 근본 뿌리가 문제다. 사회에 나타나는 문제들의 뿌리에 들어가면 영적 타락이 있다. 성경은 이를 우상숭배, 음란이라고 표현한다. 사기와 간음, 폭력은 현상적인 증세일 뿐이다. 죄의 뿌리는 하나님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주의나 개인주의 성향 자체가 죄이자 죄의 온상이다.

- 전직 기자로서 <뉴스앤조이>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질책도 좋으니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

사실 평가할 만큼 열심히 보지 못했다. 나는 평가하기에 부적절한 사람이다. CGN TV 대표이사를 5년간 해 보며 느낀 게 있다. 결론은, 세상 언론은 비판적 사명을 감당하는데 비교적 충실하지만, 기독 언론은 대안적 언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만으로 불충분하다. 비판은 양날과 같다. 한쪽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상처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예수님도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고, 자기 눈 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독 언론은 비판적 사명을 주 임무로 삼을 게 아니라, 비판이 난무하는 세대 속에서 어떻게 성경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사실 <뉴스앤조이>가 갖고 있는 비판적 기능을 일부러 외면했던 때도 있었다. 보면 마음이 움직일까 봐. (웃음) 분노할 수밖에 없으니까. 기사를 보면 진짜 나쁜 사람도 많고, 어떻게 교회나 목회자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터닝 포인트가 안 생기기에 그런 의미에서 조심했다.

<뉴스앤조이>가 언론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안다. 경종의 기능도 잘 알고 있다. 나름 대안 기사도 발굴하고 있으니, 균형을 잡아 간다고 본다. 이런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비판적 기능과 대안적 기능이 제대로 균형을 이루었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비판이 만연해 있다. 이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언론이 그런 점에서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 미디어나 SNS가 이렇게 흘러가게 둬서는 안 된다. 큰 흐름 자체는 기존 언론과 기독 언론이 바꾸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기독 언론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 비판도 비판이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비판하는 것만큼 어렵거나, 그보다 더 어렵다. 기독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뭐랄까 성경적이어야 하고, 일반 교인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읽고 묵상해야 한다. 악한 것을 묵상하는 세상이다. 미디어는 악한 메시지를 쏟아진다. 이 사회가 급속히 악으로 치닫는다. 언론 보도는 악을 막는 방파제가 아니라 오히려 악을 답습하도록 교육시키고, 확대재생산해 낸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교도소 가지 않아도, 넘치게 범죄를 학습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 최종 목표 내지 비전이 있다면.

베이직 처치, 백투더베이직. 즉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요한복음 13장 말씀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 그게 교회 본질인데, 교회는 그거 빼놓고 다 한다. 진정한 사랑과 삶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가정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사역하기 위해 가정을 만들지 않았다. 가정은 사랑해서 생긴 것이다.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을 만들면 된다. 거기는 필요를 요구하기 전에 채워 주는 곳이다. 진정한 교회가 되는 게 비전이다. 그렇게 되면 절대로 안주하지 않는다. 초대교회가 흩어졌듯이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 열정을 가지고 반드시 흩어지게 돼 있다. 우리가 예수님께 붙들리기만 하면 교회 본질을 회복하리라 믿는다. 목회자들의 영원한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 만나서 나 자신이 변화된 만큼 누군가의 모티브가 되거나, 도전이 될 것이다.

소천하신 하용조 목사님은 언젠가 "목사는 언제든지 설교할 준비가 돼 있고, 떠날 준비가 돼 있고, 죽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목사를 하겠다면, 최소한 이런 마음가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조 목사는 틈틈이 책도 쓰고 있다. <왜 예수인가?>, <열두 모금 생수>, <사람이 선물이다>, <인생은 선물이다> 등을 지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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