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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를 허하라

인천지법 "비폭력주의자에게 입대 강제는 '인격적 존재 가치'를 허무는 것"

구권효 기자   기사승인 2016.06.15  16: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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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전쟁으로 막을 수 없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성역이다. 병역을 거부하면 감옥에 간다. 편법을 쓰려는 게 아니라 자기 양심에 비춰 군대 가기를 거부해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88조 1항에 나오는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해에 수백 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다. (물론 고위 공직자나 그 자녀들 중에는 군대도 안 가고 감옥도 안 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을 거부하는 남성 중 90% 이상이 '여호와의증인'이다. 여호와의증인은 교리상 입대를 거부한다. 이들은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타인을 공격하거나 총을 들지 않는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신실한 여호와의증인 성인 남성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갔다 오는 일은 의례가 되어 버렸다.

   
▲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아직도 낯설다. (사진 제공 전쟁없는세상)

6월 9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해 병역법 위반으로 재판받은 여호와의증인 신도 두 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류준구 판사)은 박 아무개 씨(21)와 신 아무개 씨(21)의 '양심의자유'를 인정했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여호와의증인에서 성서를 배우며 자랐고, 모임과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했으며, 성인이 된 후로는 월 70시간 방문 전도를 해 왔다. 군대 안 가려고 여호와의증인인 '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입대를 강제하는 것은 이들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허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종교, 특히 그중 기독교의 본질이 그가 믿는 신의 명령에 따라 죄를 짓지 않고 생활해 사후 신이 약속한 내세를 보장받는 것이라고 할 때, 위 종파의 독실한 신자에게 신에게 죄를 짓는 행위라고 믿는 군대 입영을 무조건 강제하는 것은 그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허무는 것으로, 종교의자유뿐 아니라 양심의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또한 폭력은 '악'이므로 자신·가족·친지 등의 생명과 재산이 다른 개인·집단에 의해 심각하게 침해당할 급박한 위험 상황에서도 절대 무기를 드는 등의 공격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극단적 비폭력주의자에게 군대 입영을 무조건 강제하는 것 역시 그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허물어 버리는 것으로서 양심의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증인 종파의 독실한 신자로서 극단적 비폭력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사람에게 군대 입영을 형벌로 무조건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병역법 제88조 1항에서 정하는 입영 등을 하지 않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류준구 판사의 놀라운 판단이 이어진다.

"국방의 의무는 군대에 입대하는 사람들만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각자의 가정·사회 내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각하며, 소극적으로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는 방법으로 모두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군인들이 그 복무 기간 동안 국방의 의무를 매우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여성·장애인·노인·청소년, 군 면제자, 군 전역자 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사는 동안 항상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의무가 있으며, 실제로 이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기가 막힌 내용은 각주에 숨어 있었다. 평화운동도 국방의 의무로 볼 수 있다는 전향적인 판단이다.

"흔히 논의되는 대체 복무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 예를 들어 위와 같은 여호와의증인 신자들이 비폭력·평화주의에 입각한 범국가적 반전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세계 평화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면, 이 역시 국가의 안전보장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류준구 판사는 국방의 의무를 다한, 혹은 하고 있는 남성들도 외면하지 않았다.

"다만, 대한민국 대다수 젊은 남성이 국방을 위해 2년여 동안 학업과 생업을 중단하고 통제된 환경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며 군 생활하고 있는 사정을 결코 논외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국가에서 병역 이행에 대한 혜택을 주는 방법을 취할 것인지, 아니면 병역 이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에 버금가는 또는 그 이상의 대체 복무를 하게 할 것인지 (중략) 등은 입법자가 재량으로 정하고 해결해야 할 사항이지, 병역법이 정한 '정당한 사유'를 양심의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축소해석함으로써 해결할 사항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돋아나는 판결이지만 한국에서 군대는 성역이다. 이번 인천지법의 판결이 기사화하자 대번에 이를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누구나 양심에 따라 군대 안 가도 되겠네? 그럼 도대체 이 나라는 누가 지키나? 양심 없는 사람이 지키는 건가? 아주 특별히 애국심이 있어야만 군대 가겠다고 하고 그런 사람은 어리석다는 소리 하는 세상이 되겠구나."

"분단국가도 아닌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에서 국방의무 2~3년 시행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남북 분단국이면서 지독한 북한의 남침 야욕에 전 국민이 국민의 의무 국방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처럼 여성도 국방의무를 이행하지 못할지언정 이상한 종교가 나라 말아먹을 논리를 펴는 데 법관이라는 판사는 동조를 해?"

   
▲ 양심적 병역거부는 올해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하지만 이들이 지금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군대나 감옥을 가지 않게 되는 건 아니다. 법원 판결로 국방의 의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활동가는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다.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해도 입영 통지서는 또 나온다. 그러면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다"라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5번 무죄판결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혔으며, 헌법재판소도 2004년·2011년 대법 판결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올해 세 번째 헌재 심판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판결을 받은 두 사람을 비롯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병역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즉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조건 입영을 강제하지 말고 현실 가능한 대체 복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지난 5월 15일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72%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보면서도, 대체 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에는 70%가 찬성을 표했다.

찬성 이유는 '감옥보다는 낫다'(26%), '국민 의무를 다해야 한다'(16%), '다른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14%), '개인의 선택이나 인권 문제'(12%), '감옥은 심하다·가혹하다'(8%) 순이었다.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이용석 활동가는 "여호와의증인을 제외해도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것만 한 해 네다섯 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한다. 이유는 다양해서 어느 하나로 특정하기 어렵다. 군대가 민간인을 짓밟는 국가 폭력을 경험한 사람도 있고, 농사꾼이 왜 총을 들어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다.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 군대의 억압적인 문화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소수지만 기독교 평화주의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도 있다. <뉴스앤조이>는 한국 아나뱁티스트 최초로 병역을 거부한 이상민 씨를 인터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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