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무교회주의자라고 죄를 모르겠는가. 교단·교회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개신교계에서 '무교회주의'는 접하기조차 쉽지 않다. 단어만 보고 "교회를 없애자는 애기냐"고 시비 걸지 않으면 다행이다. 주일 성수가 확고한 진리처럼 되어 버린 한국교회 토양에서 무교회주의는 왠지 교회를 부정하는 방탕한 이미지로 비쳐진다.

▲<구안록> / 우치무라 간조 지음 / 양현혜 옮김 / 포이에마 펴냄 / 229쪽 / 1만 2,000원

그러나 여기 누구보다도 '죄'에 대해 고뇌했던 무교회주의자가 있다. 일본 기독교계의 지도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다. 그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구안록(求安錄)>이 올해 4월 포이에마에서 재출판됐다. 이 책은 우치무라 간조가 32세 때, 1893년 8월 일본에서 첫 출간됐다.

<구안록>에서 우치무라 간조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어떤 방법으로도 죄를 해결할 수 없었다.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해결된다"는 명제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처절함을 느끼지 않으면 이 명제는 결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올 수 없다.

죄를 고민하는 우치무라 간조의 모습은 흡사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100년도 지난, 그것도 일본에서 쓰인 책이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의 현실에도 맞아 들어간다는 점이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죄를 범한다. 마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과 같다. 이런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매정한 교역자들은 연약한 신도의 죄를 질책함으로써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4쪽)

"아, 비기독교적인 세상에 살면서 기독교적인 삶을 살려는 자의 고통과 눈물은 성서를 옆구리에 끼고 기도회나 강연회를 인도하거나 설교하며 그 일을 영원 전부터 정해진 천직이라 믿는, 저 부러운 인사들은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25쪽)

"세상에 자기 죄를 깨달은 기독교 신자처럼 곤궁한 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죄에 대해 무감한 기독교 신자처럼 강한 자도 없을 것이다. 전자는 전전긍긍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후자는 대담무쌍하여 무엇이든 다 한다. 죄에서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는 다 교회로 오라! 정의와 거룩을 방패 삼아 죄를 범하려는 자도 다 교회로 오라! 이런 사회와 이런 교회에서는 아무리 죄를 범하지 않으려 해도 범할 수밖에 없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전쟁이 죄인 줄 알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나는 죄를 범하는 죄인이자 동시에 죄를 범하도록 강요당하는 자다. 나는 하나님과 다투는 자이자 동시에 하나님과 다투지 않을 수 없는 자다. 만약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 지구상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26쪽)

우치무라 간조는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본다. 그가 가장 꺼리는 일은 바로 스스로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 방법으로 신학교를 찾는다. 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신학교는 죄를 해결하기는커녕 일반 사회보다 더 위험한 곳이었다. 그는 신학교를 '악마의 가장 좋은 표적'이라고 표현한다.

"역사가 네안더(August Wilhelm Neander)는 이렇게 말했다. '신학의 중심은 마음이다.'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다. 목사의 설교는 배우의 연극이 아니다. 정신적 사역을 하기 위해서 받은 기술적 훈련의 해악은 정신적 사역을 연극적이고 모방적이게 만드는 데 있다. 자기가 느끼지 않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게 하는 것이 수사학의 병폐다. 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사학을 허언술(虛言術)이라고까지 했다. (중략)

직업을 갖기 위해 신학자가 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철학의 한 분야로서 신학에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성서 연구는 고전하게 유익하다. 더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단으로서 전도는 야심가의 공명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때문에 하늘의 특별한 계시 없이도, 하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도,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도 신학생이 될 수 있고, 전도 사역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학의 커다란 함정이다. 이 폐단은 박애와 헌신의 원천인 종교를 자기주장을 확장하는 기반으로 만들어, 명목상의 신자 증가를 전도의 성공이라 말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범위의 확장을 교세 확장의 징조로 삼는다." (66-67쪽)

우치무라 간조의 고백은 지금 한국교회 상황과 다른가. 넘쳐나는 신학생과 목회자, 그러나 그중에 진정한 목자는 찾기 힘든 오늘 한국교회 상황의 근본 원인 아닐까.

<구안록>은 답이 정해져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 답을 삶으로 찾아가기까지 여정은 쉽지 않다. 우치무라 간조가 그랬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다. 문제는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신자, 특히 목회자가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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