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이른 아침 충청남도 보령으로 나섰다. 얼마 전 대전에서 열린 '마을을 섬기는 시골 교회' 세미나 강사로 오셨던 김영진 목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다행히 길이 시원하게 뚫려서 즐거운 마음으로 보령까지 운전했다. 바람이 약간 불었지만 나들이하기 참 좋은 날씨였다.

김영진 목사님이 24년째 시무하고 있는 들꽃마당시온교회는 보령의 최북단 천북면에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시골이다. 길 따라 무심코 달렸다가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교회 팻말을 지나치기 십상이다. 

언덕을 조금 올라가자 교회 건물이 보인다. 주차를 하고 교회 주위를 둘러보니 예쁜 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고 예쁜 연못도 있다. 이렇게 가꾸어 놓은 꽃들이 작은 마을 축제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교회를 중심으로 열리는 들꽃 축제에 매년 1,000명 넘는 손님이 온다고 한다. 조용한 시골 마을의 일탈이라고 할까? 축제라고 해서 별다른 것은 없다. 말 그대로 작은 들꽃을 기뻐하는 동네 축제다.

▲ 들꽃마당시온교회 전경. 교회를 중심으로 매년 들꽃 축제가 열린다. (사진 제공 들꽃마당시온교회)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했다. 오늘 만날 분들과 좋은 교제를 나누고,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기를 구했다. 들꽃마당시온교회를 담임하는 김영진 목사님은 시골 교회 목사님다운 멋진 턱수염을 가지고 계시다. 젊어 보이시는데 아들이 군대를 제대했다고 한다. 교회를 둘러봤다. 100명 조금 넘게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예배당과 그보다 더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예배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강대상이었다. 교인이 직접 나무 세 토막을 붙여서 만든 강대상이라고 한다.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솜씨였다. 강대상뿐 아니라 책상들도 교인들이 모두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그뿐이랴. 벽돌 건물인 예배당도 교인들이 직접 쌓아 올렸다고 하니 이게 바로 교회 짓는 맛 아니겠는가. 목사님 목소리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 들꽃마당시온교회 김영진 목사님. ⓒ뉴스앤조이 강도현
▲ 교인들이 직접 제작한 강대상. ⓒ뉴스앤조이 강도현

점심 식사를 위해 천수만이 잘 보이는 식당에 들어왔다. 천북면의 유일한 '레스토랑'이란다. 교회 차를 타고 식당까지 10분 남짓 오는 동안 목사님이 마을 구경을 시켜 주셨다. 특별히 알려진 곳이 있는 것은 아니고 주로 마을에 있는 가게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지나가는 가게마다 재미있는 사연들이 가득했다. 한편으로는 '김 목사님 참 오지랖 넓으시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옆으로 야생 꿩이 날아가는 걸 보며 놀랐더니 "서울에서 오신 분 맞네요" 하신다.

점심 식사는 오븐 스파게티였다. 맛도 그런 대로 괜찮았고, 관광지 치고는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무엇보다 바다가 넓게 보여서 지금까지 가 봤던 어떤 레스토랑보다 경치가 좋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도 몇 군데 가보았지만 이 정도 경치를 가진 레스토랑은 흔치 않다.

인상적인 것은 경치만이 아니었다. 레스토랑 곳곳에 풍경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상당수 김영진 목사님이 찍은 사진이란다. 사진을 잘 나온 것도 그렇지만 그걸 동네 레스토랑에 걸어 놨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중 한 사진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어, 대구 사시는 분이 그 사진 한 장 보고 찾아오셨다 하니 김 목사님을 다시 보게 됐다.

▲ 액자 속에 있는 게 김영진 목사님이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고 찾아온 손님들도 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그 다음 코스는 식당 옆 호텔이었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규모는 모텔급이다. 식사하면서 목사님이 얼마나 자랑을 하시는지 혹 지분을 가지고 계신가 했다. 천수만이 잘 보이는 명당에 위치한 이 모텔에는 100명 정도는 너끈히 들어가는 세미나실도 갖추고 있었다. 김 목사님의 마을 걱정은 여기까지 미치고 있었다. 호텔 사장님과 최근 불경기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갔다. 대화를 마치고는 호텔에 어떤 사람들을 불러올 수 있는지 세고 계셨다. 오지랖이라고 하기엔 목사님 표정에 근심이 가득하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힐링 민박집에 들렀다. 전문 민박집은 아니고 직장에서 은퇴한 부부가 수년간 가꿔 온 별장 같은 집이다. 집까지 들어가려면 숲속 길을 한참 가야 한다. 말이 집이지 부부가 야산 전체를 정원으로 가꾸셨다고 한다. 한 사람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지 놀라울 정도다. 그것도 직장에서 은퇴한 노인 부부가 말이다.

바다가 보이는 옥탑방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한 명당이었다. 주인댁은 가톨릭 신자인데 이렇게 가꿔 온 풍경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목사님을 찾아오셨다고 한다. 이 동네는 뭔가 일을 하려면 김영진 목사를 찾아야 하는가 보다. 김 목사님이 조언과 함께 필요한 사람들과 연결도 시켜 주신다. 그렇다고 금전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게 목회라고 한다.

▲ 민박집에 이런 길이 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숲 속을 한참 가다 보면 정원이 나온다. 좌측 집 2층에 머무를 수 있는 방이 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주인아주머니는 일이 있을 때마다 김영진 목사님과 상의한다. 바다가 보이는 정원. ⓒ뉴스앤조이 강도현

다음 코스는 천수만의 향을 가득 담은 보령방조제 낚시터와 오천항이다. 서해안 바람을 마음껏 맞을 수 있어 시원했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밤낚시를 즐기러 오신다는데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여름 바다를 보며 후루룩 들이키는 컵라면이라니…. 꼭 다시 한 번 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오천항에는 조선의 충청도 수군 본부였던 충청수영성이 있다. 500년 전 사람들이 쌓아 올린 투박한 언덕 위에서 항을 내려다 보니 기분이 묘했다. 10년 전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를 건너 우연히 마주친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생각났다. 목사님께 오천항이 그 마을처럼 예쁘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진심으로 기뻐하신다. 오천항에 유명한 칼국수집이 있으니 다음 방문 때는 칼국수와 회를 먹자고 하셨다. 공식적으로 다음 방문이 확정되었다.

▲ 오천항과 함께 있는 충청수영성 모습. ⓒ뉴스앤조이 강도현
▲ 오천항. 가을에는 굴을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오천항을 돌아 갈매못 순교 성지에 들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다. 갈매못 순교 성지는 병인박해 때 프랑스 신부 3명을 포함하여 5명의 순교자가 참수당한 곳이다. 그 사연도 기가 막혔다.

고종의 국혼을 한 달 남겨 놓고 궁중무당들이 한양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 이롭지 못하다 하여 목에 칼을 차고 이곳 오천면까지 걸어왔다고 한다. 망나니에게 쥐어 줄 돈이 없어서 단칼에 죽지 못하고 두어 번 칼을 맞아야 했다. 순교자 다섯은 죽음 앞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안아 주었다. 겨우 백여 년 전에 바로 이곳에서 그런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 갈매못 성지의 비아돌로로사. ⓒ뉴스앤조이 강도현

언덕 위 기도실을 찾았다. 마치 동굴에 들어온 것 같았다. 갑바도기아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런 방에서 기도하지 않았을까.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잠깐 앉아서 기도를 드리다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울컥했다. 성당 내부 정면에는 다섯 순교자가 수풀 너머로 서 있는 그림이 스테인드글라스로 새겨져 있었다.

서쪽으로 지는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다섯 순교자를 강렬하게 비추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순교 현장에서 도망친 이들이 숲 속에 숨어서 처형당하는 순교자를 지켜보고 있는 그림이라고 한다. 더 이상 숨어 있지 말고 순교 현장으로 나오라는 요청의 의미라고 한다.

▲ 성당 내부. 순교 현장에서 도망쳐 숨은 이들의 시야에 들어온 다섯 순교자 모습을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동굴 같은 분위기의 기도실. ⓒ뉴스앤조이 강도현

갈매못을 떠나 낙동초등학교로 나섰다. 낙동초등학교는 폐교 위기를 겪었으나 김영진 목사님이 교회에서 운영하던 공부방을 학교로 옮기면서 다시 활력을 찾게 되었다. 지금은 45명의 학생이 활기차게 뛰어노는 곳이다. 김 목사님은 공부방을 운영하는 것 외에도 아이들 등하굣길을 책임지고 있다. 시골 동네는 아무래도 동선이 길다. 김영진 목사는 무려 10년 동안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주고 있다.

학교 곳곳에 김영진 목사님의 손길이 닿아 있다. 도서관, 음악 교실 등등 김영진 목사님의 기여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여럿 있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선생님들도 김영진 목사님을 동역자로 대했다. 덕분에 맛있는 차를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근처에 있는 천북중학교 입구에도 김영진 목사님이 찍은 사진이 여럿 걸려 있었다. 스토리가 있는 등굣길을 만드려고 학교에서 그렇게 했단다.

▲ 낙동초등학교에서는 음악 레슨을 비롯해 학생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김영진 목사님은 아이들 등하굣길을 책임지고 있다. (사진 제공 들꽃마당시온교회)

탐방 마지막 순서는 신죽리 수목원 카페다. 들꽃마당시온교회와 주변 교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작은 수목원 안에 카페가 있다. 수목원 안에는 참 다양한 작업이 일어난다. 커피를 볶고, 유기농 농산품을 키우고, 책상과 목공예품을 만들고…. 시골 교회 목사님들이 목수도 되고, 농부도 된다. 여기서는 노동이 예배다.

▲ 근처 교회 목사님들이 함께 모여 만든 신죽리 수목원. (사진 제공 들꽃마당시온교회)

시골 깊숙한 곳에 있는 카페 치고는 상당히 세련돼 보였다. 김영진 목사님이 직접 내려 준 커피는 참 향기로웠다. 오늘의 긴 일정을 마무리하기엔 더없이 좋은 커피였다. 이 지역에서 꽤 유명한 말통커피에서 로스팅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말통커피도 보령 지역 목사들이 함께하는 사역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 동네에 오면 목사님들 능력이 배가 되나 보다.

▲ 신죽리 수목원 카페 내부. 김영준 목사님이 직접 내려 준 커피를 마셨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동네 한 바퀴를 쭉 돌고 나서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마을을 목회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을 '걱정'한다는 뜻이다. 김 목사님은 마을 전체를 걱정한다. 어떤 집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쭉 꿰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마을 곳곳에 숨어 있는 명당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마을 전체가 교회의 영역이고 교회가 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 일이 교회에 이득이 되는지 따질 이유가 없다. 마을을 돌보는 것이 곧 목회다. 들꽃마당시온교회 성도들도 마을 섬기는 일에 함께한다. 말로 전도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전도는 섬김의 다른 이름이다. 교회 존재 자체가 복음이다.

사실 이번 방문은 동네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탐방이었다. 그 지역 사람만 소개할 수 있는 독특한 치유 여행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해 주셔서 가능성을 타진하려고 탐방 길에 나섰다. 듣던 대로 천북면에는 정말 괜찮은 곳이 많았다. 그러나 괜찮은 '곳'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 김영진 목사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여행 프로그램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도시의 작은 교회들을 돌아다니며 현장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마을을 목회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골 교회의 특성이 아니라 어느 목회 현장에도 적용할 수 있는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많은 분과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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