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공항 2층 송환대기실에서 6~7개월간 생활하고 있는 시리아인 28명이 있다. (사진 제공 공익법센터 어필)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인천공항 2층 빛도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삼시세끼 치킨버거와 콜라를 먹으며 6개월을 버티고 있는 시리아 난민 신청자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가장 필요한 건 그 공간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다음은 식사, 잠자리, 입을 것 등이다. 대부분 생각하는 건 그 정도다.

그들에게 '체스'를 가져다준 목사가 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웬 체스?'라는 생각에 고개가 갸웃한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시리아 다방 풍경이 그래요. 차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체스 두고 그런 게 일상이죠. 6개월간 잊고 살았을 거잖아요."

그는 김동문 목사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1990년 중동 선교사로 파송받아 이집트와 요르단 등에서 15년을 살았다. 아랍인들과 함께 살면서 <한겨레21> 중동 전문위원을 맡아 기고도 했다. 한국교회 내 이슬람포비아가 심해지고 있는 지금, 선교사와 언론인으로 살았던 김동문 목사의 시각은 귀 기울일 만하다.

특히 할랄 식품 단지 조성과 관련해 교계에서 이슬람 괴담이 돌 때, 김동문 목사는 미국에서도 자신의 지식과 인터넷 검색으로 '팩트 체크' 작업을 했다. 인천공항 아랍어 쪽지 사건이나 이슬람 내에 여성 강간 문화 '타하루시'의 허구 등 여러 가지 루머의 실체를 밝혀냈다. 가끔씩 한국에 들어올 때에는 여러 강연을 통해 이슬람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을 바로잡았다.

▲ 중동 전문가 김동문 목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5월 중 한국에 들어온 김동문 목사는 변호사 접견 통역인으로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있는 시리아인을 만났다. 미국에서 직접 구입해 온 아랍식 빵과 소스, 시리아인들이 좋아하는 양젖 요거트와 전통 과자 등을 대접했다. 이 자리에서 시리아인들이 좋아하는 체스와 도미노 등 보드게임도 선물했다.

그는 일정 중 해외를 오가면서 면세 구역에서 다시 한 번 시리아인들을 만났다(현재 송환대기실에 있는 시리아인들은 일주일에 서너 번 면세 구역을 돌아다닐 수 있다). 그동안 한국에 있는 그들의 지인을 수소문했다. 몇몇에게는 영상 메시지도 받았다. 시리아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한눈에 알아보고 바로바로 시행하고 있다.

"전문가는 다르다"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할까. 김동문 목사는 시리아인들의 필요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김동문 목사를 5월 30일 아랍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이화여대 앞에서 만났다. 김 목사는 이날 저녁 상영하는 알제리 영화의 이야기 손님이었다. 김 목사와 시리아인과 이슬람포비아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알레포 피스타치오가 정말 맛있는데"

-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있는 시리아인들을 어떻게 만나게 됐나. 그들을 만나려고 한국에 온 건가.

원래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5월 중순부터 이슬람 강연과 모교 홈커밍데이, 아랍영화제 등의 일정이 있었다. 5월 초부터 공항 송환대기실에 있는 시리아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죽 보니까 그들의 필요가 보였다.

급하게 김세진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에게 연락해서 접견할 때 통역으로 동행했다. 미국에서 아랍식 빵과 소스 등을 샀다. 시리아인들이 좋아하는 양젖 요거트와 전통 과자도 샀다. 이 과자가 시리아 알레포산이 진짜 맛있는데 그건 못 구했다. 그래도 그에 견줄 만한 걸로 샀다. 입국할 때 바로 주려고 했는데 접견 날짜가 좀 늦게 잡혀서 바로 주지는 못했다.

▲ 면세 구역 테이블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시리아인들. (사진 제공 김동문)

- 체스와 도미노 게임을 줬다고 하던데.

그들을 들어오게 하기 위해 공익 변호사들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적 지원 외에도 그들에게는 음식과 언어, 문화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식사하고 담배 피우면서 체스나 도미노 게임을 하는 게 시리아의 다방 풍경이다.

그런 걸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체스와 도미노를 보는 순간 놀이가 떠오를 것 아닌가. 6개월간 잊고 있었던 고향의 풍경이다. 이들은 단지 가난해서 난민이 된 게 아니다. 그들의 처지 때문에 빼앗겼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들을 조금이라도 채워 주고 싶었다. 문화도 인권의 한 부분이며 문화적 박탈감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 반응은 어땠나.

내가 가져간 음식과 선물을 보면서 긴장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한국 사람과 아랍어로 대화하는 것도 흔치 않았을 것이다. 세 시간 정도 대화하면서 "알레포의 피스타치오가 정말 맛있는데" 이런 일상적인 얘기를 했다. 사소하지만 이국땅에서 동네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외국에 있을 때, 그 나라 사람이 "부산 밀면이 맛있는데" 하는 거다.

아랍인들이 원래 자존심이 강하다.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걸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지면서 시리아인들이 자신들의 불편한 점을 얘기하더라. 6개월간 있으면서 속옷이 다 너덜너덜해졌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필요가 더 보였다. 속옷 같은 건 물론이고, 한국에 있는 이들의 지인들을 수소문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는 후배들에게 부탁해서 알음알음 찾아냈다. 몇 명에게는 상황을 설명하고 공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영상 메시지를 받았다. 다음에 공항에 갈 때 시리아인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김동문 목사는 6월 1일 중국으로 나가면서 다시 시리아인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과 지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식사를 대접했다. 시리아인들은 오랜만에 따뜻한 식사를 먹었다. 김동문 목사는 "다음 주부터 라마단이 시작된다. 동이 트는 새벽 4~5시부터 해가 지는 저녁 8시까지 이들은 금식을 해야 한다. 하루 종일 굶고 저녁에 식어 버린 햄버거와 콜라를 먹어야 한다"고 걱정했다.)

▲ 시리아인들은 약 한 달 반 전부터 일주일에 서너 번 면세 구역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돈도 넉넉지 않고 비행기 탑승권이 없어 물건을 사기도 쉽지 않다. 음식도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어 사 먹기도 어렵다. 6월 1일 김동문 목사는 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대접했다. (사진 제공 김동문)

'이슬람'은 누구고 '기독교'는 누군가

- 이슬람을 척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독교인이 있다. 특히 이슬람권에서 오랜 기간 살다 온 선교사들이 이런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피난민들을 보아도, 극단적인 반공 사상을 갖게 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는 그 사람의 경험뿐 아니라 개인 성향이나 주변 상황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한다. input-output 개념처럼 어떤 경험을 했을 때 어떤 사상이 형성된다고 도식화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그 사건 자체로 평가해야 하는데 이를 일반화하고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할 때 문제가 생긴다. 그 경험으로 사람·집단·지역 전체를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청중의 문제도 크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로 멈춰야 하는데 그것을 일반화·절대화한다. 심한 경우는 그 말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확 갈라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말은 더 이상 팩트를 체크할 대상이 아니다. '이슬람 세계는 이렇다'고 신봉해 버리면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아무래도 IS의 테러 때문에 이슬람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이슬람'이라고 할 때 사실 그 정의가 불명확하다. IS도 자신들을 이슬람이라고 하지만, IS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슬람이다. 이런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냥 소시민적 삶을 사는 일반 대중들도 있다. 이슬람이라고 하면 도대체 누구를 얘기하는 건가. 한국교회를 보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과격하고,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이슬람에도 수많은 종파가 있다. 기독교, 아니 한국교회만 해도 그렇지 않나. 어떤 목사는 설교할 때 가운을 입기도 하고 어떤 목사는 안 입기도 한다. '강단에 십자가를 설치할 수 있는가'와 같은 비교적 작은 문제부터,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입장이 교단마다 다르다. 심지어 한 교회 안에도 여러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있다. 이슬람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다.

▲ 김동문 목사는 이슬람도 기독교처럼 다양한 분파가 있다고 했다. 어느 하나를 이슬람 전체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중동의 눈으로 읽는 복음서

- 6월 10일, <뉴스앤조이>에서 '현장의 눈으로 읽는 복음서'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소개해 달라.

팔복과 주기도문을 다시 풀어 보는 시간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신학적·교리적으로 해석해 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시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은 기독교 신학이나 기독교 언어와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었다. 유대인이 대다수였겠지만 그중에는 이방인도 있었다. 그들이 그 메시지를 이해했다면, 지금도 누구나 예수님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어떤가.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주기도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얘기하고 있나. 그게 아니라면, 2000년 전 그 상황을 고려해서 성경을 다시 본다면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 "한국 사람들과 형제처럼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 이들의 바람이다. (사진 제공 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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