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박물관의 본질적인 문제는 CMS가 아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CMS 회원 관리가 갈등의 표면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지금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평박·이해동 이사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단지 회원 관리를 잘했나 잘못했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3개월간 진행된 일을 보면, 이사장 이해동 목사와 이사 한홍구 교수(성공회대)가 절차를 무시하고 사무처 활동가들을 몰아붙이는 모습이 보인다.

석미화 사무처장은 사무처에 문제가 있다는 감사 보고서가 도착한 4월 18일, 이사장 이해동 목사의 통보로 보직이 해임됐다. 종이 한 장으로 된 통보서에는 사유가 '절차 무시, 이사장 지시 무시, 사무처 관리 부실'이라고만 써 있었다. 석 처장은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회신은 없었다. 4월분 급여는 79만 원이 삭감된 상태로 지급됐다.

이는 3월 28일 열린 34차 이사회 결의와도 달랐다. 이사회는 이사 3인에게 맡겨 문제를 처리하기로 했는데 이해동 목사는 이사장 직권으로 석 처장에 대한 보직 해임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그때랑 상황이 바뀌었지 않나. 2차 감사 보고서를 통해 사무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사 3인에게 맡기기로 했지만 그들은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해동 목사가 보직 해임을 통보한 날짜는 34차 이사회 후 20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석미화 처장은 2차 감사 보고서에 대해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에 대해 한홍구 교수는 "석 처장의 주장은 이미 1차 감사 보고서에 반영돼 있다. 공식적인 해명은 나중에 징계위원회가 열리든지 하면 그때 얘기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무처 직원들은 '업무 정지(3.30) - 보직 해임(4.18) - 급여 삭감(5.4) - 사무처 폐쇄(5.13)'로 이어지는 노동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밖에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한홍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가 안에서는 반민주적인 일을 자행하고 있다고 규탄한다. 특히 평화를 원하는 5,000명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평박에서 반평화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 평박 사무처 사무실에 붙어 있는 활동가들의 포스트잇. (석미화 사무처장 페이스북 갈무리)

한홍구와 이해동

한홍구 교수(58)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진보 역사학자다. 수년간 <한겨레>와 <한겨레21>에 한국사 칼럼을 연재했고 이를 책으로 펴냈다. 그의 역사 강연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국가정보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국정원과거사위)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계속해서 연구·저술·강연을 활발하게 이어 나가고 있다.

한홍구 교수는 평박이 시작될 때부터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처음에는 공동사무처장을 맡았고, 평박이 법인화한 후에는 상임이사로 재직했다. 평박이 해 온 사업들 중에는 한 교수가 추진한 것들이 많다. 후원 회원 유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강연에 나갈 때에는 꼭 평박 후원 약정서를 챙겼다. 현재 평박의 가장 주요한 사업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도 한 교수가 주도하고 있다.

이해동 목사(83)는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이다. 한신대학교 전신인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됐다. 1976년 '3·1 민주 구국 선언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인권, 민주주의, 통일 등 여러 시민사회 운동에 이바지했으며, 아름다운가게 이사장,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평박 이사장과 동시에 행동하는양심 이사장, 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의 이력과 지금 평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매치하기는 쉽지 않다. 대한민국 대표 진보 지식인과 민주화 운동 원로가 어떻게 "노동자를 탄압한다"는 말을 듣고 있을까. 왜 석연찮은 절차로 사무처장을 보직 해임했을까. 사무처 활동가들은 무슨 근거로 이런 일이 "반복되어 왔다"고 말하는 걸까.

▲ 이해동 목사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추모 예배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3년에는 무슨 일이

2013년 12월, 평박은 큰일을 겪었다. 사무처 활동가 7명이 집단으로 사직했다. 원인은 당시 상임이사였던 한홍구 교수와 활동가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상황은 이렇다. 2013년 6월, 활동가 이 아무개 씨는 사무처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평박은 전시 담당 활동가를 새로 채용했는데 그 사람은 1년 비정규직이었다. 문제는 그가 정규직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비정규직임을 알게 된 것은 채용 확정 후였다. 그는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 후, 사무처 활동가들과 친해지면서 자신의 채용 과정을 털어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활동가 이 씨는 사무처 회의에서 전시 담당 활동가 채용 과정이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에 상임이사 한홍구 교수와 당시 사무처장 오 아무개 씨는, 앞으로 채용되는 신입 활동가는 3개월 수습 기간을 포함해 1년의 사용 기간을 둘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정책이 옳은지 사무처 내에서 몇 차례 논쟁이 있었고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락됐다.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오 사무처장이 휴직했고, 3개월 후 퇴직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한홍구 교수는 오 사무처장이 퇴직한 이유가 활동가 이 씨의 태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3개월 전 문제를 제기할 때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 것이다. 한 교수는 이 씨를 해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 씨에게 권고사직을 명령했다. 다른 활동가들은 이 씨의 문제 제기와 태도는 정당했다고 맞섰다. 오 사무처장도 자신이 사직한 이유를 휴식과 이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홍구 교수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이 씨는 권고사직을 거부했다. 돌아오는 건 급여 미지급이었다. 이 씨는 10월부터 12월 말 사직하기 전까지 3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는 한 달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울 만큼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고, 이는 한홍구 교수도 알고 있었다는 게 당시 활동가들의 주장이다. 이 씨는 3개월간 동료 활동가들이 자기 월급을 쪼개서 모아 준 것으로 살았다. 활동가들은 한 교수가 이 씨를 사직시키려 한다면 자신들도 동반 사직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이사회가 열렸지만 사무처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소명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한홍구 교수는 평박의 사업을 전면 개편해 베트남 관련 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을 정리할 것이라며 사무처 축소를 통보했다. 한 교수가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이사회마저 기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사무처 활동가들은 단체로 사직서를 썼다. 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공론화하며, 이 일을 계기로 '조직 내 민주주의'와 '시민단체 사유화'에 대해 공론의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이 정리된 후, 석미화 사무처장이 입사했고 한홍구 교수는 상임이사직을 내려놓았다. 2년이 지나고 2016년,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활동가들은 2013년 사태와 지금이 본질적인 면에서 닮아 있다고 얘기한다. 한홍구 교수의 독단적 운영, 단체 사유화, 그리고 이사장 이해동 목사의 방관이다.

2016, 반복되는 인사 문제

한홍구 교수는 2014년 상임이사직을 내려놓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임이사 역할을 지속했다. 평박 설립 때부터 일을 도맡아 왔고 활동가도 새로 채용했기 때문에, 한 교수만큼 평박을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사회에서 상임이사를 새로 뽑기는 했지만 그 역시 한 교수를 의지했다. 한 교수는 사무처로 출근하면서 연구와 사업, 회원 유치를 계속했다. 석미화 사무처장은 "평박은 한홍구 교수의 뜻대로 굴러갔다. 거의 모든 일에 그의 구두 결재를 거쳐야 했다"고 말했다.

2016년 2월, 인사 문제는 또 벌어졌다. 2015년 12월 평박에 입사한 활동가 김 아무개 씨는 며칠 지나지 않아 반헌법행위자열찬편찬위원회(반헌법팀)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무처 사무실과 반헌법팀 사무실은 도로 하나를 두고 두 건물에 나뉘어 있다. 김 씨는 처음에 사무처로 배정되었는데, 한홍구 교수는 '처음부터' 김 씨를 반헌법팀으로 배치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 통보도 한 교수에게 직접 들은 게 아니라 석미화 사무처장을 통해서 들었다.

김 씨는 석 처장도 이사인데 마치 수직 관계처럼 한 교수의 말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과, 무엇보다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업무를 바꿔 버리는 일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그는 한홍구 교수를 찾아갔으나, 한 교수는 애초에 대화할 생각이 없었으며 강압적 통보만 들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썼다.

"'민주'를 얘기하나 반민주적 행위가 몸에 배인 인사와 더 이상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본적인 소통조차 거부하고 본인의 뜻대로 일도 사람도 '다루는' 인사가 어떻게 명사(名士)가 되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료들과 쌓았던 정을 뒤로 하고 2016년 2월 12일 퇴직했습니다."

▲ 평박에서 한홍구 교수의 영향력은 크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평박에서 자신의 역할이 큰 것은 한홍구 교수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단체를 독단적으로 운영한다거나 단체를 사유화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했다.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의 영향력이 큰 것은 인정한다. 단체 전체가 돌아가는 상황을 판단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전시가 빡빡하게 돌아갈 때 일을 좀 몰아붙인 적은 있다. 그걸 독단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다른 부분에서 독단이라고 할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이번에 벌어진 일을 보고 그러더라. '한홍구 교수가 단체를 사유화한 게 아니라 오히려 사적인 것까지 모두 쏟아 부어서 일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나는 한 달에 강연을 30번씩 하는 사람이다. 사무처 활동가들과는 부딪힐 시간도 없고, 전횡을 저지를 시간도 없다."

2013년이나 지금이나 사무처 활동가들은 인사 문제와 관련해 민주적인 절차가 무시되고 있다고 말한다고 하자, 한홍구 교수는 "의사 결정은 이사회가 하는 거다. 내 맘대로 한 적 없다. 내가 얘기할 때는 언제나 최종 결재권자에게 위임을 받아서 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져 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사회를 통해 충분히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무자들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평박 같은 단체라면 이들의 입장에 좀 더 세심하게 귀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아무리 그래도 잘못한 일까지 무조건 덮어 줄 수는 없지 않나. 업무 해태로 손실을 입힌 것만 해도 이미 해고 사유는 충분하지만, 우리가 시민단체니까 참고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사장 이해동 목사는 한홍구 교수를 전폭 신뢰했다. 이 목사는 "지난 17년간 한홍구 교수만큼 평박에 헌신한 사람은 없다. 그런 한 교수에게 독단, 전횡을 논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독단이 아니라 한 교수 때문에 평박이 지탱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활동가들과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 이 목사는 "한 교수가 사람이 너무 순진해서 탈이다. 지금 이렇게 된 것도 사무처 활동가들을 너무 믿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는 2013년 사태와 지금은 경우가 아주 다르다고 했다. 지금은 사무처의 업무 해태 때문에 평박이 손실을 본 상황에서 사무처장에게 책임을 물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 사무처장을 보직 해임한 것은 징계도 아니고 이사장 직권으로 가능한 인사 조치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막대한 손실을 입힌 게 드러난 상황에서 석미화 사무처장에 대한 중징계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조직에 기여한 바는 인정하지만

이번 사태가 진행되면서 사무처 활동가뿐 아니라 몇몇 이사도 한홍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를 비판했다. 지난 3월 이사직을 사임한 가수 홍순관 씨는 4월 18일 사무처의 호소문에 답하면서, 지금 평박에서는 비상식적·비민주적·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가 2013년 12월 활동가 전체 부당 해고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 교수와 이 목사의 독단적 처사에 동의할 수 없고 묵과할 수 없다며, 두 사람의 퇴진을 요구했다.

5월 2일, 35차 이사회 하루 전날 이사 사임 의사를 밝힌 장혜옥 대표(학벌없는세상)는 사퇴서에서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꿈꾸고 평화를 국외까지 확장하려는 단체가 오히려 폭력적인 구조와 관행으로 반평화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막힌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사로 재직한 2년 동안, 총회는 유명무실했고 이사회는 1년에 한두 번이었으며 단체는 1~2인의 명령 체제로 운영되었다고 했다.

"이해동 대표와 한홍구 이사는 마치 단체가 자신들 것인 양 확신했으며, 실무자들에게 복종만을 요구하고 명령했다. 그들이 문제 제기하는 것조차 버릇이 없다며 보직 해임하는 단체 운영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폭력적 작태였다. 물론 한홍구 이사의 저돌적인 지적 활동과 사회적 명성으로 수많은 분들이 아낌없이 후원자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위임받은 자의 공공성과 민주성, 사회성과 헌신성, 자기희생과 겸손한 성찰은 수없이 반복해도 모자라는 덕목이다."

▲ 반헌법팀은 종각역 인근 주상 복합 아파트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사회는 사무처 사무실을 반헌법팀과 통합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활동가들도 한홍구 교수가 평박에 기여한 바는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교수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 교수가 사업 아이템을 많이 내놓고 그렇게 해서 잘된 것도 있었지만, 그 일을 실제로 진행한 건 활동가들이라는 말이다. 사업이 잘될수록 한 교수의 명성은 올라갔지만 활동가들은 아니었다. 몇 개월, 몇 년 일하다 한 교수와의 마찰로 그만둬야 했고, 지금도 그런 구조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했다. 활동가들과 홍순관·장혜옥 전 이사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한홍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사건을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 목사는 "이사들 중 한 교수만큼 평박을 책임진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일부 이사들의 문제 제기는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활동가들에 대해서도 "평박이 지금까지 진행돼 왔던 역사가 있다. 그걸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다. 저들은 이렇게 하는 게 마치 민주화, 노동 투쟁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 생각을 아주 잘못하고 있다"고 했다.

평박은 이제 어떻게 될까. 이사회는 사무처 폐쇄를 명령했고, 다른 모든 사업을 축소하고 한홍구 교수가 이끄는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다음 기사에서는 이번 사태와 연결돼 있는 평박의 방향성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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