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란 사회 내에서 문화적, 인종적, 민족적으로 구별되어 지배 집단 내에 종속되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소수자는 사회 내 다수성에 함몰되어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권리로부터 배제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탄압이나 살인과 같은 더 끔찍한 결과로 맞게 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성 소수자(LGBT) 이슈가 사회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성 소수자의 사회적인 권리를 인정하자는 담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교회 내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극단적인 반대 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동성애를 질병으로 취급하는 일도 다반사이고, 귀신 들렸다며 축사하는 경악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의학적 근거가 없는 동성애 치료, 탈동성애 운동은 자칫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만약 성 소수자 인권을 인정한다면 그들을 교회 멤버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목사 안수를 줄 수 있는지,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연속적으로 제기된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본 기사에서는 성 소수자 중 동성애에 관한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역사적 고찰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성서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석 문제를 다룰 것이다.

모든 분석에서 가능한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여 여러 관점이 드러나도록 제시한 후에, 비판점을 분석하고 기독교 윤리 쟁점까지 고찰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기독교 성 윤리와 인권 포용이 양립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동성애에 대한 역사적 이해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히브리 민족은 종족 보존과 번영을 위해 다산을 강조했다. 다산은 하나님의 약속이자, 상급(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 127:3)이었다. 또한 이방 풍습이었던 동성애를 배척하여 자기 정체성을 유지했다. 동성 간 성관계를 율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레 20:13)했고, 성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가르침 역시 출산과 속된 것에서 구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다면 서구 역사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

① 그리스-로마 시대

고대 그리스에서는 청년과 장년 남성 간 성관계를 높이 칭송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아테네인은 오직 남성에게서만 완전함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젊은 남성의 신체는 완전한 육체로 여겨졌으며, 젊은 남성은 불완전한 여성보다 장년 남성과의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이 더욱 완전한 사랑이라 여겼다. 이 완전한 사랑으로 청년은 어른이 돼서 지적이고 '정신적인'(platonic)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로마 시대 문학작품에서는 모든 유형의 성적 관계를 칭송하고 있지만, 동성애 관계에서 두 가지 성적 행동만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중 하나는 남성 간의 관계에서 수동적 역할을 담당하는 남성, 다른 하나는 여성 간의 관계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는 여성이다.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남성은 남성답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권을 얻을 자격이 없으며 이와 같은 행위는 노예와 매춘부에게만 적절한 것으로 여겼다.

여성의 경우,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여성은 남성의 특권을 탈취하는 것으로 여겼다. 로마에서 '남성'이란 국가에 복무할 수 있는 자식을 둔, 결혼한 성인 남자를 의미했다. 남성 대다수는 대가 없이 매춘부를 이용할 수 있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매춘부도 있었다. 로마에서는 성관계 대상의 성별보다 맡은 역할을 중요시했기에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선은 그다지 분명하지 않았다.

② 중세의 그림자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정욕과 섹스 자체를 타락의 결과로 보았으며, 출산 목적이 아닌 모든 성행위를 죄악으로 보았다. 그는 결혼한 부부의 성행위조차 출산을 위해서가 아닌 쾌락을 위해서 행해질 때는 죄가 되며, 피임도 출산에 위배되므로 죄라고 주장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1179년 제3차 라테란공의회에서 동성애를 반사회적 행위로 간주하여 처음으로 사법적 처벌을 시행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에 따르면 "자연을 거역하는 죄 가운데 가장 극악한 것은 수간(동물과의 성관계)이며, 그 다음이 남색하는 죄(sin of sodomy)로서 이 둘은 모두 성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동성 간 성적 충동을 반자연적 범죄(the unnatural crime)로 규정했고, 출산 목적에 위배되는 자위행위도 죄로 규정했다.

가톨릭교회 영향을 받은 서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14세기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했다. 영국은 1533년부터 동성 간 성행위를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로 규정했고, 영국 식민지 미국 동부 13개 주는 1755년까지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했다. 프랑스는 1791년까지, 스코틀랜드는 1885년까지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했다.

이후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관습은 사라졌지만, 1885년에 영국은 남자 간 모든 성행위를 금지하는 형법을 통과시켰다. 동성애자를 박해하는 흐름은 20세기까지 연결되어, 히틀러는 집권 후 동성애자 9만 명을 집단 학살했다. 스탈린도 동성애를 '파시스트의 성 도착증'으로 규정하여 동성애자 수천 명을 체포·구금했다.

③ 근대의 전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 변화는 근대에서부터 이루어졌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종교적 시각에서 과학적 시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까지는 동성애를 종교적 관점에서 도덕적 체계의 일환으로 간주하여 규제했다.

종교적으로 죄(sin)와 범죄(crime)로 취급해 왔던 성적 욕망과 행동은 근대에 와서 정신적 장애 혹은 비정상적 성적 도착(perversion)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동성애자들은 소아 성애자나 복장 도착자와 같은 여타 성도착자와 함께 사회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생물학적 질병을 가진 부류로 분류됐고, 최근에 들어서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이반(異般)이라고 지칭되기도 했다.

④ 20세기, 담론의 새로운 전환점

근래 들어서는 동성애자 혐오를 제거하고, 동성애자를 사회 일원으로 수용하는 일이 빠른 속도로 진척되기 시작했다. 담론의 전환점을 가져온 두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첫째 계기는 킨제이 보고서 출간이다. 킨제이(Alfred C. Kinsey)는 10여 년간 직접 인터뷰를 해 1만 7,000여 자료를 수집했고, 객관성을 위해 지식인, 백인, 중산층뿐 아니라 흑인, 하류층, 심지어 매춘부, 동성애자까지 인터뷰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는 미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13세 이상 남성 중 37%가 "어느 정도의 노골적 동성애 경험"으로 오르가즘에 이른 적이 있었다. 10%는 16~55세 사이에 "적어도 3년 동안 다소 철저하게 동성애"를 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4%는 "평생 동안 동성애만 하는" 사람이었다. 킨제이는 이 보고서로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자가 정신적 장애를 지닌 극소수 일탈 집단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일상의 존재라는 점을 대중에게 알리게 됐다.

둘째 계기는 1980년대 초반의 에이즈 발생이다. 당시 에이즈로 수많은 감염자가 사망했고, 게이 집단이 커다란 타격을 받은 바 있다. 이는 게이 지역 사회를 결속하게 해 동성애 현상을 공개적으로 담론화하여 사회적 쟁점으로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됐다.

최근 사회적으로 동성애를 허용하는 방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동성애자 차별 금지 및 인권 보호 등 더 개방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법제화되는 경향이다.

2. 동성애 논쟁: 유전이냐, 환경이냐

생물학 영역에서 유전적 특성을 동성애 요인으로 탐구해 온 학자들은 유전자 구조, 출산 이전과 출산 이후의 비정상적인 호르몬 분배, 성적 행위와 관련한 여러 신체 조직의 비정상적 발전 등을 생물학적 요인에 포함시켰다.

현대 유전학자들은 동성애 유전인자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연구에 의거하여 동성애자는 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나기 때문에 그들의 성적 지향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따라서 부도덕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킨제이는 "자신을 비롯한 연구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식의 심리치료를 통해서든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변하게 하는 데 성공한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 어떤 학자들은 동성애 지향성이 생물학적 요인에만 근거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존 머니(John Money)는 특정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동성애, 복장 도착증, 성전환 등을 예로 들며 동성애자가 되는 요인은 출산 이후 사회적 경험 때문이라고 논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신체적, 유전적 요소가 성적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을 처음부터 거부한다. 프로이드는 동성을 성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요인을 무의식 세계까지 파고들어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위와 같은 이견은 있지만, 성 지향성과 관련해 학자들은 보편적으로 다음 두 가지에 동의한다. 첫째, 기본적인 성적 지향성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선택하기에는 비교적 어린 나이인 5~7세 사이에 이미 고정화된다. 둘째, 성인의 성적 지향성을 바꾸려는 노력은 특정한 성행위 형태를 바꿀지는 몰라도 대개 느낌이나 욕구, 성적 환상에 대해서는 큰 변화를 주지 못한다.

지금까지 정보에 비추어 볼 때 동성애가 유전에서 기인하느냐, 환경에서 기인하느냐는 엄격한 양자택일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또한, 동성애자가 되는 원인을 명확하게 밝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동성애 자체가 죄인지 또는 비도덕적인지 판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기원에 대한 질문과 윤리적 질문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다. 동성애 원인 발견이 동성애 자체에 신학적, 윤리적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유전이든 환경이든 어느 쪽도 동성 성 지향을 '문제' 또는 '질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3. 동성애 관련 구절과 해석 문제

동성애 논쟁은 성서 내 8개 본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창 19:1-9; 삿 19:1-30; 레 18:1-30; 레 20:1-27; 고전 6:9-17; 딤전 1:3-13; 유 1-25; 롬 1장) 구약 레위기는 동성 간 성적 관계를 율법으로 엄격하게 금한다. 신약 바울서신은 동성애자를 불의한 자로 규정하여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자로 여긴다. 이에 대한 기독교계 주된 입장은 성서는 동성애가 '죄'라고 선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특정한 표현이나 내러티브는 당대 사회, 문화적 맥락(Context) 안에서 쓰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특정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당대 문화에 토대를 두고 있다. 따라서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내용이 형성된 배경을 분석해야 한다. 동성애 관련 성서 구절을 분석해 보자.

① 구약의 문화와 동성애

창세기 19장에서는 두 천사가 롯의 집에 찾아왔을 때 소돔 사람들이 몰려와서 동성 간 성적 관계를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여 소돔과 고모라가 불바다가 되어 멸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상관하다"(6절), "남자를 알지 못한다"(8절)는 구체적인 성적 관계를 뜻한다. 그래서 소돔의 죄악은 남성 간 동성 성교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본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점은 롯이 소돔 사람들에게 두 나그네 대신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8절)을 내어 줄 것을 제안하는 부분이다. 두 딸을 내어 주는 것은 허용되지만 손님을 내어 주는 것은 안 된다는 논리에 정당성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비슷한 사례가 사사기 19장에서도 나온다. 레위인 한 사람이 하인과 첩을 데리고 여행하다가 어느 기브아 노인의 집에서 투숙하게 된다. 그날 밤에 성읍의 남자들이 몰려와 레위인과 "관계하겠다"(22절)고 요구한다. 집주인은 처녀인 자기 딸을 내어 주려 했으나 그들은 원치 않았다.

결국 레위인은 자기 첩을 내줬고, 성읍 사람들은 그 여인을 밤새 윤간하여 욕보였다. 여인이 죽자, 레위인은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나눠 이스라엘 부족들에게 보냈고, 군사를 소집해 기브아 성읍을 파괴했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 관습과 소돔 및 기브아의 관습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대 사회에서 나그네 영접은 매우 큰 덕목에 속한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9)는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집에 찾아온 나그네를 영접하고 보호하는 것은 자기 딸이나 첩을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아랍권 문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돔과 기브아 성읍에서 나그네와 관계를 맺겠다고 몰려온 사람들은 성서에 따르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창 19:4) 있었다. 당시 사회에서는 자기가 속한 집단이나, 혈족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에게 성적 행위를 요구하는 관습이 있었다.

또한, 고대사회에서 부녀자와 패배한 병사들에게 행한 강간은 승자가 적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방법으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상기하기 위한 항문 침해 습속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남성성을 상실시키고, 여성의 지위로 낮추는 고대 세계의 관습이었다.

성경은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겔 16:49-50)는 구절로 소돔의 죄악이 동성애보다는 다른 곳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소돔 이야기를 동성애적 측면에서 추정하여 초점을 맞춘 것은 단지 후대 그리스철학의 영향을 받은 문학과 이슬람 코란에서 나온 것이다.

레위기 본문도 살펴보자. 레위기 일부 구절(18:22, 20:13)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명백한 금지로써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인용된다. 레위기에는 성결 법전이라고 알려진 율법 모음집이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으로서 품위를 유지하여 그들만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담긴 전통을 유지해야 했다. 거룩함이란 의미가 차별성을 함의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구별되어야 했다.

이스라엘 예배 관행은 주변 나라와 달라야 했고, 다른 민족들과 섞이거나 이방 관습을 받아들여서는 안 됐다. 이에 어떤 학자들은 레위기 구절이 문맥상 이방 남성에 의한 우상숭배 행위를 나타내고 있다고 간주한다(신 23:17-18; 왕상 14:24, 15:12, 22:46; 왕하 23:7 참조).

이들은 제의로서 남성 매춘이 가나안 주변 종교의 풍산 제의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이 성결 법전에서 우상숭배적 성행위를 율법에서 금하는 원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또한 근친상간, 간통, 짐승과의 교합과 함께 정죄한다는 점에서 성 문란 행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구약 본문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황에서 빼내어 신학적 분석 없이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최신 연구 결과들은 이스라엘이 성결 법전으로 이방 문화에서 구별되려고 했다는 사실을 지지한다.

② 신약 문화와 동성애

신약성서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바울서신에서 나타난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고전 6:9-17과 딤전 1:3-13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에 주목한다. 그 단어는 '알세노코이테스'(arsenokoites, 남색하는 자)인데, 이 단어를 arsen(남성)과 koites(침대)의 합성어로 해석한다.

하지만 데일 마틴과 보스웰 등은 "단어를 정의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한 다양한 문맥에서의 용례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전통적 해석을 비판하며, 방대한 양의 그리스어 저술을 분석했다. 그 결과 바울 시대에나 그 이후 수세기 동안 '알세노코이테스'는 동성애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지 않았고, 강간이나 경제적 강요에 의한 성관계, 매춘 등의 착취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동성애는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행동이었다. 바울이 제기한 동성애 문제는 유대인의 관습과 로마인의 사회적 규범 차이로 빚어진 갈등이다. 바울은 이방 문화에 널리 퍼졌던 추잡한 동성애 행위를 거부했다고 볼 수 있다.

동성 간 관계를 도덕적 이슈가 아니라 '정결'이라는 이슈로 본 것이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본문은 동성애 성향이 있는 사람과 행위로 옮기는 사람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따라서 성서를 근거로 성향과 행위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그 논리적 토대가 매우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잭 로저스는 신약 본문을 토대로 동성애를 죄라고 여기는 사람의 몇 가지 심각한 실수를 지적한다. 첫째, 그들은 이 단락이 본래 우상숭배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못 보고 있다. 둘째,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바울신학의 핵심을 간과하고 있다. 셋째, 문화적인 근저의 뜻을 놓치고 있다. 넷째, 부도덕한 성적 행위를 정죄하는 바울의 말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크리스천 동성애자에게까지 적용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성서에서 최소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성서는 사회, 문화적 맥락(Context)에 대한 당대의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
성서는 남색과 착취 형태의 동성애만 정죄한다.
성서는 기본적으로 남성 우월주의와 출산 장려, 민족의 독특한 정체성 때문에 동성애를 정죄한다.
성서는 동성애 성향과 동성애 행위를 별도로 구분하지 않는다.
동성애에는 성서 저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유전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성서의 기록자는 인간 중 '악한 사람들을 분류'해 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 즉 사랑과 치유와 용서의 공동체로 들어가고자 진지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본질적이면서도 신학적인 수준에서 사랑, 용서, 치유가 동성애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반드시 성서가 강조하는 정신에 기초하여 물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동성애에 대해 성급한 답변과 특별한 답을 추구하기보다 이런 주제가 당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숙고할 것을 제안한다. 그럴 때 비로소 개인과 교회, 사회를 위한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윤리적 쟁점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시대에 따라, 그리고 성서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동성애에 대해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각 입장에 따른 특징과 한계를 분석하고, 비판을 통해 대안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① 성서 오용의 사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책 <하나님의 도성>에서 노예제도의 공식을 제공했다. 그는 노예제도가 노예 된 자의 죄 때문이기에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전통도 오랫동안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제도라고 단언해 왔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노예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들 역시 노예제도는 성경적이라고 굳게 믿어 왔다.

바울의 말인 "종(노예)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 6:5)는 구절은 성경이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여성 억압 패턴도 이와 유사하다.

기독교 전통에서 여성은 하와의 후예로 죄의 기원을 초래한 '악마의 입구'였다. 따라서 여성은 도덕적으로 열등하고, 이성적이지 않고, 성적으로 난잡하며, 남성에게 죄를 가져오는 존재로 여겨졌다.

오늘날까지 위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재 동성애자에 대한 태도에서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성경은 동성애에 대한 심판을 기록하고, 동성애자는 도덕적 특질에서 열등하며, 의지적으로 죄가 많고 성적으로 난잡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 오용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성서 내용을 신학적 분석 없이 문자 그대로 현재에 적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해석의 심각한 문제를 경험했다. 특정한 윤리적 쟁점이 성경적 혹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해석을 전제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사회·문화적인 통념을 전제하고 읽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경 속 개별 구절들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는 더 큰 맥락에서 지탱되어야만 한다.

교회는 더 큰 맥락에서 노예와 인종, 여성, 이혼과 재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였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과 조화 속에서 다양한 성 윤리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② 소수자 차별과 인권 문제

동성애를 죄라고 결론지으면 극단적인 경우에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초래한다. 동성애자를 무조건적으로 혐오하는 호모포비아(homophobia) 현상은 이미 기독교 내에서도 심각한 실정이다. 동성애자는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을 받고, 당연한 기회와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부도덕한 자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동성애자는 도덕적으로 악하거나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범죄자가 아니다. 직업상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사람도 아니다. 성 소수자도 똑같이 삶을 영유할 보편적 권리로서 인권을 보호받아야만 한다.

동성애는 더 이상 질병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동성애 전환 치료에 대한 의학적 근거도 전혀 없다. 미국정신의학회는 1973년에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했고, 미국심리학회도 1975년에 동참했다. 1990년에는 국제보건기구(WHO)도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에 세계적으로 동성애자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차별하지 못하게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유럽 권리 장전에 동성애자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미국심리학협회는 오히려 동성애를 무조건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를 질병으로 분류한다. 최근 세계정신의학회도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하며, 혐오 방지 법안 마련 및 차별에 형사처벌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대한민국 성 소수자 인권침해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UN 자유인권위원회는 2015년 11월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의 차별 현황을 지적하며, 강경한 시정 권고를 내렸다. 여기에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포함한다. 그럼에도 차별 금지 법안의 성적 지향 조항은 기독교계 반발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신학적 입장과 별개로 부당한 인권유린의 사슬을 끊는 일이 시급하다.

신학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은 탄압하고 차별하는 과격한 방식을 폐기하고, 사랑에 근거한 새로운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또한, 체계적인 교육으로 성 소수자도 사회 일원임을 알려야 한다.

③ 자연주의 입장의 한계

그렇다면 동성애는 무조건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동성애가 생물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는 자연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앞에서 살펴봤던 킨제이는 성적 대상이 무엇이 되든지, 어떻게 성적 행위를 하든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는 생물학자로서 동물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인간의 행동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사회적 제재로서 학습과 성도덕에 가혹한 비판을 가하며, 이에 대항하여 "저항할 수 없는 생물학적 힘"을 옹호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결함이 있다. 인간의 성적 욕구를 모두 자연스러운 경향으로 용인할 수는 없다. 이는 '사실'에서 '가치'를 도출하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하는 것이다. 동시에 난교와 같은 행위를 정당화하여 성 윤리 붕괴를 가속화할 위험이 있다. '존재'한다는 사실이 반드시 옳아야만 한다는 '당위'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자연적 본능과 지향성에 인간의 삶과 운명을 내맡길 것인가? 이것은 윤리적 물음이다. 인간은 정신과 이성, 신앙적 확신으로 자기를 통제하고 이상을 추구하며 문화를 창조한다. 인간 지위를 동물과 동일시하는 자연주의적 입장은 인간 존엄성에 관한 윤리다.

윤리학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해서 단순하게 묵과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학은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을 항상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자연적인 경향은 오히려 우리를 타락에 참여하게 하기도 한다.

➃ 기독교 윤리적 대안

하나님은 인간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그 둘이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사랑이 추구하는 궁극 목표이다. 단순히 육체의 결합이 아닌, 인격 통일체로서의 연합이다.

인간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 실존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인간성 결합으로 인간 실존을 완성하고자 한다. 완전성에 대한 동경은 인간 상호의 인격 차원과 종교적 차원의 토대를 이룬다. 동성애가 죄냐, 하는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성경이 이성 간 결혼을 장려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다른 한편,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하고 모든 사람이 올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사회적 신분, 경제적 수준, 인종, 문화, 국적, 성 정체성 등으로 누군가를 배제하여 보편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 두고, 문턱을 낮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위 두 가지 요점을 토대로 필자는 이성 간 결혼을 격려하되, 동성애자를 모습 그대로를 수용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동성애자는 오랜 시간 논의 대상이었다. 이제 그들도 동일한 인권과 존엄성을 갖는 존재로 '대상'이 아닌 교회와 사회의 '주체'로 변해야 한다. 또한, 성도의 자격을 갖고 교회 일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동성애를 중심으로 성 소수자 쟁점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연구를 소개했다. 동성애에 대한 역사적 인식 변화를 살펴보고, 동성애 연구의 다양한 견해를 소개했다. 동성애에 대한 성서 구절을 분석하고, 해석의 문제도 고찰했다. 성서 오용의 역사, 동성애 인권 문제, 자연주의 비판으로 대안적 모델까지 제시했다.

필자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보수적 신앙을 가지고 자라 왔다. 동성애에 대한 이질감, 거부감이 있었기에 반사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크리스천이 마땅히 가져야 할 상식이었다. 그러나 성 소수자를 직접 만나고 이 문제를 연구할수록 내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돌아보게 됐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성경에서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에 찬성하거나, 일부다처제를 지지하거나, 남성 중심 사회가 올바른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은 당대 사회, 문화적 맥락(Context)을 반영한다. 우리도 현재 맥락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한다. 시대적 맥락에 따라 젠더, 인종, 노예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재해석됐듯 동성애를 보는 윤리적 관점도 시대에 따라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교회의 법은 이성애자를 위해서는 이혼과 미혼모 등 문제에 대한 목회적 접근을 허락한다. 그들을 돌보고 섬기는 사역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성 소수자를 향해서는 여전히 율법적인 접근을 명령한다면 그것은 편견에서 비롯된 모순일 것이다.

동성애가 기독교에서 죄인가 하는 말뿐인 논쟁은 어쩌면 공허하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동성애가 단지 유대 사회에서 죄악시됐다는 것뿐이다.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에서 해석할 문제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성 소수자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각 개인이 어떤 결론에 이르더라도 교인으로서, 한 국가 시민으로서 성 소수자 권리를 박탈시킬 당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가운데 어떤 소수 집단이 부당하게 차별받는다면, 우리는 구세주이며 주권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상에 따라 사는 게 아니다. 이 땅의 교회가 그리스도 몸 안에 난 차별과 혐오, 막연한 공포라는 큰 상처에서 회복되어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