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평화박물관에는 평화가 없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평박·이해동 이사장)가 시끄럽다. 석미화 사무처장을 비롯한 사무처 활동가 3명은 5월 10일, 평박 이사 한홍구 교수(성공회대)와 이사장 이해동 목사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평박이 한 교수의 독단과 이 목사의 방관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성명서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고 홈페이지는 폐쇄됐다.

다음 날, 홈페이지가 다시 가동되었고 이해동 목사와 한홍구 교수가 차례로 자신들의 입장을 올렸다. 사무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오히려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려고 문제를 비화하고 있다고 했다. 12일 사무처 활동가들은 두 사람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성명서를 올렸다. 이 글들은 지금도 평박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행간에 묻어나는 감정들만 봐도 이해동·한홍구 대 사무처 활동가들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5월 말이 된 지금, 사태는 더 악화됐다. 이름 그대로 '평화박물관'을 짓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 어째서 이런 불화가 불거진 것일까. 물론 좋은 일을 하러 모였다 하더라도 갈등은 존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평박의 모습은 여느 단체가 겪는 그런 정도가 아니다.

▲ 종각역 인근 평박 사무처 활동가들의 사무실. 길 건너편에는 한홍구 교수가 주도하는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사무실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는 지난 한 주간 평박을 취재했다. 한홍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 석미화 사무처장과 최성준 총무 활동가를 직접 만났다. 몇몇 평박 이사와 그동안 사무처를 거쳐 갔던 활동가 등과 통화했다. 관련 문서를 수집해 검토했다. 앞으로 세 개의 기사를 통해 지금 평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 보도할 것이다.

'평화 운동' 기여한 평박이…

평박은 한국 사회에서 평화와 관련해 굵직한 일들을 해 온 단체다. 1999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사죄하는 운동으로 출발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명금·김옥주 할머니가 한-베 평화 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써 달라며 7,000만 원을 후원했고 이는 평박의 종자금이 되었다. 2003년 지금의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2006년에는 사단법인화했다.

그동안 베트남과의 평화 교류, 탈핵 운동 등을 주도했고, 국가 폭력에 피해 입은 사람들 및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이들을 치유하는 사업을 진행해 왔다. 지속적인 교육·연구 활동도 펼쳤다. 종로에 '스페이스99'라는 작은 전시장을 운영하며 평화 관련 여러 전시도 했다. 평박 이사였던 홍순관 씨는 '춤추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1,000회 넘게 공연을 했다. 현재는 한홍구 교수가 주도하는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이 한창이다.

건립추진위원회 구성 후 13년,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죄 운동으로부터는 17년간 한국 사회에 평화를 알리는 일을 꾸준히 해 온 평박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리 평화적이지 않았다. 가장 큰 사건은 2013년 말 당시 사무처 활동가 7명이 단체로 사직한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두 번째 기사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큰 일을 겪은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지금 다시 내홍이 불거졌다. 사무처 활동가들은 이번 일이 이전부터 지속된 평박의 구조적 문제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홍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는 2013년 사건과 지금은 전혀 다른 경우라고 주장한다. 먼저 이번 사건의 발단부터 알아보자.

사건 일지

사건의 촉발점은 'CMS 후원 회원 관리' 문제다. 평박은 현재 약 5,000명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한홍구 교수는 올해 2월 초, 후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2014년 12월부터 2015년 8월까지의 후원금이 '증발했다'는 내용의 문건을 아무개 이사에게 전달했고, 이는 곧 석미화 사무처장에게 전해졌다.

2월 중순부터 한홍구 교수와 사무처 활동가들은 후원 관리 건으로 수차례 만났다. 한 교수가 문제를 제기하고 석미화 사무처장과 최성준 총무가 해명하는 식이었다. 사무처 활동가들은 CMS 회원 관리 시스템에서 내려받은 데이터로 표를 만들어 후원금이 정상 처리되었다고 보고했고, 한 교수는 그래도 의문점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한 달간 지속된 '문제 제기-해명'에 갈등이 커져 갔다. 사무처 활동가들은 한홍구 교수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한 교수는 활동가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사건의 발단은 CMS 회원 관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석미화 사무처장은 3월 중순, 당시 상임이사였던 김희수 변호사에게 문의한 후 감사 김성구 회계사에게 감사를 부탁했다. 3월 28일, 이사 10명이 모인 가운데 평박 34차 이사회가 열렸다. 안건으로 한홍구 교수의 후원 관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여기서 감사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결론은 사무처 주장대로 후원금이 정상적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제대로 논의될 수 없었다. 이사장 이해동 목사와 한홍구 교수가 감사 보고서를 처음 본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어떻게 이사장도 모르는 감사 보고서가 있을 수 있느냐. 나에게 보낸 회의 자료에는 이런 게 없었다"며 사무처를 질타했다. 몇몇 이사는 감사 보고서가 이해가 되고 사무처의 입장도 들어 봐야 한다고 했다. 이사회는 점점 감정으로 치달았다.

회의가 과열되자 한홍구 교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회원 관리 문제를 더 이상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사무처 활동가들에게 상처 준 것에 사과했다. 그러나 석미화 사무처장은 한 교수의 문제 제기 자체가 부당했으며, 그것을 사과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해동 목사는 감정이 격해져 석미화 사무처장를 강하게 꾸짖었다. 회의 전 자신이 분명 이사회 장소를 바꾸라고 지시했는데 석 처장이 이행하지 않았고, 자신과의 통화에서 석 처장이 소리를 지르며 무례하게 굴었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그 자리에서 석 처장의 보직을 해임하겠다고 했다. 마침 사임 의사를 밝힌 상임이사 자리에 한홍구 교수를 임명하겠다고도 했다.

몇몇 이사가 그렇게 결정하면 안 된다고 반발했다. 사건 당사자 석미화 처장은 보직 해임하고 또 다른 당사자 한홍구 교수는 상임이사로 임명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해동 목사와 한홍구 교수는 "이사장이 임면권자"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결국 다른 이사들의 중재로 일단 이사 중 세 명을 세워 이 일을 처리하게 하자고 했다. 이사들끼리 다툼으로 34차 이사회는 엉망이 됐다.

▲ 한홍구 교수는 3월 28일 34차 이사회에서 회원 관리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이사회는 파행됐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진짜 문제는 이사회가 끝나고 시작됐다. 이틀 뒤 한홍구 교수는 이해동 목사 지시라며 사무처에 대한 업무 정지를 지시했다. 이사 3인이 논의해 결정한다는 이사회 결의와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또 한 교수는 김성구 회계사에게 다시 감사를 요청했다. 이사회에서 했던 공식적으로 재논의하지 않겠다는 말과 맞지 않는 행보였다.

감사 결과는 한홍구 교수의 손을 들었다. 한 교수 주장대로 2014년 12월부터 2015년 8월까지 회원 관리가 부실했으며, 이 때문에 최소 월 348만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감사 보고서는 4월 18일 이사들과 사무처로 발송됐다. 같은 날 사무처는 34차 이사회 결의와는 다른 한홍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의 행보를 지적하며 이사들에게 사무처 정상화를 호소했다.

그러나 몇 시간 만에 사무처로 날아온 것은 이사장 이해동 목사 이름으로 된 사무처장 보직 해임 통보서였다. 통보서에는 보직 해임 사유에 대해 '절차 무시, 이사장 지시 무시, 사무처 관리 부실'이라고 짧게 쓰여 있었다. 석미화 사무처장은 곧바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후로 회신은 오지 않았다. 4월분 월급도 직책 수당 등이 제외돼 원래 급여보다 79만 원이 삭감되어 입금됐다.

이후 5월 3일, 이사들은 사무처 활동가들을 배제한 채 35차 이사회로 모였다. 안건은 '사무처 정상화를 위한 현안 처리'. 이사회는 사무처 활동가들이 쓰고 있는 사무실을 폐쇄하고,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반헌법팀) 사무실로 통합하라고 지시했다(평박은 종각역 인근에 두 개의 사무실을 쓰고 있다). 그러나 석미화 사무처장과 최성준 총무는 일련의 과정들에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사무처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하나의 데이터, 두 개의 결론

사건의 발단이 된 CMS 후원 관리 문제를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내용이 복잡하고 5,000명의 회원이 있어 자료가 방대하지만, 어찌 보면 후원자와 후원 개시 날짜, 약정 금액과 출금액으로 이뤄진 단순한 자료다. 이는 평박 CMS 관리 시스템에서 엑셀 자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한홍구 교수가 제기하는 문제의 골자는 2014년 12월부터 2015년 8월까지 금액이 별로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회비 수입은 2,795만 원이고 2015년 8월 회비 수입은 3,064만 원이다. 이렇게 총액으로 보면 증가분이 269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한 교수는 해당 기간 동안 자신이 가져다준 약정서 금액이 1,108만 원이라며, 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 늘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무처는 총액 기준으로 보면 그런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CMS는 일시납, 해지, 미납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총액상으로는 증가분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무처는 해당 기간 중 해지와 일시금, 8월에 신청했지만 9월에 기입한 금액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한홍구 교수가 가져다 준 약정서 금액 중 90% 이상이 등록되었다고 자료를 제시했다. 약정서 중에는 신상 정보가 불명확한 것들이 있고 이는 통상 10% 이상이기 때문에 사무처의 업무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한홍구 교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감안해도 해당 기간 중 총액이 터무니없이 적게 늘었기 때문이다. 2014년 2월부터 11월까지, 2015년 9월부터 2016년 1월까지는 총액이 각각 791만 원, 1,333만 원이 늘었다. 특히 2015년 9월부터 2016년 1월까지는 약정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이 입금되었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2015년 9월부터 회원 관리를 사무처에서 반헌법팀으로 이관해 왔고, 전에 있었던 약정서 중 누락된 것과 불량 기입된 것을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사무처의 업무 해태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내부 감사 보고서. 1차(왼쪽)는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고, 2차(오른쪽)는 사무처의 업무 해태로 최소 월 348만 원 손실을 입었다는 내용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사무처는 한홍구 교수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문제가 되는 기간 총액이 적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일시납과 해지 등의 이유가 있고, 비정기적으로 출금되는 미납분에 대해서는 회원 개개인의 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핵심은 해당 기간 동안 한 교수가 가져온 후원 약정서를 제대로 기입했는지 여부이고, 이는 90% 이상 등록된 것이 드러났다고 했다.

누락과 불량 기입된 분량이 많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해당 기간 동안 약정서 상당 부분은 한홍구 교수의 파트타이머 조교가 기입해 왔으며, 사무처는 누락된 것이 있는지 정기적으로 체크했다고 했다. 특히 2015년 7~8월에는 아예 조교가 없었고, 사무처 직원들이 짬을 내서 하느라 8월에 들어온 약정서를 9월에 등록한 것도 있다고 했다. 불량 기입된 부분도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경우라면 후원 약정자와 연락해 수정 작업을 해 왔다고 했다. 한 교수가 말하는 누락 및 불량 기입된 게 어떤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무처 활동가들은, 신규 등록이 있을 때 조교가 수시로 한 교수와 석 처장에게 메일로 보고했고 재정 보고도 매월 홈페이지에 게시했는데, 이제 와서 모든 걸 사무처의 업무 해태로 몰아부치는 건 부당하다고 했다. 설사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회원 관리를 전담하는 담당자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고 이를 보완하는 수순으로 가야지, 이런 식으로 활동가들을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석미화 사무처장은 이전에도 한홍구 교수에게 회원 관리 담당자를 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진 것은 한홍구 교수의 주장을 지지하는 2차 감사 보고서다. 사무처의 업무 해태로 평박이 최소 월 348만 원의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감사 김성구 회계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사실 1차 때도 그런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무처 활동가들과 한홍구 교수의 갈등을 봉합하는 차원에서 문제가 없다고 한 것이다. 고의든 아니든 사무처가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지금 이 사건은 간단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사로서 후원 관리가 부실한 부분을 지적했고, 실제로 최소 월 348만 원의 손실을 가져왔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사무처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사무처 활동가들은, 해당 기간 동안 제대로 기입한 것이 드러났는데도 한 교수가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어 마치 사무처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매도한다며, 차라리 이 문제를 외부감사에 맡기자는 입장이다.

일시적 해프닝인가, 적폐의 폭발인가

5월 10일, 사무처 활동가들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동안 한홍구 교수가 이사장 이해동 목사의 묵인 아래 전횡을 저질러 왔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 한 교수가 후원 회원 관리를 문제 삼았지만, 이는 자기 맘에 들지 않는 활동가들을 내쫓으려는 의도라고 했다. 한 교수의 단체 사유화는 지난 10여 년간 암묵적으로 진행돼 왔고, 이번에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평박의 미래는 없다며 문제를 공론화한 것이다.

한홍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는 전횡을 저지른 건 오히려 석미화 사무처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무를 해태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사장과 이사회의 지시를 거부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동 목사는 한 교수가 그동안 평박을 위해 자기 사재까지 털어 가면서 일했고, 후원 회원도 거의 대부분 그가 유치해 왔다고 했다. 한 교수가 전횡을 저질러 왔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홍구 교수와 이해동 목사의 주장처럼 사무처의 업무 해태일까, 아니면 사무처 활동가들 주장처럼 한 교수의 독단적 운영일까. 그러나 단지 사무처 문제로 보기에는 그동안 평박을 거쳐 간 사람들과 몇몇 이사의 이야기가 걸린다. 다음 기사에서는 이들이 한목소리로 얘기하는 평박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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