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아인 28명이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6개월간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알려진 후 난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5월 26일에는 난민과 관련한 보고대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7일 동안 식사가 나오지 않았어요. 앞으로 주지 않겠다고 했어요. 변호사들이 연락을 한 후에야 식사가 나왔는데, 그 전까지는 남은 음식을 먹거나 굶어서 버틸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더러웠고 샤워 시설이 있다고 말할 수 없어요. 샤워실에서 수시로 담배를 피워 대서 정말 힘들었어요. 샤워 공간이 아닌 이상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금지였어요."

"치약도 충분하지 않아 우리 중 몇 명은 입 냄새 때문에 액체 비누로 이를 닦기도 했어요. 우리는 일주일 내내 이를 닦지 않은 채 있었고 매일 아침 우리의 혀와 이에서 피가 났어요."

"하루 종일 갇혀 지내야 했고 에어컨 때문에 매우 건조한 상태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못한 채 지내야 해서 (아내가) 힘들어했어요. (아내는) 당시 임신한 상태였어요."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있는 외국인들의 응답이다. 식사에 대한 어려움 말고도 잠자는 문제, 씻는 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인권은 없었다. 한국 땅에 있지만 그곳만은 어느 국가도 책임지지 않는 무법 지대였다.

난민지원네트워크와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는 5월 26일,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했던 24명을 심층 인터뷰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 박영아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고은지 간사(난민인권센터), 김진 뉴질랜드 변호사(세이브더칠드런)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 난민 신청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각계각층에서 7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난민지원센터, 세이브더칠드런, 재단법인 동천, 피난처, 한국이주인권센터는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절차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작년 9월부터 조사에 착수했다. △난민 신청 접수 단계 △심사 단계 △송환대기실과 난민신청자대기실 처우 △그 외 인권 침해 여부 등 총 네 개 주제로 나눠 설문지를 만들고 영어, 불어, 아랍어로 번역했다. 총 75개 질문으로 면접자들을 심층 인터뷰할 수 있었다.

대한변협 대강당에서 진행된 보고대회에는 유엔난민기구 등 인권 단체 관계자와 변호사, 미국 대사관 직원 등 각계각층에서 70여 명이 참석했다.

난민 신청 절차, 시작부터 문제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제도는 2013년 7월 1일 난민법 시행으로 시작됐다. 그 전까지 한국 정부는 입국심사대를 넘지 못하면 자국 영토가 아니라고 보고 난민 신청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난민법 시행과 함께 공항에서 바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법이 시행된 지 3년. 허점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난민법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은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한 사람에 대한 난민 심사 회부 여부를 7일 내에 결정해야 한다. 정식으로 난민 심사를 받기 전에 회부할 건지 말 건지 또 다른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회부 결정이 되면 입국이 허가되고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지만, '불회부' 결정이 나면 입국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난민법이 시행된 후 2년 반 동안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총 567명이었고, 그중 213명이 불회부됐다.

송환대기실이라는 장소는 불회부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존재한다. 입국 거부된 사람이 다른 나라로 떠나기 전 잠시 머무르는 장소다. 그러나 전쟁이나 종교적 박해가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자국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대기실에서 수개월간 생활하는 일은 그래서 벌어지는 것이다.

▲ 이일 변호사(맨 왼쪽)는 출입국항에서의 난민 신청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김진 변호사(왼쪽 두 번째)는 외국의 사례를, 박영아 변호사(왼쪽 세 번째)는 난민 신청 절차의 어려움을, 고은지 간사(맨 오른쪽)는 송환대기실 내에서의 실태를 발제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절차는 시작부터 문제였다. 공항에서 난민 신청 안내문이나 권리를 고지한 간판을 보기 힘들었다. 조사에 응한 22명 중 3명만 난민 신청 안내문을 봤다고 답했다. 부착된 안내문도 한글과 영어로만 돼 있다. 난민이 많이 발생하는 중동 지방과 아프리카에서 주로 사용하는 불어와 아랍어로 된 안내문은 없었다.

현행법과 달리 난민 신청자에게 신청서를 바로 주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난민법으로는 7일 이내에 난민 심사 회부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조사 결과 난민 신청자 대부분이 신청 의사를 밝힌 후 1~2주가 지난 뒤에야 신청서를 받았다.

이외에도 △난민법의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불명확한 심사 기준 △통역 시스템 미비 △면접 시 부족한 조사 시간과 발언 기회 미보장 및 고압적·모욕적 언행 △인터뷰 내용 확인 및 수정 절차 부재 △소지품에 대한 영장 없는 강제 조사 △성별에 대한 배려 부재 △불회부 이유 고지 밎 이의 절차 부재 등, 한국에서 난민 심사 자격을 얻기 위해 겪는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불명확한 심사 기준 속에서 불회부 결정이 나면 난민 신청자는 이유도 모른 채 쫓겨나는 상황이 된다. 당국이 불회부 결정을 취소하거나 행정소송을 걸어 처분을 취소하지 않는 한 송환을 면할 방법이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 공항 한구석에서 소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공익 변호사들이 이런 사람들을 도와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회부 판정 이후 '송환대기실'

불회부 판정을 받으면 송환대기실로 가게 된다. 난민 심사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공항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공항과 항공사의 입장도 이해할 만하지만, 송환대기실은 법적 근거가 없는 시설이다. 여기에 사람을 두는 건 '구금'이다. 항공사는 이를 피하려고 송환대기실 이용 신청서를 쓰게 한다. 그러나 조사에 응한 24명 중 23명이 신청서 내용을 모른 채 사인했다고 답했다.

송환대기실은 인천공항 출입국장 2층에 있다. 470㎡(142평) 규모로, 평상이 있는 남녀 각 큰 방 1개, 직원 사무 공간 및 휴게실, 화장실로 구성돼 있다.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고, 24시간 불을 켜 놓고 있다. 돌아갈 곳 없는 사람이 아니면 하루 이틀 있다가 다른 나라로 가기 때문에 인원을 매일 바뀐다. 적게는 20~30명, 많게는 140~150명 정도가 이곳에서 생활한다.

여기서는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렵다. 외부 기관의 명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 정보는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고 통신 환경도 좋지 않았다. 송환대기실 관계자들이 허위 정보를 제공하고 심지어 욕을 하고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유엔난민기구 연락처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거나 변호사와 소송을 해도 소용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했다. 남자 네다섯 명이 다짜고짜 끌어내거나 신청자의 본국 정부에 알리겠다는 협박도 있었다고 했다.

▲ 패널과 참석자들 간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식사와 의료는 말할 것도 없다. 치킨버거와 콜라, 빵 한 조각, 과자 등 제대로 된 식사라 할 수 없는 것들이 제공됐다. 조사관들이 지적한 문제는 △부실한 식사 △개인의 관습과 생활 문화 등을 고려하지 않은 식사 △질병을 고려하지 않은 식사 △임의로 식사 제공 중단 등이었다.

의료와 관련해서는 △난민 신청자에게 의료 지원 책임 전가 △약제 처방 및 치료 비용 부담 △타인의 질환으로 인한 두려움을 꼽았다.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도 열악한 실내 환경(탁한 공기, 지나친 에어컨 사용, 침구류 등의 불결한 위생 상태, 세면도구 부재 등)을 꼽는 사람이 많았다.

여성과 아동이 겪는 고충은 더욱 심했다. 조사에 응한 여성 난민 신청자들은 모두 남성 면접관과 면담한 바 있었다. 임신과 성적 학대에 대해 말할 때 불편함을 느껴 면접관 변경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에 대한 시설은 전무했다. 임산부와 아동들의 식사도 다른 사람과 같았다. 다만, 아이에게 먹이기 위해 우유를 가져다 달라고 하면 공무원이 가져다주었다고 응답했다.

난민 신청자 입국을 허가하라

보고대회에서는 7개월째 송환대기실에 있는 난민 신청자를 전화로 인터뷰하는 시간도 있었다. 7분 남짓한 시간 동안 통역을 하며 대화하느라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송환대기실에서 나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절차를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과 북미 국가에서는 난민 신청자를 공항에 수개월 동안 묶어 두지 않으며, 공항에 며칠 지낸다 해도 최대한 인권을 보장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 보고대회에서는 송환대기실에 있는 사람과 전화로 실시간 인터뷰도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현재 장기간 송환대기실에 있는 난민 신청자들은 법무부를 상대로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6월 둘째 주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선례가 있어 난민 신청자들의 변호인단은 승소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불회부 결정이 취소돼도 법무부가 입국 허가를 즉시 내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지금도 한 분은 불회부 결정이 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입국 허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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